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여성 혁명가 이네사 아르망은 레닌에게 편지를 보내 '자유연애'에 대한 요구가 담긴 팸플릿의 집필 구상을 밝혔다. 레닌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봐야 검토할 수 있겠다고 하면서도 '자유연애' 항목은 당장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자유연애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닌 부르주아지의 요구'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네사가 '자유연애'라는 말을 쓸 때는 결혼 제도, 종교적·사회적 편견, 집안의 반대, 법의 족쇄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연애를 의도하겠지만, 사람들은 그 '자유'를 사랑에 진실하지 않을 자유, 출산하지 않을 자유, 간통할 자유로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레닌은 이 세 가지야말로 근대 사회의 말 많고 시끄러운 상류층이 요구하는 '자유연애'라고 단언했다.
양반 남성에게 합법적·배타적 간통 권리를 부여했던 조선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간통이 형사적 처벌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민사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됨에 따라 이제 대한민국의 상류층도 '자유연애'를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하긴 세계 10위권의 자본주의 국가가 이처럼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연애 공식을 지금까지 감춰 두고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긴 하다.
간통죄 폐지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주민 여성 노동자 등 소수자의 피해를 우려하는 여성 운동가도 있지만, '전통 미풍양속'을 해칠까 염려하는 유림도 있다. 전자의 주장은 분명 음미할 만하지만 후자의 비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남성 지배자 중심의 조선 시대를 풍미했던 유림이 그 시절 흉포했던 남존여비의 성 윤리를 전면적으로 반성한 적이 있었던가?
잘 아는 것처럼 유교의 지배를 받았던 조선은 양반 남성에게 합법적이고 배타적인 간통의 권리를 허락한 사회였다. 양반 남성은 여성을 '미풍양속'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둔 채 첩을 들이고 기생을 품으며 욕심을 채웠다. 양반가의 부인이 바람을 피우거나 천한 신분의 남성이 마님을 범하면 엄벌을 면치 못했지만, 양반 남성이 계집종을 건드렸다고 문제 삼을 자는 없었다. 양반들의 대장인 왕은 더 많은 여성에게 씨를 뿌리는 게 미덕일 정도였고, 왕비 최종 후보에 올랐다가 탈락한 규수는 그날로 인생의 단맛과는 영영 이별해야 했다.
마치 성욕은 남성에게만 있는 것인 양 버젓이 욕심을 채우던 양반 남성이 저지른 더 큰 범죄는 그렇게 합법적으로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들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것이다. '서얼'이라 불리던 그 자식들은 차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세상에 나갈 길이 차단되어 있었다. '아비를 아비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홍길동은 이처럼 야비한 양반 사회를 향한 통렬한 복수의 캐릭터였다.
서얼차대(庶孼差待)는 그 시절의 혼인 제도가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인지 또렷이 드러내 준다. 그것은 양반이 독점하던 신분, 권력, 부를 손상 없이 대물림하기 위한 장치였다. 양반가의 부인은 그러한 대물림이 하자 없이 이루어지도록 기품과 정조를 지켜야 하는 '생산 수단'이고, 첩은 만약에 대비하면서 양반 남성의 다양한 성적 취향을 다독여 주는 '보조 장치'였다. 그러고도 성이 안 차는 양반 남성을 위해, 그리고 양반이 많은 여성을 독식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독신으로 내몰린 뭇 남성을 위해 온갖 등급의 매춘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부인에게서 제대로 된 후계자가 태어나 자라면, 서얼은 특권의 대물림을 위협하는 존재로 용도 폐기되었다.
양반 행태 물려받아 일부일처제를 허수아비로 만든 한국 상류층
한국의 근대가 자생적으로 왔는지 타율적으로 왔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근대 사회가 축첩과 서얼차대를 폐기하고 일부일처제를 공식화한 것은 분명 진일보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대 한국 사회가 말 그대로 일부일처제 사회라고 믿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의 말을 원용하자면 진시황에게 불로초가 없었던 것처럼 인간의 바람기를 막을 묘약도 없다. 지난날 양반 남성만이 배타적으로 누리던 욕망의 충족에 '선남선녀'들이 과감하게 몸을 던지면서, 일부일처제가 위선적인 제도로 보일 지경에 이른 것이 20세기 후반 이래의 대한민국이다.
