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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알렉산더 코스프레' 유가족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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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알렉산더 코스프레' 유가족 울렸다

[주간 프레시안 뷰] 유가족 내친 세월호특별법

'고르디우스의 매듭' 설화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깁니다. 고대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제우스에게 바칠 마차를 아무도 쓰지 못하도록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둡니다. 이 매듭을 푸는 이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란 신탁에도, 누구도 풀어내는 이가 없었습니다. 수백 년 뒤, 이 매듭은 알렉산더의 칼에 잘려나갑니다. 푸는 대신 단칼에 잘라내는 과감한 해법을 쓴 알렉산더는 실제로 지중해와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에 비유되는 결단력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박근혜 대통령이 사용하는 순간 정복자의 서슬 퍼런 맹위만 느껴집니다. 젊은 시절 삼국지 속 칼 잘 쓰는 '무인' 조자룡을 흠모했던 이 여인은 요즘 부쩍 '대왕' 알렉산더의 영웅담을 통치의 수사로 풀어내는 일이 잦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9월 30일 국무회의 모습. ⓒ청와대

지난 9월 3일, 박 대통령은 규제 철폐를 채근하며 "워낙 실타래같이 얽혀있어서 웬만큼 풀어서는 표가 안 난다"면서 "엉켜있는 실타래를 끊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고르디우스 매듭같이 과감하게 달려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24일에는 "통일을 추진해나가는 데 있어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버리듯이 얽힌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게 필요하다"면서 "(북한의) 탈북자, 핵, 인권 문제 등이 복잡하게 엉켰는데 그걸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통일"이라고 했습니다.

규제 문제나 한반도 통일은 단칼에 잘릴 리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됩니다. 당장의 효과도 불분명할뿐더러 경제적 강자들의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는 규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립성과 전문성에 바탕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경계합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국내 정치와 이념의 역관계, 우리의 미래까지 얽힌 남북문제도 폭탄 해체하듯 신중하고 정교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어떤 대안과 계획을 가지고 매듭을 자르겠다는 건지는 묘연하기만 합니다.

박 대통령이 휘두르는 칼은 그래서 과감한 해법의 칼이 아닙니다. 외려 민심을 쪼개고 진영을 갈라 사회 이곳저곳에 상처를 내는 선무당 칼춤에 비유할만합니다. "마지막 결단"이라며 던진 '박근혜 가이드라인'에 난도질당한 세월호특별법이 확인해줍니다. 167일만이라고 합니다. 4월 16일 참사가 벌어진 날로부터 5개월 반 만에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9월 30일 타결됐습니다. 말이 좋아 타결이지 박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8.19 '2차 합의안'이 사실상 그대로 관철됐을 뿐입니다.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며 청와대 입장을 대변해온 새누리당 친박 강경파들의 반대로 특별검사 추천 과정에 유가족들의 참여는 어렵게 됐습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이 신신당부한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 약속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그리곤 적반하장. 유가족 고립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보수언론들은 3차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가족들에게 또 돌을 던집니다. "유가족들이 세 번이나 여야 합의를 걷어찼다"는 겁니다. 지지율이 떨어졌으니 박 대통령도 세월호의 피해자라는 주장까지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유가족들은 오히려 167일 동안 물러나기만 했습니다. 그들이 간절하게 바랐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호소조차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협상 때마다 걷어찬 결과가 최종 타결안입니다.

"박 대통령도 피해자"라는 주장 역시 궤변입니다. 박 대통령 스스로 "참사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인 박근혜가 아닌, 국가의 책임 주체로서의 박근혜를 부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점차 세월호 선장과 유병언 씨에게 책임을 미루는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였습니다. 그렇게 책임론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박 대통령은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통령이 나서달라며 청와대 코앞까지 찾아간 유족들을 매몰차게 외면했습니다. 법 제정은 국회 소관이라며 삼권분립 논리를 내세워 오불관언하던 박 대통령은 또 어느새 표변해 특별법 협상에 가이드라인을 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 최종 협상이 진행되던 9월 30일에는 "모든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야당을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빼야 할 때 칼을 빼지 않고 잘라야 할 곳을 자르지 못하더니 엉뚱한 곳에 칼을 휘둘러버린 셈입니다. 잘못 휘두른 이 권력의 칼놀림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났는지 모릅니다. 단식 중이던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일베(일간베스트)'의 '광화문 폭식투쟁'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서북청년단 재건위'라는 끔찍한 이름의 단체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을 자르겠다고 설쳐댑니다. 통합을 내팽개치고 이념의 화신이 된 대통령이 사회를 둘로 쩍 갈라놓자 보수의 탈을 쓴 완장부대가 튀어나온 꼴입니다.

박 대통령이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며 수사 당국의 고삐를 조이자 사이버 검열 사건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보통 사람들의 사적인 대화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를 제안하거나 참여한 사람들을 수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누구나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카카오톡을 압수수색한 겁니다.

정진우 씨의 경우 무려 3000명에 이르는 카카오톡 친구들의 대화내용이 고스란히 공권력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용혜인 씨는 카카오톡 친구들의 위치 추적이 가능한 정보까지 털렸다고 합니다. 도청과 다를 바 없는 이 무시무시한 감시의 세상에서 우리의 사생활은 정진우, 용혜인 씨보다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세월호를 국민들의 입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는 시도 또한 계속될 겁니다. 이미 박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날부터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세월호와 관련된 교사들의 활동을 금지하라고 지시한 바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전국 각지의 분향소 철거 요구가 제기되고 있고, 국회 사무처는 국회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에게도 "공공기관이 불법적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며 자진퇴거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박 대통령의 '알렉산더 코스프레'가 정치권과 일반국민들에게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켰는지 가늠할만합니다. 하지만 세계의 끝을 보겠다며 인도로 진출한 알렉산더의 꿈 역시 실패로 끝났음을 박 대통령이 기억하기 바랍니다. 긴 원정과 지독한 인도의 자연환경에 지쳐 원정은 중단됐고, 알렉산더가 이룩한 거대한 제국도 불과 10년이 유지된 뒤 몰락해 쪼개졌습니다. '국가대개조', '적폐 청산' 같은 제국 건설의 구호는 단임제 대통령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과감한 결단으로 악순환의 매듭 끊기가 절실한 쪽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침 내일(3일), 전국에서 팽목항으로 향하는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합니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난 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도착을 예정으로 도보순례 중입니다. 3차 합의안을 서둘러 내고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야당도 유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세 번 째 십자가를 지운 것 같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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