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경제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고, 이는 의료 분야에서도 구체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서울대학교 병원 노동조합이 ‘의료 민영화 저지 및 서울대 병원의 정상화’를 내걸고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달 보건의료산업노조의 전국적인 시한부 파업에 이어, 서울대 병원 노조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원격의료를 필두로 하는 의료 영리화 움직임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원격의료 정책의 문제점
지난번에는 대한의사협회가 나섰지만, 이번에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원격의료 문제를 다시 쟁점화하고 있다. 현재 의료법상 허용되고 있는 의료인들 간의 원격의료와 달리 의사-환자 간의 대면진료를 대신하는 원격의료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안전성과 타당성의 검증이 중요하다. 원격의료로 초래될 오진에 대한 제도적 보완 장치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원격의료로 인해 오진이 발생할 경우 의료인과 의료기기 제조 회사, 통신망 회사 등 관련자들의 책임 소재에 대한 세부 규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모니터로 본 환자의 상태에 대해 의사는 해상도가 낮아서 오진을 했다고 할 것이고, 모니터 제조 회사는 통신망의 문제로 해상도가 낮아졌다고 할 것인데,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환자는 누구에게 보상을 청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또한 법적 보완 장치 마련도 전혀 진전이 없다. 재가 환자들의 편의성을 높여준다는 논리로는 원격진료뿐 아니라 원격 처방전 발행과 의약품 배송 허용 등의 약사법 개정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무엇보다도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법률 개정 및 의료정보의 규격화 규정 신설 등 개인정보 유출 및 보안의 문제와 이에 따른 책임성 문제, 원격의료로 인해 발생할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관리 방안, 그리고 원격의료 도입으로 야기될 의료전달체계의 혼란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명이나 준비 없이 정부는 무조건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원격의료를 찬성하고 싶은 국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격의료,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이렇게 준비가 부족하고 제도의 효과도 불분명한데도 정부는 원격의료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정책의 목적은 무엇인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우선 원격의료 정책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정부가 주장하는 주요 원격의료의 대상자들을 보면 원격의료의 혜택이나 편익보다는 피해와 차별이 더 구체적으로 예상된다. 원격의료의 주요 대상으로 지목된 노인이나 취약계층은 원격의료를 실시할 경우 접근성이 오히려 낮아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만성질환자들의 경우에도 이동시간이 단축되는 대신 관련 장비 비용 등 추가적인 비용이 더 증가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외래 이용 횟수가 OECD 평균의 2배나 될 정도로 과도하게 잦은 상태에서 원격의료로 의료 이용이 더 증가할 경우 의료비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김석일, 2014). 특히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원격의료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진료비 감소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즉,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보다 의료의 질이 높다거나 환자들의 편의성이 제고된다는 증거는 미약한 반면, 의료기관이나 환자들이 원격의료 기기를 구비하는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 해당 분야 연구자들의 대체적인 결론이다(8/21, 김성주 의원실 주최 원격의료 국회토론회). 원격의료의 수혜자가 실질적으로는 의료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도 아니고, 의료비 증가로 고통 받을 국민도 아니라면, 과연 누구를 위해 이런 정책이 추진되는 것일까?
원격의료를 통해 자사 제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는 관련 의료기기 생산 대기업, 원격의료를 자사의 통신망을 이용하여 실행할 경우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통신망 회사, 그리고 최근 서울대 병원 노조가 지적하였듯이 원격의료 투자에 참여함으로서 환자들의 의료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민간 보험회사를 위해서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정책을 지금 이렇게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최근 일이 진행되는 추세를 보면, 원격의료가 결국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와 의료의 영리화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주장을 마치 정부가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 같다.
의료 접근성, 대면 진료와 이송 연계체계로 풀자
정부는 관련 법률의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해 원격의료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에서 명기하고 있는 원격의료 대상자들에게 원격의료가 정말 도움이 될 것인지, 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들의 의료 소외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를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학적으로 위험성이 낮다고 인정되는 재진환자로서 장기간의 진료가 필요한 고혈압·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자와 정신질환자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원격의료를 받도록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대면진료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이송 연계체계를 활성화해서, 힘들게 3차 의료기관에 오지 않더라도 접근성이 좋은 전국의 2만8000여 개의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주고, 관련 수가를 신설해 주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수술 치료를 받은 후 신체에 부착된 의료기기의 작동 상태 점검 또는 욕창 관찰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에 대해서도 안전성과 효과가 불분명한 원격 진료가 아니라, 적극적인 추적 관찰 및 후유증과 수술 부작용 발생 등에 대한 검사, 제대로 된 진료가 가능하도록 지원체계를 신설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그리고 퇴원 환자들에 대한 방문간호 및 순회 진료 센터 운영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원격의료보다 더 유용할 것이다.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섬이나 벽지 거주 환자들을 위해서는 공공의료 기관을 신설하고 공공의료 인력을 우선 배치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컴퓨터의 사용 등 각종 IT기기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 벽지의 환자들이 원격의료 때문에 갑자기 전자 장비를 잘 다루게 될 리도 없고, 원격의료를 하라고 하면 결국 추가적으로 비용을 더 지불할 뿐이다.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과 공공성 확보 투쟁 병행해야
참여정부부터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의료 영리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단순히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대만을 위한 투쟁은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이긴다고 해도 투쟁에 참여한 주체들에게는 남는 것이 별로 없다. 투쟁의 최대 성과가 현재 상태의 유지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의료 민영화 또는 영리화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좀 더 공격적으로 의료의 공공성 확보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
첫째, 의료 보장성 강화 요구 투쟁으로 전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느끼는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가 의료비 부담이므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다. 현 정부가 약속한 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이나 3대 비급여 항목의 부담 개선 등에 대해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실행 방안은 이미 실효성이 낮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도록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현재 62%에서 실질적인 국민부담 경감이 가능하도록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 이상으로 높이도록 보장성 확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또, 과도한 의료비 부담에 대한 걱정으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지금 내고 있는 불필요한 민간 의료보험 비용을 줄여서 실질적으로 가계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요구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의료 공공성 강화 논의가 중요하다. 원격의료를 지지하는 논리로 만성질환에 대한 국가 관리의 필요성, 급증하는 노인 의료비 억제의 필요성, 지방 환자들의 낮은 의료 접근성 문제 해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일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원격의료나 의료의 영리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건강 보장 및 의료에 대한 국가 역할의 강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정답이다. 따라서 기존의 반대 투쟁을 적극적인 요구 투쟁과 결합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민간 의료기관과 역할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국공립 의료기관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이나, 거점공공병원 확충 사업과 지방공사 의료원의 정상화 사업을 넘어, 90%가 넘는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사업으로 공공의료 확충사업을 확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반대로 국민의 부담이 큰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항목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고, 국민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약의 추진은 지지부진하다. 또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의료의 영리화는 경제 활성화와 서비스 산업 활성화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추진하는 등 국민을 배신하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 활성화와 서비스 산업 활성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 방식으로는 그러한 효과를 얻을 수도 없고, 이의 부작용으로 피해만 심각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민영화 또는 영리화의 추진이 아니라 의료 공공성의 확충과 강화가 올바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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