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13일 전군의 주요 지휘관들과 병영문화혁신위원 등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그동안 쌓여온 뿌리 깊은 적폐를 국가혁신과 국방혁신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장병 개개인의 인권이 보장되고 인격이 존중 받을 때 병사의 마음에서 자부심과 능동성이 생겨나고, 군도 하나로 뭉쳐서 강한 전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무엇보다 병영문화 혁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진정한 의지와 실천이 따르는지에 있다. ‘뿌리 깊은 적폐’를 일소하려면 그 적폐의 원인을 살펴 그 적폐가 기득권세력의 어두운 뿌리와 관련된 것이라 해도 과감히 척결해낼 의지를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대통령, 국방장관, 참모총장이 앞을 다퉈가며 개선방안을 약속하는 와중에도 군내 가혹행위 소식은 끊이질 않는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나라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는 나라에서 수십 년이 지나도록 군의 인권수준은 늘 바닥이다. 대체 왜 그럴까?
분명 병영생활을 하는 우리 군인의 현실은 교도소 재소자의 그것만도 못하다. 적어도 오늘 우리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새로 들어온 신입 수형자를 상대로 ‘기강’을 잡기위해 가혹행위를 했다거나, 일방적인 폭행을 당해 누군가가 죽어갔다는 소식은 없다. 교도관들이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재소자들을 착취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고 권한을 남용하여 부조리한 일을 획책한다는 소식도 줄었다. 하물며 교도관끼리 업무상의 불만 때문에 상급자가 하급자를 구타했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또 재소자가 아픈데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한다거나, 아픈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는 게 늦어 재소자가 죽어갔다는 소식도 없다. 부당한 수형생활을 못 견뎌 재소자가 자살했다는 소식도 잦아든 지 오래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아직도 이런 일이 속출한다. 누구나 알고 있던 부조리와 비리가 여전하다. 도무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질 않고, 당국이 제시하는 대책이란 것도 고장 난 레코드처럼 같은 얘기의 반복일 뿐이다. 하물며 진짜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정말 적폐도 이런 적폐가 없다.
교도소의 상황, 재소자 인권의 문제는 오랜 시간 우리 사회의 치부로 남아있던 숙제였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교도소와 병영의 구조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위가 흡사한 것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적다. 그렇다면 대체 교도소와 군은 뭐가 달랐기에 오늘날 이런 차이를 보일까? 결정적 차이는 투명성의 확보와 독립성을 가진 기구에 의한 감시와 정화가 가능한지의 여부에 있다.
교도소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상황에 대한 상시적 감시를 받는다. 또한 교도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찌되었든 독립된 수사기관인 경찰, 검찰에서 수사가 이루어져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된다는 점도 재소자들의 인권의식 향상과 더불어 부조리의 근원을 차단하는 중요한 결과에 기여했다. 교도관들 또한 폐쇄성을 탈피하고 스스로 인권의식을 가다듬으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은 법과 제도의 변경을 통해 시작되고, 발전하고, 정착된 것이다. 물론 현재의 교도소와 행형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고, 완전무결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적어도 군내의 병영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잔혹한 인권침해와 어이없는 인명 손실의 문제는 많이 해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는 군의 전근대적 악습 또한 투명성의 제고를 통한 민주적 감시의 강화, 그리고 독립된 외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의 감시 및 조사와 처벌을 통해 상당 부분 나아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사회, 제대로 된 군대의 조건
유대인 학살로 대표되는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저지른 독일군은 패전 이후 완전히 해산되었다가 치열한 사회적 토론을 거쳐 다시 편성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주목한 것이 군인의 인권 보장을 명확히 하는 제도였다. 전시에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단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범 국가들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보다 인간적인 무력의 사용이라는 주제 아래 인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토론과 노력이 이어졌다. 이것이 '전쟁법'이라는 새로운 국제규범의 형태로 자리 잡았음은 물론, 군사법제도의 개선 외에도 지휘권의 합법성을 담보하기 위한 군사옴부즈만(‘국방감독관’으로 번역하기도 함 ; Wehrbeauftragter) 등 각종 제도의 정비에 따른 많은 성과가 분단을 경험한 독일과 대만 등을 포함한 각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인권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 집단이었던 전쟁수행 조직으로서의 군대가, 현대사회에 와서는 인권을 가장 보호하고 중시하는 입헌적 국가기관의 하나로 변모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선진 민주국가의 보편적 추세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군대 내의 인권문제는 단순히 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전제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된 나라의 선진적 징표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군대를 도외시한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군대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군대는 어떠한 집단보다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삶에 '군사문화'를 이식하기도 했다. 