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이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는 유해물질이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며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면 배출되지 않고 10~40년 후에 질환이 발병하는 무서운 물질이다. 석면질환은 악성중피종, 폐암, 석면폐증, 미만성 흉막비후 등이 있다. 대표적인 석면질환 중에 악성중피종은 석면 노출로 인해 발병하는 암의 일종이다. 발병 가능성은 인구 100만 명 중 10명 정도로 추정한다.
석면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몇 해 전 베이비파우더의 주원료인 탤크(Talc, 활석(滑石)을 분말로 한 것)에서 석면이 검출된 사건이다. 당시에 화장품, 의약품, 수술용 장갑 등에 석면함유 탤크가 쓰이고 있어 충격을 주었다. 아기에게 석면이 함유된 파우더를 발라 줬더라도 당장 발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잠복기가 길다는 것이다. 특히나 어른에 비해 흡연 등 다른 위험요인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석면에 의한 악성중피종은 석면 노출빈도가 높아서 발병하기보다는 잠복기가 길면 발병 가능성이 증가한다. 1년 지나면 2배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100배, 1000배 발병 확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욱 위험하다. 당장 발병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해서 석면을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는 석면에 안전한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정집 이외에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학교와 학원이다. 그곳에 석면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있다면'이 아니라 있다. 있어도 많이 있다. 2009년 교육부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1만 9815개 학교를 대상으로 석면 실태 전수조사를 했다. 결과는 전체 학교 중 85.7퍼센트인 1만 6982개 학교가 석면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훼손 상태에 따라 등급을 나눠 분류했는데 훼손 정도가 심한 1등급(전체 면적 대비 훼손 정도가 10퍼센트 이상 또는 부분 훼손 25퍼센트 이상) 판정을 받은 학교는 140개, 2등급(전체 훼손 10퍼센트 미만 또는 부분 훼손 25퍼센트 미만) 2822개, 나머지는 3등급(시각적으로 훼손이 없거나 아주 국소적인 경우)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실태조사 후 1등급과 2등급인 곳을 개·보수하여 2011년부터는 전체 학교를 3등급 상태로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당시 조사는 '육안 검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해마다 지방자치단체 의회나 국정감사 등에서 학교 석면 사용 실태가 뉴스 기사로 전달되는데, 학교 석면이 80퍼센트 전후로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는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학원에도 석면이 있다
학교 건물에 대한 석면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교육 당국은 최소한 육안 조사라도 해서 관리하고 있다. 학교 건물과 비교해 방과 후 어린이와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학원 건물의 석면 노출 문제는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학원 건물에 대한 석면 조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1년 조사는 서울의 주요 학원이 밀집된 서초구, 양천구, 강서구, 노원구 4개구에 위치한 상가건물 5곳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 결과는 상가건물 대부분에서 천장텍스 등 석면건축자재를 사용하고 있었고, 관리 소홀로 곳곳에 구멍이 나있거나 부서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2년 후인 2013년 동일한 상가건물을 재조사하여 훼손 정도와 관리 실태를 추적조사 했다. 대부분 훼손부위가 증가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훼손 정도가 크게 증가한 건물은 2011년에 비해 218퍼센트나 훼손부위가 늘었고, 비교적 훼손이 적게 증가한 곳도 131퍼센트나 됐다. 서초구의 한 학원은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석면함유 천장재를 무단으로 훼손하는가 하면 제거된 석면자재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기까지 했다.
2014년 7월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학원가인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와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관한 석면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 일대 학원 밀집 대형건물 30개 동을 층별로 전수 조사한 결과, 83퍼센트인 25개 동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석면 자재는 대부분 천장재였으며, 일부는 칸막이재로 석면이 함유된 밤라이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는 중계동에 비해 건물을 리모델링 하면서 석면함유 천장재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오래된 아파트 상가건물 2곳은 여전히 석면 함유 천장재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엉터리 학교 석면 조사
우리나라는 석면 사용 금지 국가다. "그런데 왜? 학교 건물에 석면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엄밀하게 따지면, 한국은 석면 사용에서 폐기단계에 속한다. 지난 2009년부터 "석면함유제품을 제조·수입·양도·제공 또는 사용"을 금지했다. 신규 사용이 금지됐을 뿐 기존에 사용된 석면건축자재는 여전히 사용중에 있다. 대표적인 사용처가 공공 건물과 학교 건물이다. 2012년 4월 29일 시행한 '석면안전관리법'은 모든 건축물에 대한 석면 조사를 하도록 했다. 학교 건축물은 1년 이내에 석면 조사기관에서 석면 조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대로라면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는 석면 조사가 완료되어야 한다. 그런데 예산을 이유로 편법을 동원했다. 석면안전관리법이 시행되기 전에 이미 석면 조사를 한 건축물은 '기존 석면 조사 인정' 절차로 불필요한 중복조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지침이 악용됐다. 2009년에 '육안 검사' 방식으로 이루어진 석면 조사를 학교 건물만 예외적으로 환경부가 인정해주었다. 보완을 위해 '석면 조사기관을 통해 추진'이란 조건을 달았지만, 가장 핵심인 조사기간은 정하지 않았다. 지방교육청이 예산을 이유로 석면 조사를 계속 미룰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대부분 지방교육청은 작년과 올해 석면 조사를 실시했거나 조사 중이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경기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전라남도는 내년까지 완료할지 의문이다. 현재 교육부는 학교 석면 실태에 관해 '육안 검사'와 '석면 조사기관' 자료가 혼재되어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다. 석면 함유는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다. 석면 전문기관의 분석을 통해 석면 종류와 농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학교와 학원의 석면이 위험한 이유
2011년부터 시행중인 석면 피해 구제 현황을 보면, 지난 7월까지 전체 인정자는 1426명이다. 20~50대 연령대가 321명(22.5퍼센트)이고 이중 사망자는 164명(51퍼센트)이었다. 연령대로는 20대 4명, 30대 27명, 40대 76명, 50대 214명 등이다. 석면은 노출 후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의 긴 잠복기를 거친 후에 발병하는 석면 질환의 특성을 고려할 때 20~50대 환경성 석면피해자의 상당수가 10대의 어린 나이에 석면에 노출된 것이 원인일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가 석면에 노출될 경우 성인이 된 후에 질환이 발병하여 어디에서 노출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현재와 같은 상태로 학교와 학원의 석면 사용 문제를 방치하면 20대와 30대 환경성 석면 피해자가 더 늘어날 것이 우려된다.
교육 당국은 학교 석면 문제를 유지 관리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 예로 교실 내 공기질 측정결과 석면이 기준치 이하로 측정되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공기 측정에는 허와 실이 있다. 일각에서는 석면을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공기질 측정결과 기준치 이상 석면이 검출되면, 더 이상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석면 노출은 사전 예방이 최우선이다. 의미 없는 공기 측정보다 중장기적인 석면 제거 정책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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