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은 농업혁명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 번째 맞는 존재양식의 큰 변화였다. 농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먹을 것을 자연에게서 '얻어먹는' 단계에 있었다. 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 농업혁명으로 '찾아먹는' 단계에 들어섰다. 자연이 던져주지 않아도 재주껏 먹이를 찾아 허기를 달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은 '뺏어먹는' 단계를 열어주었다. 자연을 변형-훼손시키면서 식량과 에너지를 뽑아내 욕심을 채우게 된 것이다.
존재 양식의 변화에 따라 사회의 조직 원리에도 변화의 필요가 일어났다. 농업혁명 이전 인류의 개체수는 지구상에 1000만 이하로 추정된다. 몇 억이 되었을 때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지금은 70억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세계가 '좁아지는' 변화다. 좁아진 공간 안에서 어울려 살려면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근대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유동성 증가가 필요하게 된 것은 이 까닭이다. 농업혁명으로 채집-수렵사회에서 농업사회로 넘어올 때도 체제 변화가 필요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농업사회에 적합한 체제가 안정되는 데는 무척 긴 시간이 걸렸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안정된 체제가 자리 잡은 것으로 이해된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체제 변화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근대체제'로 이해해 온 자본주의-민주주의체제가 사실은 산업사회에 가장 적합한 체제가 아니라 더 안정성 있는 체제를 모색하는 과정의 하나의 시행착오나 과도적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72년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로 환경과 자원의 한계 문제가 부각된 이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에 관심이 일어났다. 그 후 40년 동안 파국을 늦추기 위한 노력은 늘어나 왔지만, 확실한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존의 근대체제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탈(脫)근대'(postmodern)란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본(本)근대'를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근대'가 '중세'처럼 상당기간 인류사회의 안정된 상태를 이루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온 근대보다 훨씬 지속성 있는 체제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근대를 '가(假)근대'(pseudomodern)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꼭 이런 말을 쓴 논설을 아직까지 본 일이 없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근대'의 개념을 재고하려는 시도는 꽤 보인다. '가근대-본근대'를 하나의 가설로 내놓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20세기 후반에 '탈근대'란 이름으로 시작된 변화를 '근대화'의 본 단계에 들어서는 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펼쳐진 근대를 완성된 근대로 보기 때문에 '탈근대'란 이름을 붙인 것인데, 돌이켜 생각하면 이 300년의 시기에는 인류사회가 안정된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농업문명 시작 때도 오랜 시간에 걸쳐 대형화된 전쟁이 세상을 휩쓸던 상황을 여러 문명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농업사회 체제 정착에 그런 과도기가 필요했던 것처럼 산업사회 체제 정착에도 수백 년의 과도기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
'탈(脫)근대'보다 '본(本)근대'를 생각할 때
과연 지금의 변화가 '탈근대'란 이름대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 또 한 차례 격변의 시대를 인류가 겪게 될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넘어선 진정한 '근대화'로 안정된 세계체제를 이룩하게 될지, 지금 바로 단정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생각을 '본근대' 쪽으로 한 차례 모아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탈근대라면 '근대 이후'가 어떤 것이 될지 판단할 근거가 별로 없는 반면, '본근대'의 방향은 지금까지의 궤적에서 이어나가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근대화의 본질은 사회유동성의 증가에 있다. 중세체제가 한계에 접근하며 유동성 대폭 증가의 필요가 느껴질 때 그 대책이 여러 방향으로 강구되었다. 그중 유력한 대책으로 떠오른 것이 산업혁명을 앞세운 유럽식 근대화였다. 유동성을 일거에 급증시키는 극단적 대책인데, 어떤 변화든 변화 초기에는 극단적 대책이 흔히 통용되는 것이다. 기존 체제 파괴라는 단기적 과제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시계추가 중간에 머물지 않고 반대편 끝까지 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유동성의 급격한 증대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유럽식 근대화가 궤도에 오르자마자 문제들이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주의, 제도주의 등 대응책이 나왔다. 그러나 시계추가 관성을 가진 것처럼 기존 '근대화세력'이 반동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 20세기 전반기 동안 두 차례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공산주의 확장은 유동성 억제 필요에 따른 현상이었는데, 이 역시 시계추가 지나치게 반대쪽으로 간 결과였다. 유동성을 너무 줄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일부 유럽국에서 자본주의체제에 사회주의 원리를 가미하는 중도적 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환경 보호와 자원 절약을 지표로 하는 중도적 정책이 유동성을 적정선에 조정함으로써 산업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효과적인 방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기본 방향에 거스르는 반동 노선이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유동성의 극단적 증대를 제창한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파편화하는 데서 출발, 모든 인간적 가치를 자본의 가치에 종속시킴으로써 자본의 지배에 대한 일체의 저항을 없애는 데 목적을 둔 노선이다. 세계가 움직여가는 자연스러운 방향의 반대쪽으로 소수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매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반동 노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뉴라이트'의 이름으로 발표되어 온 신자유주의 논설을 보면 해외의 신자유주의자들에 비해서도 표현이 무척 노골적이다. 식민지시대를 겪은 사회에서 식민지 경험을 미화하는 주장이 이렇게 당당하게 횡행하는 것은 별난 일이다. 신자유주의 반동 노선에 대한 한국사회의 저항력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보여준다.