한편, 해방 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깨끗이 걷어내지 못한 일본군대의 구습과 폐해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병영생활에 어둡고 음습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물며 군부엘리트들과 군 출신 정치인 등이 한동안 우리 사회의 강력한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동안 군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부담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고 군부 엘리트들의 사회참여 또한 민간 엘리트에 못지않은 능력과 식견을 겸비하여야만 가능해진 지금에도 군과 군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미약하다. 단지 간간이 언론을 통해 정해지던 군내의 인권유린(논산 훈련소 인분 사건(1), 소위 '멸치 장군'(2) 사건 등)을 고발하는 소식과, 잊어버릴 만하면 터지는 총기난사사건, 진료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젊은 병사들의 이야기(2005. 11. 노충국 씨 사망사건 등) 등을 통해서만 순간적 관심과 비판이 끓어올랐을 뿐 그 본질에 대한 천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군은 계속된 사고로 국민으로부터 완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터넷 게시판에는 입대를 앞둔 이들과 그 가족의 불안과 불신, 군대에 대한 원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지속해서 수없이 제기되었음에도 여전히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군대가 지켜야 하는 것
헌법상 보장된 군인의 기본적 인권은 당연히 구체화하여 법치국가에 부합하는 군인 인권보장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군은 국방을 위한 무력을 가지는 집단으로서 헌법적 원리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 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법에 의한 지배가 보장되는 정치적 공동체를 수호하는 데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고 한다. 군대가 수호해야 하는 것이 민주적 기본질서라면 군대 자신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되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는 부하의 인권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며 모범을 보이는 지휘관상을 구현하여야 한다. 지휘관 스스로 군사훈련의 목표와 규율이 궁극적 목적인 헌정질서의 수호와 정의구현에 있다는 신념을 지녀야 하며,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명령에 대하여는 자신 있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상하를 막론하고 군인 스스로 동료의 인권을 존중하고, 전투 시에도 적과 포로를 국제인도법에 따라 처우할 줄 아는 군대야말로 시민의 벗이 되고 자랑스러운 국민의 군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무시될 경우 군인은 결국 상관의 명령이면 무엇이든지 복종하는 노예나 기계가 되어 국가가 공인하는 폭력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현대사에서 우리 군이 저지른 여러 가지 어두운 사건들은 그러한 점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이제는 이러한 과거의 잘못을 떨쳐버리고 민주질서를 수호하고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군대의 모습을 구현하고 확립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인권과 지휘권은 결코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인권을 보장하는 지휘권의 행사만이 헌법상 용인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군 사법제도가 온존되는 한 군인 인권보장의 최소한을 지키려는 노력은 금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우리가 그렇게 갈구하던 민주화의 실체가 결국 정치적 의사표현과 의견형성의 자유 및 국민을 위한 사법 구현에 있었음을 생각할 때 우리 군대가 보여주는 현실은 아직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민주화 시대를 가르는 표징인 ‘군사독재’ 시절의 적폐에 대하여 우리는 단 한 번도 근본적 성찰과 제도적 개혁을 이룬 바 없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군인은 마땅히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적 인권을 향유하는 존재임에 의심이 없어야 한다. 또한, 상명하복을 강조하며 집단적 임무수행을 한다는 점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부대환경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민주국가의 당위로서, 독일의 경우 ‘내적 지도의 원리’라고 표현되나 좀 더 구체화하여 ‘민주적․시민적 지휘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인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 창설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 확인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폐지를 포함한 군사법제도의 개혁과 군인인권법의 제정은 필수적이며, 국가배상 및 국가유공자 제도 또한 헌법적 차원에서 재정립되어야만 한다. 인권이 살아 숨 쉬는 군대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군대인 것이며, 그때 우리 국민들은 군에 복무하는 것을 진정한 자랑과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군 사법제도의 역사와 현실
