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가명) 씨는 공중보건의사다. 국내 작은 섬에 있는 보건지소에서 복무했다. 김 씨는 1년간 섬사람들을 진료하면서 '의료 사각지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하지만 정부가 섬·벽지 만성질환자들을 위해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진료'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는 뜨악했다. '이건 아닌데….'
김 씨가 배정받은 보건지소는 인구 약 2000명이 사는, 걸어서 30분이면 마을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작은 섬에 있었다. 의사 2명이 배정된 이 보건지소는 섬 안의 유일한 의료 기관이었다. 보건지소는 어디서 출발하든 걸어서 10분~15분이면 갈 수 있도록 섬 한 가운데 있었다. 반면 육지에 있는 병원에 가려면 배로 3시간 이상을 나가야 했기에, 마을 주민들은 웬만한 치료를 보건지소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김 씨가 그 섬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인상은 "여기서 크게 아프면 안 되겠다, 여기서 내가 맹장이라도 터지면 큰일 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섬은 고립돼 있고, 응급 이송 시스템이 충분하지 못했던 탓이다.
"섬마을 문제는 만성질환자가 아니라 응급 환자"
공중보건의로 있다 보니,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성질환자는 정기적으로 보건지소에 내원하도록 해 관리했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다면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주민들이 공중보건의사에게 크게 의지하다 보니 드물게 밤에도 전화가 올 때가 있지만, 거기까지는 커버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응급 환자였다. 섬마을의 주업이 어업이다 보니 어부들이 일하다가 상처 깊게 찢어지지는 등 간혹 크게 다쳐서 오기도 했다. 하지만 보건지소에는 응급 시설이 없어서 응급조치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환자를 육지로 이송해야 했다.
"기본적인 의료 인력이나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시설이 열악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가 있었던 보건지소는 몇 년 전에 '우리도 드디어 엑스레이 들여놨다'고 (주민들에게) 엄청 자랑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크게 아픈 환자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장비가 없으니) 찍어볼 수도 없고, 처치가 안 되는 거죠."
실제로 김 씨는 복무 기간 동안 응급 환자 한 명을 떠나보낸 적이 있다.
어느 날 배에서 일하다가 닻에 부딪혀 복통을 호소하는 한 어부가 보건지소를 찾았다. 김 씨는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며 의식이 저하되는 것을 확인하고 복강 내부에 출혈이 있는 것 같아서 헬기를 불렀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날씨가 좋지 않아서 헬기가 뜨지 못했다.
급한 대로 배를 태웠는데, 정기선에 못 태운 까닭에 환자는 몇 번 배를 갈아타야 했다. 평소보다 두 시간 넘게 이송이 지체됐던 환자는 육지에 있는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이송 도중 숨을 거뒀다. 사인은 '동맥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이었다.
"환자 이송 헬기 부르면 돈 많이 든다고 싫어해"
환자 사망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였지만, 김 씨는 일상적으로도 큰 병이 의심되는 환자가 찾아왔을 때 난감하다고 했다. 헬기를 태우기에도, 배를 태우기에도 애매해서다.
"머리 아프고 토한다는 환자가 있었어요. 속이 안 좋고 그냥 아픈 것일 수도 있지만, 뇌압이 높은 것일 수도 있거든요. (보건지소에 장비가 없으니) 검사해서 진단할 수도 없고, (육지 병원으로) 보내긴 보내야겠는데 헬기를 띄워달라고 하면 면사무소에서 돈이 많이 든다고 안 좋아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배 태워서 보냈다가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됐어요."
"오지에는 CT가 없는데 어떻게 CT를 찍어 보내나?"
정부가 2013년 섬, 벽지에 사는 만성질환자들을 위해 예산을 들여 원격 진료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발표했을 때, 김 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만성질환자에게도, 응급환자에게도 원격 진료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월 27일에 발표한 '원격 의료 활성화' 방안을 보면, 정부가 농어촌 취약지에 도입하려는 원격 진료 활용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농어촌 취약지 응급실에서 의사가 CT 영상과 환자 기록을 확보하면, 인근 대도시 거점병원에 원격 협진을 의뢰해 환자가 이송되는 동안 진단 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농어촌 취약지에는 CT 장비는커녕, 응급실과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농어촌 취약지에 원격 진료를 도입하기 전에, 응급실이나 CT 장비부터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두 번째 방안은 섬·벽지 보건진료소 등에서 방문간호사가 환자들의 혈압과 당뇨 수치를 기계로 측정해 전송하고, 의사와 원격 진료나 원격 모니터링을 해서 만성질환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도서 벽지에 차라리 의료 인력이나 시설을 보완하지, 왜 굳이 원격 진료 기계를 도입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섬에는 스마트폰도 잘 없고 인터넷도 끊기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가 측정을 해서 데이터를 전송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원격진료 할 돈으로 인력 확충, 시설 갖춰야"
정부가 섬마을, 벽지 환자들의 의료 공백을 걱정한다면, 응급 환자 이송체계를 보완하거나 보건지소에 제대로 된 진료 시설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그는 강조했다.
"원격 진료가 없어서 벽지·오지 의료에서 문제되는 건 없어요. 도서벽지에서 문제가 되는 건 응급 상황이에요. 그런데 응급 상황에서 모니터(원격 진료)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동맥이 터졌는데 모니터로 치료할 수 없고, 상처가 깊다면 빨리 꿰매야 하는데 모니터로 못 하잖아요.
혈압, 당뇨 수치는 꼭 기계로 전송할 필요가 없고 지금도 전화로 얘기해도 충분한데, 정부 예산을 들여서 꼭 그런 측정 기계를 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급하게 돈 들여서 할 일인가? 그 돈이면 차라리 보건지소에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거나 의료 인력을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헬기 띄울 때 눈치라도 안 주면 그게 도움이 되지. 정부가 의료기기 업체들에 돈 벌어다주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 관련 기사 : 삼성전자는 왜 원격의료 시범사업 참여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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