저항력이 약한 문제는 문명 전통의 단절이 심한 데서 오는 것이다. 단적인 문제가 엘리트계층의 부재 현상이다. 재산과 고등교육을 비교적 많이 누리는 계층이 한국사회처럼 바깥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정상적 현상이 아니다. 이 사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너무 적다.
자연과의 평화없이 세계평화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근대화'가 산업사회 초입에서의 한 차례 방황이라고 본다면, 본 단계의 근대화는 어떤 방향의 변화일지 무엇을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두 가지 지표를 생각한다. 하나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이고 하나는 인간사회의 조직방법이다. 물론 두 지표는 서로 얽힌 것이다.
종래의 근대화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아무런 절제나 균형을 생각지 않았다. 인간의 일방적 지배만 생각했다. 그래서 근대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의 책임보다 권리만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입각한 근대사회 조직방법에서는 조화와 균형을 확보하는 메커니즘이 취약하게 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관념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때문에 성립되는 것"이라는 환경론자 머레이 북친의 말에 나는 공감하는데, 이 말을 뒤집어서 하면 더 중요한 뜻이 담길 수 있다고 본다. 자연과의 관계에서 균형감각을 잃은 것이 인간사회의 가치관 획일화와 극단적 분화현상을 불러온 것이라는 생각이다.
1945년 원폭 투하에 충격을 느낀 아인슈타인은 "인류와 문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계정부 창설에 달려 있다"고 했다. 현실성 없는 발언이란 비판에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세계정부라는 생각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우리 미래에는 단 하나의 현실적 전망만 있을 뿐이다. 바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전면적 파괴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세계정부'란 국가정부가 국가 내의 질서에 책임을 가지는 것처럼 세계적 질서에 책임을 가지는 주체가 나타나는 '정치적 세계화'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20여 년간 이야기해 온 '세계화'는 따져보면 '경제적 세계화'만을 뜻한 것이다. 진정한 '세계주의(globalism)'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국가의 파괴를 통해 '개인주의'를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와 책임을 규정하고 보장하는 것처럼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을 관리하는 세계정부의 존재가 인류문명의 지속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지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근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정부상태가 계속되어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 동안 초강대국의 위치를 누려온 미국의 역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정부상태 지속이 자국에 유리하다고 미국은 판단했고, 그러한 미국의 정책을 견제할 만한 힘이 지구상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 두 가지만 지적한다. 하나는 미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11.2kw)이 세계 평균(2.1kw)의 다섯 배가 넘는다는 사실이고(2011년 기준), 또 하나는 개인의 총기 보유가 허용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세계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턱없이 높은 자원소비 수준을 계속해 온 나라고, 문명국답지 않게 힘의 원리에 거의 아무런 절제를 가하지 않는 나라다.
2008년의 금융공황은 미국 패권주의 중심의 세계적 무정부상태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중국의 정책 선택이 미국의 정책 선택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 그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그 압박의 수준은 냉전시대의 소련보다 훨씬 더 심대한 것이고,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다. 변화의 추세를 외면하는 미국의 정치적 관성 때문에 대안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입장이 반사적으로 강화되는 형국이다.
아인슈타인의 꿈이 이뤄지려는가?
중국 역시 힘을 키우면 패권주의 성향을 나타낼 걱정이 있다고도 한다. 이미 패권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와 비슷한 것이 될 염려는 없다고 본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갑을관계'를 맺은 것 같은 압도적인 힘을 중국이 가지게 될 것 같지도 않고, 중국이 미국과 달리 문명의 전통을 가진 나라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유럽식 근대화의 출발에 맞춰 만들어진 미국이라는 나라는 유동성 과잉 시대의 산물로서 절제의 메커니즘이 원래 취약한 사회다. 중국이 설령 큰 힘을 갖게 되더라도 홉스봄이 말한 '극단의 시대'를 답습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정부'는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근대국가처럼 꼭 확고한 체제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조약과 협약의 집합체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자원과 환경에 관한 협약의 확대와 강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지금까지 미국의 저항이 뚜렷했다. 미국의 저항력은 그 동안 약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약해질 것이다.
