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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기억과 '사회적 삶'…잊으면 또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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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기억과 '사회적 삶'…잊으면 또 당한다

[주간 프레시안 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실천이 간절하다

'사회적 삶'이라는 개념의 자기화

오랜만에 '사회적 삶'이라는 용어를 떠올립니다. '사회적 삶'이란, 사회 변혁에 참여하는 삶을 뜻하겠지요. 대학 시절 동료들과 개인주의에 찌든 자화상을 비판하며, '사회적 삶'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 삶'이 우리에게 다시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지요. 경제도 민주주의도 많이 성장했지만,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잊혀가는 이유도 여기 있겠지요.

11월 26일 안산에 있는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에서 세월호 관련 특강을 했습니다. 안산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안산의 대학생들이 세월호 이후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세월호 참사가 바로 우리의 일'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개인화된 풍조에서 '사회적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회 변혁에 참여하라는 구호가 요즘 대학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강연을 끌어갔습니다. '사회적 삶'이라는 개념의 자기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절감했습니다.

다행히 몇몇 학생들이 학내에 유가족을 지원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제안이었지요. 하지만 이미 극단적으로 소수화된 학생 운동 참여자들의 제안이었던지라, 일반 학생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될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하튼 소수 학생들에게서 발견한 희망적인 모습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혀줄 빛과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행복을 느끼는 순간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 때를 다양하게 정의합니다. 7가지로 정의하기도, 10가지, 30가지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남녀가 사랑을 할 때,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일의 성취가 있을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등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때가 바로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을 때라고 합니다. 주말에 노인 요양시설에 봉사를 가서 하루 종일 빨래를 하고 귀가하는 내내 가슴 뿌듯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개인적 성취나 쾌락에 의한 행복감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은 이타적 사랑의 실천에서 온다는 것이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이타적 사랑을 확대하고 또 확대하면, 결국 사회를 만나게 되지요. '사회적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이익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즉, 사회 전체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행복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 문제의 해결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실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은 모두 보통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이를 잃고, 처음으로 세상이 자신의 삶과 깊은 상관관계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천박하고 돈만 아는 기업을 그대로 뒀더니,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권위적이고 비효율적인 정부를 그냥 뒀더니, 단 한 명의 아이도 구조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사회를 제대로 변혁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잘못된 사회를 과거처럼 그냥 놔두면, 하늘로 간 아이를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만 소박하게 살아왔던 지난 삶을 가족들은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있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가족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는 일에 7개월 이상을 몸 바치고 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은 그들의 직접적 이해와 거리가 먼 일입니다. 충분히 사회적 이슈가 되었으니, 잘 타협해서 보상 많이 받는 것이 상책이지요.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사회적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11월 26일 가족대책위는 민간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가족 활동 전체를 공유하고, 모든 국민과 사회적 실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홈페이지를 공식 운영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계속해서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그들을 보며, '과연 우리는 이들처럼 치열하게 자신의 문제를 응시하고 있는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족들을 보면서 저 자신에게 다시 묻습니다. 과연 나는 세상 일에 용기 있게 대면하고 있는가? 흐릿해져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다잡아야 하는 지금, 저는 이 물음을 근원에서 다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의 힘

'사회적 삶'은 자신과 직결되는, 혹은 직결되지 않는 사회 현상과 구조적 문제에 대해 명료하게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에서 지우는 것은 사회적 삶을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기억 말살 행위이건, 우리 자신의 무딘 감성에 의한 망각이건, 모두 '사회적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세월호 참사 7개월이 지나면서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의 힘이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개인화된 우리는 그 힘에 쉽게 휘둘리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고 사회적 실천을 게을리함으로써 그 후과(後果)가 우리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 현상의 기억은 보통 3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슬픔과 분노의 단계에서 △위안과 문제 인식의 단계를 거쳐 △상징과 실천의 단계로 발전해가지요. 우리는 지난 4월 16일 억누를 수 없는 슬픔에 잠겼고 천박한 자본과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분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을 스스로, 혹은 서로 위안하며 가라앉힘과 동시에, 분노의 대상을 좀 더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어 슬픔을 극복하고 참사의 상흔을 상징화해 가슴에 새겨 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하는 단계로 발전해 갑니다.

