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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대신 트럭…철판 깔려도 "집에서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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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대신 트럭…철판 깔려도 "집에서 다쳤다"

[죽음을 감추는 조선소]<2> 조선소 사내하청의 불문율 '산재를 숨겨라!'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면, 대한민국 조선소 내에서 특히 그럴 것이다.

올 한해, 현대중공업과 그 계열사 조선소에서 총 1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죽었다. 지난달 28일 추락사고로 사망한 하청업체 노동자까지, 한 달에 거의 한 명 꼴이다. 이들은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위험'마저 외주화 하는 시대다. 언제부터인가 노동 현장에서 고되고 위험한 일은 대부분 사내하청 비정규직에게 쏠린다. 기본적인 안전장치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연이은 사망 사고의 이면엔 뿌리 깊은 산재 은폐가 있었다. "사고를 없앨 수 없다면, 숨겨라". 고용안정 사각지대에 몰린 하청 노동자들에게 조선소의 생존 법칙은 이렇다.

일하다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119를 부르지 않는 이유. '죽음을 감추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 값이 유달리 낮은 우리 사회에, 곧잘 은폐되곤 하는 '계급형 사고'에 대한 이야기다. 편집자.


▲한 조선소의 그라인딩 작업 현장 모습. ⓒ프레시안 자료사진

지난 3월25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 일하던 하청노동자 김모(52) 씨가 바다로 추락해 숨졌다. 선박 건조작업 중 족장이 무너져 3명이 바다에 빠졌는데, 김 씨만 끝내 살아나오지 못했다.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지만, 사고 발생 40분이 넘도록 119에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는 한 시간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2년 9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황모(당시 47세) 씨가 탈의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숨을 쉬지 않는 상태였다. 그는 119 구급차가 아닌 트럭에 실려 조선소를 빠져나왔다. 울산대학병원이 조선소 정문에서 불과 5분 거리지만, 30분이 걸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울산 조선소 바닥에선 잘 알려진 이른바 '트럭 사건'이다.

▲지난 3월 25일, 건조 중이던 드릴쉽 선수 갑판에 설치돼 있던 족장이 무너져 하청 노동자 3명이 20미터 아래 바다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이 다쳤다. 사고 발생 40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왜 119에 신고하지 않는 거예요?"

지난 2010년, 11톤 무게의 철판에 깔렸지만 역시 트럭으로 후송됐던 최도섭(44) 씨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럼 산재를 숨길 수 없으니까요."

작업 중 덮친 11톤 철판…회사는 '집에서 다쳤다'고 했다

최도섭 씨는 11년차 사상공이다. 그라인더를 이용해 용접 부위를 매끈하게 갈아내는 것이 그의 일이다. 조선소 일은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 시작했지만, 10년 전 울산으로 와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업체에 취직했다.

"날짜도 분명히 기억해요. 2010년 3월15일이었습니다."

그가 운을 뗀다. 그날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에서 급하게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 파견을 나간 날이었다. 이런 식의 파견근무가 '불법'이라는 것은 알지만, 관리자의 지시에 내키지 않아도 갈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운반선 작업이었어요. 어딘가에서 '끽'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순식간에 뒤에서 철판이 덮쳤습니다. 근처에서 크레인으로 철판을 옮기고 있었는데, 와이어 꼬인 부분이 풀리면서 철판들이 넘어온 거죠."

주변에 신호수가 있었지만 크레인을 멈추게 하지도, 작업자들을 대피시키지도 않았다. 작업 기일을 맞추기 위해 여러 작업이 뒤섞여 진행되는 '혼재 작업' 중 벌어진 전형적인 안전 사고였다.

1톤 트럭 11대 무게의 철판이 그의 등 뒤를 가격했다. "뒤에는 눈이 없잖아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장이 끊어지는 고통에도 의식은 붙잡고 있었던 최 씨는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했다. 워낙 조선소 일이 크고 작은 사고가 많다보니, 현대중공업 안에는 항상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는 구급차를 부르는 대신, 트럭에 그를 실었다.

화물트럭의 "족장 판때기 위에 실려" 조선소를 빠져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조선소 정문 앞에 울산대병원이 있지만, 돌고 돌아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앰뷸런스에 실려 정문을 통과하게 되면,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산재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트럭에 실려 후문으로 나간거죠. 산재를 숨기려고."

▲족장 위에서 일하는 한 조선소 노동자의 모습. ⓒ프레시안 자료사진
화물트럭 족장 위에 실려 도착한 곳은 그가 속한 하청업체가 거래하는 소규모 의원이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앞엔 정형외과만 수십 개에 달한다. 각 업체별로 지정 병원도 있다. 근골격계 질환이 조선소 노동자들이 달고 사는 일종의 '직업병' 일뿐더러, 그만큼 산재 사고가 많다는 방증이다.