지휘관의 제왕적 지위를 보장하며 군내 각종 사고의 진실을 은폐하는 주범으로 부각되고 있는 우리 군사법원법의 역사를 보면, 관할관의 권한이 점점 축소되는 것과 함께 심판관의 역할도 축소되는 쪽으로 개정되어 왔다. 한마디로 일반 형사재판에 가까운 쪽으로 천천히 변해왔던 것이다. 애초 지휘관 사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에는 합의부를 구성하는 3인 가운데 2인이 일반장교인 심판관이었다. 이러한 구성이 변호사의 자격을 가진 군판사를 과반수로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 불과 1994년의 일이다. 결국 군사법원법의 역사가 말해주는 바와 같이 지휘관(관할관)은 강제수사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고 자신의 부하를 재판부에 포함시켜 재판의 성립에 관여한 다음 확인조치권을 통해 이미 선고된 판결의 내용까지 변경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였다.(3)
이러한 과정에서 사법권의 독립 내지 인권보호를 위한 감시자로서의 사법의 역할은 형해화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군사법제도의 정당성은 물론이고 군에 대한 근본적 불신의 원인으로 자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군 사법제도의 개혁은 시대적 요청이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특히 인권보장에 적합한 사법제도의 구축, 최고법원을 정점으로 한 사법체계의 통일성 확보라는 헌법상의 요청은 군의 특수성이나 군사법체계의 특수성이라는 논리보다 우월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국제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군대를 시민사회로부터 분리된 특수사회로 보는 시각은 후퇴하고 있으며, 인권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국제 인권기준의 강화, 프라이버시 기준의 강화에 발맞추어 군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이다.(4)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파견 군대를 위해 설립된 군사법원은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존재 여부가 다르다. 한국과 같이 '헌법'에 군사법원의 설립근거를 두었지만 독일은 군사법원을 두지 않고 있다. 대만의 경우에도 군사법원을 폐지했다. 반면에 전 세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군사법원이 가장 발달해 있다. 비교법적 관점에서 각국의 군 사법제도를 검토해보면 군 지휘관에게 사법권까지 부여하는 전통적인 군 사법 운용방식이 급격하게 와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 적어도 우리와 같은 지휘관 군림의 군사재판 제도를 가진 나라는 없다. 지휘권의 행사에 사법권의 행사가 당연히 포함된다는 인식은 이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유지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현대전을 수행하는 군대는 과거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만큼, 그러한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인식 또한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군대의 사명은 영토를 기준으로 한 물리적 개념으로서의 국가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본질서인 헌법과 헌법이 표방하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현재 우리 군사재판의 85%를 차지하는 것은 일반 형사범이며, 군형법상의 특수범죄라는 것도 군무이탈, 상관 폭행 등 본질에서 일반 형사범의 행위태양과 다를 바가 없다. 도무지 90개에 육박하는 군사법원이 별도로 존재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헌법과 군대, 군사법제도
과거 우리 군은 헌법의 규율을 받는 국가기관의 하나로 인식되고 운용된 것이 아니라, 헌법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특수조직의 하나로 치부되어 온 경향이 있다. 군 스스로도 시민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자임하며 스스로 헌법과 법률을 무력화하거나 자신에게 편리한 쪽으로만 활용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군은 사회의 민주화와 합리적 발전과정을 따라가지 못한 채 홀로 고립되어 정상적이고 단계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고, 군사정권이 종식된 지금은 개혁을 요구받고도 전혀 논리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질적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 군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고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에 대한 냉소 또한 여전하다. 지휘관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니 모든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감당해보려다 결국 무너지는 과정에서 갖은 무리수를 두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며, 구성원들의 사기 또한 나날이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군에 헌법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군의 미래도 없고 우리나라의 미래도 없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헌법이 바라보고 구현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군의 모습을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성찰할 때에 온 것이다.
