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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의 사인 밝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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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왕' 신해철의 사인 밝혀낼 수 있을까

[안종주의 건강사회] 신해철이 우리에게 남긴 두 가지 숙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떤 범죄자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진실을 아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영화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거꾸로 죽은 사람은 진실을 말한다는 말도 있다. 법의학자들이 좋아하는 말이다.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대부분 드러나기 마련이다. 물론 유병언 씨의 죽음이나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희생자처럼 그 진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왕' 신해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팬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절절한 애도의 시간을 보내며 그의 사인이 밝혀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의료사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함께 텔레비전 방송의 건강의료 프로그램과 이들 프로그램의 광고성 출연자에 대한 비판도 줄을 잇고 있다.

치명적 의료사고의 대부분은 수술이나 마취 등 때문에 일어난다. 몇 년 전 탤런트 박주아 씨가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다 장 천공 등과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지는 일이 생겼다. 치아에 문제가 있어 치과에서 간단한 마취를 받던 학생이 몇 분 만에 숨지는 일도 있다. 누가 봐도 의료사고처럼 보이지만 법정에서 이를 인정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다.

병원이 의료사고 아니라고 증명하도록 제도 바꿔야

▲ 탤런트 고 박주아 씨. ⓒ연합뉴스
건강사회는 의료사고가 없는 사회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의료사고가 거의 필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사고 가운데에도 정말 나쁜 의료사고가 있다. 멀쩡한 사람이 생명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수술이나 처치를 받다가 숨진다면 그것은 나쁜 의료사고이다. 신해철도 그 희생자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우리 사회가 건강사회라면 이 나쁜 의료사고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병원과 유가족 측의 공방,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 발표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사건 또한 법정에서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그리고 100건 가운데 한두 건만 환자나 유가족 측이 승소하는 역대 의료사고 소송 결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증거 부족에 의해 환자 쪽이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 의사는 세계 어느 나라 의사에 견주어 신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말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병원은 수술 과정을 영상과 의무기록으로 꼼꼼하게 남겨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증거 부족은 바로 이 때문에 빚어진다. 종종 의무기록을 조작하는 일도 벌어지곤 한다.

만약 이런 기록을 병원 쪽이 고의로, 또는 부주의로 제대로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사고 의혹이 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경우 무조건 병원 쪽이 의료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내지 않는 한, 의료사고로 보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면 적어도 사고를 당하고도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억울함은 풀 수 있지 않을까.

신해철 병원 사망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국회 등은 의료사고를 줄이고 의료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 쪽이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사실상 두 번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건강 프로그램, 이대로 좋은가?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사, 한의사 등 의료인이 방송의 건강의료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해 병원의 인지도를 높이고 자신들이 만들어 파는 건강(기능)식품을 사실상 간접 광고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건강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순기능이 물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출연하는 의료인을 최고의 전문가로 착각하게끔 만든다. 이 때문에 이들을 찾거나 이들의 말을 '바이블'처럼 따르다 자칫 건강을 해치거나 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역기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방송의 대세는 건강의료 프로그램이다. 산 속에 홀로 사는 자연인을 찾아 나서거나 산야초를 활용한 식단을 건강을 보장해주는 명약처럼 소개하는 프로그램, 특정 성분이나 식품, 질병, 건강비결을 놓고 의료인과 연예인이 함께 나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은 종편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신해철 사망 사건으로 유가족 측과 의료사고 여부를 다투고 있는 서울 ㅅ병원도 원장이 <닥터의 승부>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얼굴을 내밀면서 더욱 유명세를 날려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 원장은 사건 이후 일단 <닥터의 승부> 출연을 중단했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닥터의 승부> 프로그램 폐지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신해철의 사망과 이 방송프로그램이 직접 관련은 없겠지만, 만약 그가 방송 때문에 유명해진 병원을 믿고 찾아갔다면 100%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만 문제 삼는다면 그 또한 적절치 않다.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도 이번 기회에 면밀히 살펴야 한다. 방송사 쪽의 자율적인 출연진 걸러내기 작업이 중요하겠지만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나 보건복지부 등의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최근 방송사에서 앞 다투어 방영하고 있는 (건강)의료프로그램들을 대충 훑어보아도 TV조선의 <닥터콘서트>, 채널A의 <닥터지바고>, KBC의 <닥터 365>, OBS의 <체인지 라이프 닥터&스타>, 트렌드E의 <미녀의 탄생>, 스토리온의 <렛미인> 등 매우 다양하다.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도 많다. MBN의 <황금알> 등을 포함해 몇몇 프로그램은 건강의료 전문은 아니지만 자주 의료와 건강을 주제로 한 방송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렛미인>은 얼굴 기형이나 고도 비만 등으로 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당사자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이 때문에 출연한 개인이 새로운 삶의 도전을 하도록 북돋워주는 긍정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에 출연하는 의사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대한 소비자들의 맹목적 추종과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성형이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그릇된 시각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부작용 또한 매우 심각하다.

또 일부 성형병원에서는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것을 무기로 상담은 유명 의사가 하고 실제 대부분의 시술은 얼굴 없는 고용 의사가 하는 환자 속이기가 이루어지고 있어 의료사고 위험성을 높이고 수술 후 부작용과 환자의 시술 불만족으로 인한 분쟁을 낳을 우려가 있다.

상업적 의료인 건강 프로그램 출연 막아야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실력 있고 환자를 잘 챙기는 병원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홍보할) 돈이 있고, 말 잘하며 방송과 연줄을 댈 수 있는 병원이 승승장구하는, 의료계로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업 의료가 판치게 된다. 방송은 오로지 시청률 경쟁으로 앞 다퉈 건강의료프로그램을 띄우고 있지만 길게 보면 방송의 신뢰성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보건의료는 그 어느 부문보다 정보의 비대칭성, 즉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와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큰 분야다. 따라서 이를 활용한 방송 프로그램은 신중하게 기획제작·방영돼야 한다. 방송에서 의료광고를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방송 프로그램은 의료인이 떼돈을 벌고 병원의 몸집을 공룡처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을 정부와 의료계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전면 개편이나 중단이 힘들다면 적어도 대학병원이나 공공병원이 아닌, 사실상 개인병원 의사나 '○○주스' '○○다이어트', 오메가3, 유산균, 베리제품 등 건강기능식품을 수입·판매하거나 또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파는, '전문가 장사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상업적 의료인은 프로그램 진행이나 출연을 당장 금지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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