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의료 시범사업 시기를 둘러싸고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의사협회는 지난 26일 복지부가 "선 시범사업 후 입법이라는 의정 협의안을 깼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의정 협의대로 시범사업을 하고 그 결과를 입법에 반영할 것"이라고 맞섰다.
정부는 의정 협의를 깬 것일까, 아닐까? 진실은 양측 주장의 가운데쯤에 있다. 정부는 일단 의료법 개정안(이하 원격 의료법)을 통과시킨 후, 법이 시행되기 전에 6개월 막간을 이용해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다. 입법은 하되, 시범사업 결과로 지적되는 개선점은 나중에 시행령 등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범사업에서 원격 의료의 안전성과 효과성, 경제성이 없음을 입증하고, 이를 근거로 법안 시행 자체를 반대하려던 의사협회의 계획이 어그러진다. 야당이 반발하는 만큼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같은 협의 문구를 둘러싼 의-정의 동상이몽은 일단 정부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의사협회가 원격 의료에 반대한다면 왜 '입법 저지'가 아닌 '또 다른 시범사업'을 고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했다가 실패로 끝난 '원격 의료 시범 사업'이 있다. 이 사업 결과를 토대로 입법에 반대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2010년부터 3년간 진행된 '스마트케어 시범사업'을 분석했다. <편집자>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병원 참여한 시범사업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스마트케어 시범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원격 의료 시범사업을 한 적이 있다. 무려 355억 원을 들여 야심차게 추진했던 이 사업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원격 진료가 기존 대면 진료보다 안전성, 효과성, 경제성이 있다고 입증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사업에 삼성전자, 삼성생명, SK텔레콤, LG유플러스, LG전자, 강북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굵직굵직한 대기업과 대형 병원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특히 통신사와 전자회사, 보험사들은 왜 이 사업에 참여했을까? 이를테면 참여 기업 목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사업 구상을 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원격 진료 스마트 장비를 개발해서 팔고, 통신사는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들은 이 장비로 건강을 체크하다가 필요할 때는 강북삼성병원으로 안내받는다. 삼성생명은 건강관리가 필요한 고객들에게 건강관리 서비스 혹은 건강검진 보험 상품 등을 제공한다.
민영화 괴담?
시민단체가 이러한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보건복지부는 '민영화 괴담'이라고 일축했다. 원격 의료는 "도서벽지에 사는 소외 주민 등이 동네 의원에서 이용하는 서비스"라는 게 복지부 주장의 핵심이다. 일례로 복지부가 지난 1월 10일 '원격 의료 오늘의 질문과 답변'이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게재한 자문자답을 보자.
복지부는 "원격 의료 추진 배후에 삼성이 있다, 삼성을 위한 특혜라는 논란이 많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라고 스스로 질문한 뒤, "정부에서 추진하는 원격 의료는 삼성의 투자 계획과 전혀 무관하며,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를 논의한 적도 없고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답한다.
복지부는 질문 형식에서 "복지부가 2008년에 삼성경제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던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 내용 중 원격 의료 허용 내용이 있다"고 고백한다. 또 "삼성은 지난 5월에 의료 분야에 2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의료 산업화에 착수한 상태"라는 내용을 소개한다. (관련 기사 : 삼성, MB 정부에 '의료 민영화' 지침서 줬나?)
하지만 답변 형식에서 "원격 의료는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것으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으로 할 수 있다"며 "의료기기 산업 육성이 목적이었다면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의사-간호사 간 원격 의료를 활성화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산자부 "대도시 건강관리 서비스로 신시장 창출"
산자부가 발표한 시범사업 결과 내용은 '동네 의원, 벽오지 소외 주민 중심'이라는 복지부의 설명과 전혀 다르다. 시범사업이 대형 병원과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됐을 뿐만 아니라, 산자부 스스로 대도시 국민을 상대로 '신(新)시장'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지난해 11월 13일 '헬스케어 신시장 창출을 통해 건강 100세·창조경제 시대가 활짝'이라는 제목으로 '스마트케어 서비스 시범사업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산자부는 "유헬스 종합지원센터를 구축해 지역별 서비스 이용 특성을 반영한 권역별 지원기관을 추가 지정할 것"이라며 "대도시형은 건강관리 서비스 중심으로, 도서지역·도농복합지역은 원격 의료 중심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원격 의료 허용의 이면에는 '건강관리'에 지갑을 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대도시 국민들을 대상으로 '스마트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을 열겠다는 구상이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2009년에 이미 가정에 건강관리 서비스를 도입하는 '헬스케어 아파트'가 시범적으로 나왔다. 인천 송도에 들어선 더샵 아파트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와 공동 개발한 '유-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였다. 아파트 입주자들이 스마트 의료기기로 건강을 진단하고, 화상 통화로 건강 상담하고, 필요하면 병원으로 연결하는 서비스다. '산간 벽오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정부의 의도는 냉장고 하나를 만들더라도 버튼을 누르면 화상 통화로 주치의와 연결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라며 "헬스케어 산업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IT산업 발전을 막으면 안 되지만, 지금처럼 의료가 상업화되고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IT까지 끼면 1차 의료가 무너질 것이 우려된다"며 "사람들이 구멍가게(동네 의원)에 안 가고 전부 다 홈쇼핑(원격 의료)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산자부가 시범사업 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1월 13일 대한의원협회는 보도 자료를 내고 "겉으로는 원격 의료를 의원급에 한정한다면서도 속으로는 대학 병원, 대기업, IT 헬스케어 기업, 민영보험회사, 건강관리 회사 등을 지원하기 위해 쓸개까지 빼줄 듯이 행동하는 정부를 의사와 국민은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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