의사가 상태를 확인하더니, 곧 대학병원으로 그를 보냈다. "여기선 어렵다"는 이유였다. 최 씨는 골반과 요추 일부가 심하게 으스러지고, 장이 파열돼 피가 차 있는 상태였다.

"응급실에서 통증으로 죽을 것 같은데, 40분가량 응급조치도 안 해주더라고요. 진통제라도 달라고 애원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 사장과 관리자들이 산재 처리를 할지 말지 자기들끼리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관리자가 누워있는 저한테 와서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의사가 물어보면 집에서 다쳤다고 해라.'"

산재보험 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관리자는 공상(회사가 산재 처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재해를 입은 노동자의 치료비나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테니, 집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친 것으로 하자고 했다. 응급실 과장이 내려와 사고 경위를 물었다. 최 씨 옆에 선 회사 관리자는 "아침에 출근을 안 해서 집에 가보니, 계단에서 굴러 다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의사는 거짓말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작업복에 안전화, 얼굴엔 시꺼먼 마스크 자국이 선명했다. 결국 최 씨는 산재보험으로 사고를 처리하기로 했다.

19개월 병원 생활 끝내니…말소된 직원 출입증

병원 입원 기간만 19개월이었다. 울산에서 서울 삼성병원으로, 서울에서 다시 울산으로 병원만 여러 군데를 오갔다. 큰 수술을 여러 번 거쳤지만, 얼마 동안은 다리를 쓰지 못했다. 의사는 골반의 5번 신경이 손상됐다고 했다. 장애등급도 나왔다.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괴로운 시간들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재활 노력을 한 끝에 산재요양 기간을 끝내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하지만 조선소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경위가 곧바로 제지했다. 그의 출입증이 말소된 탓이다. '해고'였다.

"최도섭 씨는 다쳤기 때문에, 조선소에서 더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밖에서 당신한테 맞는 일을 하라는 얘기였습니다."

'산재를 없앨 수 없다면, 숨겨라'. 해고는 조선소의 불문율을 어긴 데 대한 일종의 '보복'이었다.

"일주일간 출입증 없이 무작정 출근했습니다. 경비실에서 잡으면 '산재 끝내고 복귀해야 하는데 회사가 막는다'라고 했고요. 문제가 커질 것 같으니까, 그 때서야 회사가 복귀하라고 출입증을 주더라고요."

산재 경험한 하청노동자 92%, 산재보험 처리 못 받아

어쩌면 최 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사의 만류에도 산재를 신청했고, 사측의 해고 통보에도 "버티고 싸워" 결국 다시 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산재는 은폐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실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재를 경험한 조선업계 사내하청 노동자 127명 중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노동자는 7.2%에 그쳤다. 60%가 공상 처리했다. 치료비를 직접 부담한 사람이 28%, 아예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응답도 4.8%에 달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복수응답)에 대해선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79명)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하청업체가 산재보험 처리를 못하게 강요해서'(52명)라는 응답은 그 다음으로 많았다.

하청업체들은 산재 보험료를 줄이고 원청과의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하청 노동자 역시 고용불안 때문에 회사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실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실시한 '5차 산재은폐 실태조사' 결과, 총 32건의 산재 은폐 의심 사례가 적발됐다. 회사가 재해자를 압박해 개인적 사유로 다쳤다는 증언을 강요하는 것은 다반사다. 일하다 화상을 입은 재해자에게 "라면 물에 데였다"는 진술을 하게 하거나, 골절상을 입은 재해자에게 "집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하다 넘어졌다"라고 말하라는 식이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이밖에도 사고가 나면 선발대를 보내 병원을 살피고 입을 맞추는 방법, 명찰을 떼고 내원하게 하는 방법, 이주노동자의 경우 한국말이 서툰 점을 악용해 교통사고로 위장하는 방법까지, 은폐 사례도 다양했다.

하창민 사내하청지회장은 "하청업체들이 산재 처리를 하면 업체를 떠나야 한다는 인식을 노동자에게 심어준다"면서 "산재 처리를 하겠다고 하면, 그 업체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하청노동자들은 다쳐도 응급차 대신 트럭에 실려 나간다. 죽더라도 조선소 안에서는 안 된다. 조선소 안에서 죽을 경우, 중대재해로 신고 된다. 이렇게 되면 원청도 피곤해진다. 근로감독관이 조사를 나와 사고구역의 작업이 중지되고, 원청이 요구한 납기일에도 차질이 생긴다.

일하다 다쳐도, 혹은 죽더라도, 일단은 숨겨라. 이것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생존 법칙이다. 지난 4월 작업 도중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숨졌지만 자살로 처리된 고(故) 정범식 씨 사례는 산재를 어떻게든 은폐하려는 조선소의 현실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관련 기사 : '사고'가 '자살'로?…어느 샌딩공의 죽음)

정부-회사-병원의 3각 공조…벼랑 끝 몰리는 하청노동자

산재를 은폐하는 데는 병원의 협조도 한 몫 한다. 그라인더에 손목 인대가 파열돼 병원을 찾은 노동자의 진료 기록에 "회전 물체에 가격을 당했다"고 애매하게 적는 식이다. 누가 봐도 방금 전까지 일을 하다 다쳐 실려 온 것이 분명한데도, 하청업체의 요청으로 허위 기재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창민 지회장은 "초진 차트에 그런 식으로 기재가 되면 나중에 산재를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면서 "병원이 한 하청업체의 지정병원이 되면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업체들의 산재 은폐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중공업, 노동부, 병원. 이 세 군데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예요."