군 지휘관들 가운데에는 사법권을 지휘권의 한 내용으로 포함시킬 때 군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지휘권의 개념을 초법적인 것으로 전제하며 부하들의 위치를 항상 지휘관의 관리와 보호 하에 두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나아가 지휘권을 행사하는 지휘관의 무오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반박에 대하여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헌법은 분명 군사법원을 사법기관으로 인식하며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행정기관장인 지휘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의 어느 행정기관장도 사법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대통령의 통수권 아래에 있는 군 지휘관들이 사법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너무도 극명한 모순이다. 현상이 이러하였고 그것이 우리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사법의 역할에서 매우 동떨어진 것이라면, 이제는 그것을 과감히 버려야만 한다. 언필칭 ‘국민과 함께하는 튼튼한 국방’을 외치면서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만들려는 것을 국방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면 그간의 전근대적인 군사법원 운영은 이제 중단되어야만 한다.
이제 그 누구도 특권을 보유한 채 성역 속에 안주할 수 없다는 준엄한 시대정신에 순응하여야 한다. 지휘관 사법을 고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아 군의 바람직한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며,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는 독소임을 깨달아야 할 때가 왔다. 군 사법제도를 개혁하였거나 개혁하고자 하는 나라들이 군 사법제도의 설계에서 관심을 갖는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군 사법제도를 사법부의 한 부분으로 통합함으로써 최고법원을 정점으로 한 ‘사법체계의 통일성 확보’라는 헌법적 요청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 사법 개혁을 통해 군인의 인권보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6) 양자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거나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군사 영역에서의 입헌주의 관철’이 되며 군 사법제도의 개혁은 이러한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관할관 제도와 심판관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며 나아가 군사법원의 폐지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최강욱이 2007. 11. 한국형사정책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홍익대법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홍익법학』제9권 제3호 (2008. 10.)에 게재한 논문인 “지휘관 사법의 폐해와 그 폐지론 ; 관할관, 심판관 제도를 중심으로”에서 일부 내용을 요약·수정하였음.
참고문헌
김석철, 『군사법경찰관과 군검찰관의 직무상 지휘체계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송영길, 『군사법원 제도개선 방안』, 2000년 송영길 의원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2000
이계수, 『군사안보법 연구』,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7
김경환, "현행 군사법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개선방안", 참여연대 토론회 토론문, 2002
(1) 화장실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훈련병들에게 손으로 인분을 찍어 입 속에 넣게 하였다는 사건, 2005. 1.10. 발생.
(2) 장군이 멸치상자를 잘못 보관했다는 등의 이유로 2004. 9.부터 공관 당번병인 김아무개 상병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등 폭행하고 2005. 4. (김 상병에게) 근신 10일의 징계를 내린 뒤 취사병으로 보직을 변경한 것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건,
(3) 관할관 및 심판관과 관련한 군사법원법의 규정을 보면, 군사법원의 행정사무는 법관이 아닌 관할관(管轄官)이 관장하며(제8조), 관할관은 국방부장관 또는 군사법원이 설치되는 부대와 지역의 사령관, 장 또는 책임지휘관이 된다(제7조). 군판사는 각 군 참모총장 또는 국방부장관이 임명한다(제23조). 군사법원은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재판관은 관할관이 지정하며(제25조),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한다(제22조). 심판관은 장교 중에서 관할관 또는 군 참모총장이 임명한다(제24조). 보통군사법원은 군판사 2명과 심판관 1명이 재판관이 되고, 약식절차에서는 군판사 1명이 재판관이 된다(제26조). 고등군사법원은 군판사 3명이 재판관이 되는데, 관할관이 지정한 사건의 경우에는 심판관 2명이 추가된다(제27조). 군사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관할관이 확인조치를 하여야 한다. 관할관은 무죄, 면소(免訴), 공소기각(公訴棄却), 형의 면제, 형의 선고유예 또는 형의 집행유예의 판결을 제외한 판결을 확인하여야 하며, 「형법」 제51조 각 호의 사항을 참작하여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제379조).
(4) 이계수, 『군사안보법 연구』,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7, 249면.
(5) 이계수, 앞의 책, 256~258면.
(6) 이계수, 앞의 책, 25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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