70년 전 아인슈타인이 말한 '당위'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얼마나 뚜렷한 현실이 언제까지 이뤄질지 지금 장담하지 못해도, 지금까지의 전 지구적 무정부상태와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은 분명하다. 무조건적 절대자유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절제'가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을 내다본다.
산업사회가 지구의 한 모퉁이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산업화 선발주자들의 세계정복에는 아무런 거침이 없었다. 그들의 세계정복은 인간의 자연정복과 짝을 이루는 변화였다. 2중 구조의 이 정복사업은 균형과 조화를 고려할 필요 없이 일방적으로 3백 년간 진행되었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에 뒤이은 급속한 산업화는 이 정복사업의 한 차례 완성에 접근하면서 세계가 그 다음 단계에 직면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은 온 세계를 향해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외쳐 왔다. 자기네의 자원낭비 라이프스타일을 모든 인류에게 따라 하라고 권해 왔다. 그런데 막상 13억 중국인과 11억 인도인이 정말 그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파국이 명약관화하다.
자연의 제약을 무시하던 인류의 오만을 버릴 때가 되었다. 그 오만으로 빚어진 절대자유와 절대인권의 환상이 98%에 대한 2%의 지배를 뒷받침해 왔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자연의 제약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인간사회의 조직 원리도 자유와 인권에 대해 보다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균형과 조화가 중시되는 새로운 세계체제의 필요성이 현실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아인슈타인의 눈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세계정부 형성은 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 확충
정치적 세계화를 바라보는 움직임은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란 이름으로 나타나 왔다. 그 이념을 아인슈타인은 '세계정부'로 표현했지만 그보다 '세계연방'이란 말이 더 많이 쓰인다. 국제주의는 민족주의와 맞서는 것도 아니고 기존 주권국가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민족주의와 주권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국제주의가 아니라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앞으로 나타날 세계정부가 형태에 있어서는 지금의 유엔보다 더 치밀한 조직을 당장 필요로 할 것 같지 않다. 국제주의가 한껏 고양된 시점에서 유엔이 탄생했기 때문에 세계정부의 전망이 유엔 조직에 많이 담겨 있었다. 그 후 미국 패권의 부각에 따라 유엔의 세계정부 조직이 공동화(空洞化)하고 만 것이다. 세계정부 형성은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적 조약과 협약이 확대-강화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형태가 어떠하든 세계정부 형성이란 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 확충을 의미한다. 어떤 문명 어떤 사회에서든 지속가능성은 공공성에 바탕을 둔다. 주먹의 힘이든 돈의 힘이든 정보의 힘이든 힘의 작용에 절제를 가하는 것이 공공성이다. 절제 없이 힘이 날뛰는 정글 상태로는 어느 문명이나 사회도 오래갈 수 없다.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처럼 거대한 변화에는 상당 기간의 과도기가 필요하다. 새 체제의 건설보다 옛 체제의 파괴에 주력하는 기간이다. 대형전쟁 등 낭비적이고 불합리한 현상이 많이 일어나지만 자원 공급의 급격한 증가 덕분에 당분간 계속된다. 이 단계에서는 공공성의 원리가 극도로 약화된다. 그러나 자원 공급 증가 추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화하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공공성이 회복된 안정적인 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
근대적 현상의 핵심 요소로 꼽혀 온 개인주의가 과도기의 특징이다. 개인주의는 원자론적 세계관에 근거를 둔 것이다. 공공성의 확충은 원자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유기론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원자론적 세계관이 뒷받침하는 절대적 자유와 절대적 인권의 관념이 유기론적 세계관으로는 상대화의 대상이 된다. 자유도 인권도 현실의 인간관계 속에서 제한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의 꿈을 잃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역사를 통해 실제 어떤 형태로 존재해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제체제니 봉건체제니 속박 속에 살던 상태를 근대인은 미개한 것이었다고 깔보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종이 상당 수준의 속박 속에서 살아갈 특성을 진화시켜 왔다. 그런 특성 없이는 자연조건의 속박 속에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절대인권과 절대자유는 마치 인간이 자연조건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생각한 환상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그 환상에 빠져 문명 발생 이래 사회를 보호해온 공공성의 원리를 잊어버렸을 때 힘을 가진 집단이 아무 견제 없이 힘을 휘두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대형전쟁을 비롯한 온갖 '근대적' 참극이 일어났다.
환상을 버리고 속박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어떤 성격, 어떤 수준의 속박을 어떤 방법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적합한 방법을 찾지 못하면 공공성이 확충된 새 체제가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적합한 방법을 찾는다면 인간의 본성을 지키면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생존과 생활의 양식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분명한 것은 환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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