물론 일부일처제 그 자체는 결코 위선적인 제도가 아니다. 이는 모든 유권자가 동일하게 1인 1표의 권리를 누리는 선거 제도가 위선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선거권을 가진 각 개인이 평생 동일한 사람이나 정당에게만 투표할 의무가 없는 것처럼, 짝짓기를 하는 모든 남녀 역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살 의무는 없다. 전자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처럼 후자 역시 일부일처제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한 번의 선거에서 한 사람이 남보다 더 많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처럼 한 번의 결혼 생활에서 남보다 더 많은 배우자를 소유할 수 없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1인 1표 제도나 일부일처제가 허울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손수조라는 젊은 정치인이 3000만 원(이라는 거액!)만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호언했다가 급히 꼬리를 내린 일이 있었다. (☞관련 기사 :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이처럼 현실의 정치 과정은 대부분의 사람을 '1인 1표'라는 형식에 묶어 둔 채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부와 권력을 지닌 자들은 대부분의 사람을 '일부일처제'에 묶어 둔 채 현대적인 첩과 기생의 피라미드를 쌓아 놓고 결혼 제도를 농락하고 있다.
현대 한국의 상류층이 사실상 일부일처제를 파괴하면서도 이 제도를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그들의 결혼이 기득권과 부를 대물림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조선 시대의 혼인과 똑같기 때문이다. 사실 양반의 혼인도 형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일부일처제였다. 그것도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하는 종신 일부일처제였다. 부와 권력의 배타적 대물림은 중혼(重婚)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제도가 인간의 본성에 가하는 무시무시한 억압은 축첩과 공공연한 매춘을 통해 회피하고 미봉할 수 있었을 뿐이다. 몇 가지 '디테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상류층은 양반들의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
마음껏 사랑하고 떳떳하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향유하는 사회를 꿈꾼다
간통죄 폐지는 일부일처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존 결혼 제도를 벌거벗겨 저잣거리에 내놓았다. 근대적 결혼 제도의 정신은 남녀의 결합과 이별이 다른 어떤 요소도 아닌 사랑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밥 먹여 주냐'라는 막강한 한마디 말처럼 결혼과 이혼이 냉혹한 주판알 튕기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현실은 간통죄의 장막이 걷힌 뒤에 더욱더 그 야만적인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돈에 눈먼 결혼 제도가 탐욕스러운 눈알을 희번덕거릴수록 사랑과 결혼 사이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실은 그래서 간통죄는 이미 젊은 세대에 의해 폐기되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간통이란 결혼을 전제할 때 성립하는 것인데,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40퍼센트를 넘는 마당에 그게 무슨 외계어란 말인가? 그들에게 현존 결혼 제도는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사랑의 감옥이다. 내가 한 이성을 사랑해서 함께 살려는 순간 그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시월드' 등 훼방꾼들이 끼어들고, 사랑을 매춘으로 전락시키는 금전 수수가 뒤따르곤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이 식어 다른 사랑을 만나기라도 할라 치면 이전에는 법률적 제재가, 앞으로는 어마어마한 배상금이 달려든다.
누가 사랑하는 사람과 공인된 살림을 꾸리고 그 사랑이 식지 않는 한 오순도순 함께 살고 싶지 않겠는가? 수많은 젊은이를 그런 삶으로부터 내모는 것은 현존 결혼 제도와 그 뒤에 도사린 저잣거리 사회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결혼 제도나 가족의 위기라고 진단할지 모르나, 지극히 정상적인 욕망을 지니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진 이 땅의 젊은이들이 미쳤다고 짝짓기를 포기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포기하겠는가?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간통과 매춘을 부대 요소로 거느리고 자신들을 독신의 궁지로 몰아넣는 현존 결혼 제도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결혼, 위선적이지 않은 일부일처제라고 믿는다.
남녀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이 이상적인 일부일처제의 전제라면, 이 글에서는 그와 관련해 치명적이고 핵심적인 육아 문제를 빼놓은 것이 사실이다. 부모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어지더라도 자식과의 사랑은 그 어떤 상처도 받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사회. 그것은 육아를 온전히 책임져 주는 사회일 테지만, 그런 사회를 논하는 것은 당장 여기서는 벅찬 일이라 안타깝고 슬프다. '은밀하게 바람난 사회'에서 비겁하게 늙어가는 기성세대를 딛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마음껏 사랑하고 떳떳하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향유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역사에 비추어 오늘을 살피는 기획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의 의미를 새겨 보았으나 새해부터는 현대 한국 사회의 현안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되새겨 볼 예정이다. 필자는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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