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지킴이' 이주영?
지난 1월 25일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참 당혹스럽더군요. 수염 없는 그의 모습이 그날 따라 왜 그리도 밉던지….
어느 언론은 그를 '팽목항 지킴이'라 칭하고, 또 어느 정신 나간 종편은 '팽목항의 영웅'이란 말까지 썼으니 제 심사가 편할 리 없지요. 진도에서의 '수염'을 팔아 정치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에 대해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답니다.
우리 사회가 '악의 평범성'에 너무 무뎌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주영 전 장관처럼 모나지 않게 발언한다고 '악'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4월 16부터 136일간이나 진도에 있었으니, 실종자 가족들과 '정'이 들 수밖에 없지요. 가족들이 만나자 하면 순순히 만나주고, 얼굴을 마주하면 "모두 제 책임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를 연발하니 더더욱 그를 욕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겠지요. 보좌진 한 명만 대동하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채 터벅터벅 돌아다니는 그를, 적어도 진도에서는 불쌍하게 생각할 만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가다가 혼쭐이 난 고위 공무원도 있으니, 그의 '수염'이 더욱 돋보였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새누리당의 대선기획단장이었습니다. '신박(新朴)'으로 부상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진도를 다녀간 후, 대통령을 대신할 사람으로 이주영 전 장관이 뽑혔겠지요. 해수부 장관이었고 대통령이 신뢰하는 사람이니 당연한 귀결입니다. 해서 그는 진도에 남았고, 대통령의 생각을 현장에서 관철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그가 한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학 강국'인 대한민국이 오직 잠수부만 투여하는 원시적 수색을 하도록 '지휘'한 건 그가 한 일입니다. 가족들이 만나 여러 부탁을 하면 "예, 예" 하고 답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면죄부를 주는 우리 사회의 안일함에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염 깎은 이주영, 공직자의 참모습?
이주영 전 장관이 원내대표 후보로 나서는 과정 자체가 드라마틱합니다.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야 하니, 드라마가 필요했던 게지요. 출발은 '봐주기'부터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정부는 결국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채 희생자를 수장했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직접적인 책임을 해수부 장관과 해경청장이 져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현직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날 뿐만 아니라, 정치 생명도 다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신박'의 '힘'은 강했고, 취임한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유 아닌 이유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도 한몫을 했겠지요. 결국 책임지지 않았고 그해 연말까지 '버티는' 장관이 됐습니다.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본질을 흐려버리는 일이 시작됐던 겁니다. '악의 평범성'에 무뎌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했지요.
이 전 장관의 '서울 등장' 역시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2014년 9월 2일, 수염을 말끔히 깎은 이 전 장관이 청사에 복귀해 국무회의에 참석하자, 박 대통령은 "진도 현장을 지키면서 온몸을 바쳐 사고 수습에 헌신"했다고 그를 치켜세웠습니다. 또 "세월호 사고 수습에 헌신하는 이 장관의 모습에 유가족과 국민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라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언급했죠. 희생자 구조와 참사 사후 조치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고 있었던 이주영 전 장관은 이렇게 해서 "공직자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 '팽목항의 영웅'이 됐던 것입니다.
이후에도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당일부터 며칠간 다이빙벨과 함께 잭업 바지선(Jack-up Barge)을 투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구조전문가들·업체들·가족들까지 나서서 요구했지만, 여러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수색 작업이 소강 상태로 빠지자, 10월경부터는 유가족과 일부 구조전문가를 중심으로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잭업 바지선을 투입해달라고 다시 요청했습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그러나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본부장은 이주영 전 장관이었습니다.
급기야 11월 11일에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수색 작업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회견에 나선 사람도 역시 이주영 장관이었죠.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수색 작업을 종료하게 돼 안타깝고 송구합니다. (중략) 모든 것은 저의 책임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는 매번 이런 식이었습니다. 수색 작업을 종료해서는 안 되었죠. 인양 등을 고려해 다른 차원의 일을 구상한다 하더라도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며 인양 직전까지 수색은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약속했으면 지켜야 했고, 그것이 아니라도 상식적으로 인양했어야 맞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홉 명의 희생자는 바다 속에 갇혀 있고, 우리는 인양 논의를 핑계로 그저 손 놓고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전 장관의 부드러운 언술에 놀아나 우리 모두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잊고 있습니다.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잊으면, 세월호를 잊는 것이지요. '악의 평범성'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새누리당 원대대표 후보 이주영?