원청은 '무재해 달성'을 위해 하청을 압박하고, 하청은 원청의 눈치를 보느라 산재를 숨긴다. 그 가운데서 노동자만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린다.

그렇게 꾸준히 조선소 내의 산업재해를 줄여온 결과, 현대중공업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총 955억7327만 원의 산재보험료를 할인받았다.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고가 아무리 많아도, 원청업체 소속 정규직의 산재만 적으면 보험료를 할인받는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더 힘들고, 위험한 일들은 자꾸 하청에게 쏠린다. '위험의 외주화', 악순환의 반복이다.

때문에 노동계에선 그간 하청업체의 산재사고에 대해 원청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의 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이런 내용을 담은 관련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됐지만, 여당과 재계의 반대로 발이 묶인 상태다.

인권위 실태조사를 총괄한 주영수 한림대 교수는 "사업장의 실질적인 의사 결정자인 원청업체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수준의 특별법 제정 또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기업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규정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재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산재를 겪은 사람들이, 병원생활 중 어떤 생각을 하는 줄 아십니까?"

다시 최도섭 씨가 묻는다.

"병원 옥상에 올라가면,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여요. 이른 새벽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는 오토바이 행렬이 보이죠. 그걸 보면 참 부러워요. '난 저곳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다친 것도 고통스러운데, 나중에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산재가 끝난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에요. 그 이후에 회사로 돌아가려고 할 때, 다시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오는 거죠."

그는 산재요양을 끝내고 회사에 복귀한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는 '불이익'들이 있다고 했다. '조선소 밥'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술자들에게, 그간 해오던 전문 업무와 무관한 청소일 등을 시키는 식이다. 노동자들에겐 큰 벌이가 되는 잔업과 특근에서도 종종 배제된다. "자존심이 상하는 거죠. 그런 일 하려고 복귀한 게 아닌데."

최 씨는 복귀 후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그가 노조 활동을 시작하자, 회사는 폐업을 통보했다. 사장의 건강악화와 경영실적 부진 등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동료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의 노조 활동이 '위장 폐업'의 이유가 됐다는 것을. 노조 설립 후 지난 10여 년 동안 반복되어 온 일이다. 그는 '두 번째 싸움'을 시작했고, 노조가 힘을 보탠 끝에 폐업이 철회됐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5월30일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 현장을 찾아 침묵 시위를 벌이는 모습.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최 씨는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19년 만에 부분 파업에 돌입했을 때, 하청지회도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올해 들어선 노조 설립 후 처음으로 11개 하청업체와 교섭도 시작됐다. 여러 명의 동료를 먼저 보내고, 11년 싸움 끝 얻어낸 성과다.

119를 부르지 않는 이유

"다섯 명이 죽어야 배 한 척이 나간다."

'최초의 여성 용접공'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이 전한, 구전으로 내려오는 조선소 바닥의 오랜 속설이다.

김진숙이 일하던 시절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조선소에서 한 해에도 수십 명 씩 노동자들이 죽는다.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2년 반 동안 산재로 숨진 노동자는 모두 69명. 최 씨가 일하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만 해도, 올 한해 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모두 사내하청 비정규직이었다.

그게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전국에 흩어진 군소 조선소까지 포함하면, 사망 등 중대재해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집계되지 않는 사고가 더 많은 탓이다.

이렇게 사고는 끊이지 않지만, 재해율은 줄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조선소 사망자 수는 2012년 27명에서 2013년 24명, 2014년 18명(6월 기준)으로 줄었다.

전체 산업으로 확장해도 2012년 919건이던 중대재해 건수는 지난해 859건으로 줄었고, 올해도 예년에 견줘 감소할 전망이다.(2014년 6월 기준 370건) 통계로만 따지면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 수는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가운데 하청업체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어난다.

▲최근 3년간 전국 사업장의 중대재해 발생 현황. 중대재해는 점차 줄어들지만, 중대재해 중 하청노동자의 비율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은수미의원실

"사람들이 자꾸만 죽어나가는데, 재해율은 매년 낮아져요. 이유가 뭘까요?"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앞, 노조 사무실 난로 옆에서 하창민 지회장이 되묻는다.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119를 부르지 않는 이유, 산업재해는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재해율은 점점 낮아지는 이유.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산재사망률 1위'를 기록하는 대한민국에서, 근로복지공단이 매년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이유.

바로 그 죽음들이, 감춰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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