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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최룡해·김양건, 전격 내려온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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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최룡해·김양건, 전격 내려온 진짜 이유는···

"남북 관계 개선 의지 표명하려는 것"···박 대통령 면담은 '시간' 문제 거론하며 생략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이 박근혜 대통령과 별도의 면담 없이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했다. 지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을 위해 내려왔던 북측 대표단이 원래 일정보다 하루를 더 남한에 체류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담당 비서 등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남한을 찾은 북측 대표단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김규현 제1차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남측 대표단과 4일 오후 인천의 한 식당에서 오찬 회담을 한 뒤 바로 선수촌으로 떠났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오찬 회담 시 우리 측은 북측 대표단이 청와대 예방 의사가 있다면 준비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지만 "이에 대해 북측은 시간 관계상 이번에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남한 정부 관계자들이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 차 방문한 북한 황병서(오른쪽에서 두 번째)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과 인천의 한정식 집에서 오찬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두고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가, 박 대통령을 직접 면담하고 오라는 것이 최우선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지에서 분위기에 따라 박 대통령 면담을 추진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번 방문 목적이 남한과 관계 개선 및 이번 아시안게임 성과를 자축하며 체육 강국으로 나아가려는 국내 선전용이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관심을 끌었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친서는 없었지만 현안에 대해 협의하자는 것이 하나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건강 문제, 남북 정상회담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날 회담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회담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느냐에 대해 이 당국자는 "남북 간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고만 답하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는 "이번 회담이 특정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회담에서는 남북 고위급 접촉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 당국자는 "회담에서 북측은 그동안 우리가 제안했던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고위급 접촉 개최에 필요한 세부 사항은 실무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황병서·최룡해·김양건 왜 내려왔나?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은 현 북한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도 하지 않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가져오지 않았는데도 굳이 남한에 내려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차 고위급 접촉에 응한다는 입장은 직접 내려와서 언급하지 않아도 남북 간 통신 채널로 충분히 전달 가능한 수준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북측 대표단의 방문 목적에 대해 "첫 번째는 남북 관계에서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표명하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국과 중국에 자신들이 남측과 대화하려고 한다는 모습을 보여줘서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 때 조화를 보낸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당시 김양건 부장이 왜 굳이 개성까지 와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의원을 만났겠나.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했던 것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 역시 이번 방문은 남한을 포함한 국제 사회에 남북 관계 개선 및 대화 의지가 있음을 명확하게 천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측 대표단은 이번 방문으로 남북 관계 개선의 주도권을 쥐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대화의 의지가 있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기 위해 남한을 찾은 것이라면, 남북 관계 개선의 공은 이제 남한에 넘어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회담 개최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서 각자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를 들면 북한은 5.24조치를 해제하고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명확한 입장을 가진 채 남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지 물어봤다"면서 남한 정부가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회담의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남북 간 현안에 대한 남한의 입장은 이전과 동일한 상황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찬장에 들어서기 전, 북한이 대북 전단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삐라(대북 전단)는 민간 단체에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 법체계를 (북한에) 잘 이해시켜야죠"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나서서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를 막지는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 대표단은 별다른 충돌 없이 오찬 회담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백 수석연구위원은 "(오찬 회담에서) 남북이 서로 현재의 이 판을 깨지 않으려고 하면서, 각각의 현안에 대해서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수준의 이야기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남북 관계 개선의 입장에서 여러 관련 이슈들을 다 이야기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공방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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