저는 이주영 전 장관이 결국 여당 원내대표 후보가 된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2014년 12월 23일 이 전 장관은 해양수산부 장관직에서 사퇴했습니다. 그 시점에 그가 왜 장관직을 사퇴했는가. 도대체 설명이 안 됐습니다. 그의 말도 전혀 신뢰할 수가 없었고요. 사퇴 다음날인 24일 이 전 장관은 공식적으로 "책임에 합당한 처신을 위해 이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고 말했습니다. "책임에 합당한 처신"은 과연 무엇일까. 왜 버티고 버티다가 그 시점에 물러났을까.
혹자는 범정부대책본부 해체와 인양논의 단계로의 전환을 그 이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체건 전환이건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에 불과하지요. 그러니 '무능해서 더 이상 있으면 오히려 누를 끼칠까 사퇴한다'는 설명밖에는 성립이 안 됩니다. 무능해서 사퇴한 것이고 "책임에 합당한 처신"을 할 예정이었다면, 원내대표 후보가 된 건 또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참 답답한 건, 어떤 언론도 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물러터졌으니,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지도 모릅니다.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은 1월 25일 결국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힙니다. 그의 행보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원내대표가 되기 위한 시나리오라는 차원에서는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부 장관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염을 깎고 서울로 오면서 '팽목항 영웅'이 되었다, 장관직을 사퇴하고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다. 결국 이것이 진실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주영 전 장관이 진도에서의 '수염'을 팔아 정치를 한다고 해석합니다. 인간에 대해 한숨짓게 하는 그의 행보가 서글프기조차 합니다.
"저 이주영, 고생이라면 해볼 만큼 많이 해봤습니다. 진정성과 소통 역량으로 많은 어려움을 딛고 위기를 극복해 낸 저력의 사나이입니다."
어느 종편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판사 출신의 4선 의원이 고생할 일은 많지 않지요. 결국 진도에서 고생했다는 이야기이고, 소통은 실종자 가족 및 유가족과 했다는 이야기고, 위기를 극복했다면 세월호 참사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극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치를 위해서라고 해도, 정말 그가 이렇게 발언해도 되는 겁니까.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2월 2일 선거에서 유승민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당선돼 이주영 전 장관의 드라마는 끝이 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주영 의원-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 그들 간에 복잡한 '정치 공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 대충 알 뿐입니다. 이들의 목적, 기획, 그리고 실행 속에서 우리가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세월호 참사조차 그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분노하게 합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악의 평범성'
제2, 제3의 이주영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권력 장치가 작동하는 삶의 현장에는 어디나 평범한 '악'이 존재합니다. 권력은 직접적인 폭력과 시끌벅적한 독재의 생 얼굴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돈과 이익을 동반한 온갖 '시혜'와 조용하고 온유하게 숨겨진 얼굴로 은밀히 다가오기도 합니다.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어떻게 진행될지 걱정입니다. 추모사업과 치유 등의 일이 어떤 기획 아래 은밀히 다가올지 걱정입니다. 평범한 '악'의 본질을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은 한 우리는 이해와 용서를 반복하다가 실망과 포기로 일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악'을 벌하는 범위와 방법을 잘 생각해야겠지요. '악의 평범성'을 직시한다 해서 도처에 깔린 평범한 '악' 모두를 처단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중심의 사회, 보통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가 그리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그들의 기획 아래 놀아나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본다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우선입니다. 그 범위를 최소화하되 수족만 자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요. 책임질 위치에 있는 이들을 객관적이고 적법하게 벌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악의 평범성'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사회 전체의 자기 성찰적 노력, 우리 모두를 포함하는 변혁의 기획이 '악의 평범성'을 극복하는 기반입니다. 평범한 '악'을 저지른 조직들, 사람들 모두는 반성을 공식화해야 합니다. 우선 국가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 모두를 향해, 그리고 상처 입은 국민들을 향해 진정성을 담은 반성문을 채택해야겠지요. 공무원 하나하나가 뜻을 담아 기관별로 반성문을 채택하는 정도의 노력은 기본입니다. 기업들은 돈만 알았던 천박함에 대해 반성을 공식화해야 합니다. 언론은 자기 변혁의 구체적 상을 공표해야 합니다.
저의 원론적인 이야기들이 그저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치열한 싸움과 더불어 성찰과 자기 변혁이 이어진다면, 우리 자식세대는 같은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글 말미를 써내려가며 휑하니 비어버린 저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긴 호흡을 할 밖에요. 아이를 하늘로 보낸 이들도 싸우고, 성찰하고, 눈물 흘리고 하며 견디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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