문제는 3번째 단계에서 발생합니다. '상징과 사회적 실천으로 가느냐' 아니면, '망각과 개인화로 가느냐'가 바로 이 단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유가족은 하늘로 간 아이를 가슴에 묻은 채 한순간도 잊지 않고 함께 다닙니다. 그래서 사회적 실천이 가능하기도 한 것이고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아이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빠, 엄마 잘 다녀오겠노라고, 오늘도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겠노라고 아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는 거리로 나가 세상과 치열하게 마주합니다. 그런 처절한 '사회적 삶'이 그나마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상징과 기억이 유가족들에게 남아 있는 한, 그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

저도 망각을 강요당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방법은 무뎌진 저의 감성과 이성을 의식적으로 각성시키는 것입니다. 아침이면, <한겨레>에 박재동 선생이 그린 아이들의 얼굴을 자주 보곤 합니다. 또 리본을 달기도 하고, 노란 팔찌를 끼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가슴속에 상징으로 남겨두기 위한 노력의 하나지요. 그렇게 작은 힘이나마 가족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대장정에 다시 나서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기억을 형성해가는 데 스스로 나서야 합니다. 언론 역시 망각의 관성을 막고 기억과 상징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정상입니다. 그래야 시민 모두 사회적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문제를 근본에서 해결하는 진보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일부 시민들이 거꾸로 가는 세상에 맞서 그나마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있는 겁니다.

실천의 과제들

무엇을 실천할지가 떠오르지 않아,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사회적 삶'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다행히 유가족들이 실천의 과제를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지금껏 버텨주고 있으니, 우리는 기억과 상징을 잘 간직한 채 함께하면 될 것입니다. 또 우리의 삶의 방식 전체를 성찰하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기된 새로운 가치를 하나씩 실천해가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수직적 지배구조에 의해 아이들을 수몰시켰으니, 수평적 참여사회를 만드는 것이 실천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유가족들은 정부의 행위를 도마 위에 제대로 올려놓겠다는 겁니다. 정부의 잘못을 진상 규명해 직접적인 가해 행위자를 처벌하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겠다는 겁니다. 특별법과 특별위원회조차도 결국 싸움만 하는 정치권의 무능으로 제대로 만들지 못했지요. 덕분에 유가족들은 특별위원회와는 별도로, 진상 규명 민간 조직을 만들어 시민 사회의 힘으로 끝까지 감시하고 진상을 밝히겠다는 뜻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수평적 참여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실천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주민 참여 예산제를 통한 마을 만들기 운동, 각 지자체의 다양한 거버넌스 조직에 참여하기 등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돈만 아는 천박한 기업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착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실천의 과제일 겁니다. 정경유착과 비자금 구조를 혁파하는 일, 규제·인허가·검사·수주 등을 둘러싼 온갖 비리 구조를 근본에서 해결하는 일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실천의 과제이지요. 기업 감시, 소액주주운동,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투쟁, 비정규직 착취 구조를 근절하는 일, 생활 접점 영역에 협동조합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일 등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개인적 실천을 요구하는 일도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제기됐습니다. 왜곡된 소비 문화, 서민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명품 문화를 버리고 소박하고 진실한 서민적 행복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삶'은 이런 실천의 영역을 자신의 일상 속을 끌어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개인적 실천, 집단적 실천, 유가족이나 시민단체의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실천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마을 운동 등을 통해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를 실천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금 운동을 포함해 유가족의 투쟁을 지원하는 방법을 찾는 일도 긴요하고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할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고잔동의 공동체 운동

유가족들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안산시 고잔동에서 최근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에 대한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싸움을 지속하되, 한편으로는 일상 삶의 영역에서 새로운 미래사회를 열어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본격화된 것이지요. 물론 기반에는 '사회적 삶'을 제대로 실천하는 많은 유가족이 있습니다. 이들의 의지와 참여를 전제로 한다면, 고잔동 공동체 운동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416 기억저장소'를 거점으로, 다양한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습니다. 교육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공동 돌봄 프로그램과 책 읽기에서 각종 문화예술에 이르는 공동 배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먹을거리와 관련해서는 마을 밥차 협동조합, 소규모 소비협동조합도 구상하고 있고, 또 안산 지역 의료협동조합을 고잔동에서도 실현하기 위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416 기억저장소'가 소통의 중심 공간으로, 마을 신문을 발간하는 일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인들과 결합한 각종 마을 행사 역시 마을 운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뜻있는 이들이 매주 화요일 ‘416 기억저장소’에 모여 고잔동 마을 공동체 운동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회적 실천'의 구체적인 상을 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잔동 공동체 운동이 널리 퍼져 일상의 사회적 실천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다시 '사회적 삶'이라는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더 이상 이런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의 사회적 실천은 간절합니다. 더 크게 본다면, 성장 위주의 흐름을 인간 중심으로, 착한 사회경제의 흐름으로 바꿔가는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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