지구 상에 한 조그만 나라가 있다. 면적은 692제곱킬러미터(㎢)로 서울보다 조금 넓은 정도로 인구는 530만 명밖에 안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기는 국가경쟁력으로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놀라운 것은 이 나라는 50여 년 전 한 지도자가 집권하기 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400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어촌 같은 곳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의 많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우리가 본받을 나라"라며 이 지도자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지도자가 23일 9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바로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다. 박 대통령은 오는 29일 국장으로 치러지는 리콴유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기로 했고, 심지어 북한도 총리 명의로 "우리 인민의 친근한 벗"이라면서 즉각 조전을 보냈다.
리콴유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이념을 초월한 듯 찬사 일색이다. 타계한 지도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예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이 남긴 유산이나 다름없는 오늘날의 싱가포르가 어떤지는 이번 기회에 잘 알려지지 않는 측면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청렴지수 등 화려한 평균치로 포장된 싱가포르는 '베일에 쌓인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를 관광객으로서 접해본 사람들이 아니고 현지에서 이 사회를 좀 들여다 본 사람들은 "리콴유 일가가 소유한 주식회사"라고 말한다. "언론의 자유는 싱가포르의 통합과 정부의 우선순위 아래 종속돼야 한다"는 리콴유의 유명한 어록은 싱가포르가 기업을 뜻한다면 이해가 간다.
싱가포르를 '리콴유 가문의 주식회사'로 비유하는 것이 경제적 측면을 강조한 비판이라면, 정치사회적으로는 영토의 면적과 인구 규모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잘 사는 북한'이라고 비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의 지도자들이 닮고 싶어하는 나라가 어떤 가문이나 소수의 세력이 소유물처럼 완전히 장악한 나라이거나, '잘사는 북한'을 추종하는 일종의 종북주의자들이라는 말인가? 싱가포르를 '주식회사'나 북한과 비슷한 독재국가로 보는 것은 싱가포르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닐까?
하지만 비판자들의 논거도 상당하다. 우선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라는데, 국민행복도 조사를 하면 전세계 꼴찌 수준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이 불행하다고 답하고, 싱가포르 토박이들 상당수가 "외국에 나가서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나라이며, 인구 4분의 1인 130만 명이 외국인 이주 노동자인 나라다. 2013년 '싱가포르 폭동'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착취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노조가 파업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차단되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것은 그저 이 나라의 평균 수치일 뿐, 국민 대다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가난할 뿐이다. 교육도 효율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싱가포르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소질이 없는 학생은 곧장 직업학교로 가야 한다. 자식의 인생이 초기에 결정되는 이런 교육제도 탓에 사교육 경쟁에 내몰려 "가족들이 오붓하게 나들이 할 여유"를 찾기 어려운 나라다.
'주식회사 싱가포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이 나라 장관은 민간 최고경영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공무원들에 대한 이런 대우가 부패척결의 비법이다.
싱가포르가 '잘사는 북한'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살펴보자. 싱가포르는 영국의 자치정부 시절인 1959년 리콴유가 집권한 이후 1965년 독립국가를 겨쳐 지금에 이르도록 집권당이 바뀐 적이 없다. 지난 2011년 시행된 총선에서도 집권 인민행동당(PAP)은 전체 87석 가운데 81석을 차지했다.
PAP는 1959년부터 지금까지 80석 이상을 차지하는 사실상 '1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WP)이 2011년 총선에서 6석을 획득한 것이 사상 최대 성적인 나라다. 지금까지 야당 출신 의원 자체가 12명밖에 없는 나라다.
1952년 생인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리콴유의 아들인 것에서 알 수 있듯 북한 식으로 '세습독재'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04년부터 총리를 이어받았다. 그가 대안이 없는 훌륭한 지도자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싱가포르가 부패 척결로 유명하다지만, 싱가포르가 리콴유 일가의 소유물이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리콴유의 장남은 현재 총리이고, 차남 리셴양은 싱가포르 최대 통신업체 싱텔의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싱가포르 민간항공청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며느리는 국부펀드 운용사 ‘테마섹 홀딩스’의 최고경영자다.
이 나라는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곳에는 우리의 악명높은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국내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엄존하고 있어 정부 비판은 엄두도 못낸다. 국내보안법은 공식적인 혐의나 기소 없이도 무기한 구금할 수 있다. 선거라는 것도 형식적이어서 유세 중 정부 비판을 하면 사실상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보복을 당하게 된다.
싱가포르에는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독립언론이라는 게 없다. 언론자유는 북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 '국경없는 기자회'가 평가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싱가포르는 175개 국 중 150위다. 인터넷 웹사이트 개설조차 마음대로 못하고 검열이 합법인 나라다. 야외집회나 행진의 자유? 무조건 정부의 허가 대상이다.
싱가포르에서 인권을 얘기하면 곤란하다. 인구비례로 사형집행 1위 국가가 싱가포르이며, 사형집행도 즉각 해서 지난 50년간 4만여 명이 사형된 나라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3년 사이에 400명 정도가 교수형을 당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사형이 유난히 많다"는 비판에 대해 "가장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마약지대와 가깝기 때문에 마약거래 등에 대해 엄단하기 때문에 사형 비율이 높아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하지말라는 것을 하면 우리에게는 경범죄인 것도 싱가포르에서는 살인적인 벌금형에 처해진다. 지하철에서 음식물 먹다 걸리면 벌금이 우리 돈으로 수십만 원, 길에서 껌 씹다 뱉으면 70만 원이 넘는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인 한국이 '싱가포르 모델'을 따르면 5만 달러가 될 수 있다고 하자.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평균치가 다른 모든 것을 우선하는 최고의 목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까. 만일 삼성그룹 일가에 대한민국의 통치를 맡기면 '1인당 5만 달러의 나라'가 된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 모두가 삼성그룹 직원이 되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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