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영 내에서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병영문화 혁신' 구호가 뜨겁다. 박근혜 대통령은 병영 내 적폐 해소를 주문했고, 국방부는 민관군 합동 병영문화혁신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국방부의 '셀프 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군인권법 제정 및 국방 감독관제 도입과 같은 개혁 조치를 둘러싸고 군 당국의 부정적인 기류도 감지된다. 그러자 병영문화혁신 위원회의 일부 민간 위원은 '우리가 들러리 서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당면 과제인 병영 혁신 문제를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일제 시대부터 한국전쟁과 한미동맹, 그리고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누적되어온 총체적인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병영 혁신 역시 미봉책으로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병영 혁신은 국방개혁이라는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암세포가 몸 전체에 퍼지고 있어 군대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지경까지 왔는데, 상처 난 곳에 연고 바르는 수준으로는 결코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다.
대한민국 군대는 북한이라는 구실과 미국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한사코 개혁을 거부해왔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본격적인 국방개혁이 시도되곤 했지만, 군 수뇌부의 저항으로 흐지부지되곤 했다. 또한 정권이 바뀌면 없었던 일이 되거나 차기 정권으로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러다 보니, 세계 10위권으로의 국력 신장, 민주화와 인권 중시, 남북화해협력 시대로의 진입, 현대전으로의 전환, 인구학적인 변동 등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지고 말았다.
한국 군대의 문제점은 수없이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네 가지 핵심적인 특징만 언급해보자. 한국 군대에는 없는 네 가지, 즉 주권,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합리성이 바로 그것들이다.
첫째, 주권이 결여된 군대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 사령관에게 넘긴 작전통제권은 64년이 지나도록 아직 미국 품에 안겨 있다. 과거에는 힘이 약했다고 치더라도 오늘날에는 세계 10권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못 주겠다는 게 아니라 빨리 가져가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내 정치적인 목적으로 2012년 4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전시작전권 환수를 2015년 12월로 연기했다. 뒤이어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또다시 연기하려고 한다. 반대급부로 문제투성이 F-35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면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이야말로 가장 비정상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이다.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을 타국에 넘긴 상태로 60년 넘게 존재해온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근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지만, 두뇌는 미발육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국방부와 군 수뇌부가 전작권 환수에 가장 부정적이다. 전작권 환수는 육해공군 균형발전과 통합성 강화 등 국방개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게 자신들, 특히 육사 출신의 육군 장교들의 기득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민주주의가 없는 군대이다. 그래서 '국가 안의 작은 국가'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것도 네 가지 차원에서 거론할 수 있다. 먼저 민주주의의 핵심인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대 민주국가의 핵심적인 작동 원리인 개방성이 실종되고 폐쇄성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나, 국방부 장관을 군 출신, 특히 육사 출신이 독식하고 있는 현실이 대표적이다.
또한 한국 군대는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요체인 법치주의의 예외적 존재이다. 부대장이 사실상 전권을 행세하는 현재의 군 사법체계로는 군내 내 법치주의 확립은 요원하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2007년에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만든 군 사법체계 개선안을 국방부가 찬성했던 것도 이러한 문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국방부도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군의 특수성과 안보 환경을 내세워 군 사법제도 개혁에 여전히 미온적이다.
대표성이 결여된 것도 큰 문제이다. '유전면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책 결정에 가까이 있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은 국방의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이나 아들을 보내야 하는 가정은 병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결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불일치는 민주주의 핵심인 대표성의 위기로 연결된다.
끝으로 정치의 이중성이다. 군인이라는 특수 신분을 내세워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는 원천적으로 제약당하고 있다. 반면 국방부와 군 수뇌부 자체는 정치적이다. 직할 사이버 사령부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 종북척결을 이유로 실시되고 있는 사병에 대한 '정치적' 정신 교육, 그리고 학생과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병영 체험 및 안보 교육 등에 여기에 해당된다.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는 제약당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군 수뇌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삐뚤어진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인권이 없는 군대이다. 군대의 특수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군인 역시 기본적으로 시민이다. 군대의 특수성도 인권의 보편성을 전제로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지, 인권의 보편성을 아예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인, 특히 일반 사병은 국방의 도구나 자원으로 간주된다. 인간이 국방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간주되는 환경에서 병사의 생명과 인권의 가치는 설 곳이 없어진다.
한국 군대 인권의 부재는 병영 '밖'에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길 원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인 양심의 자유가 불허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엔 등 국제기구는 한국의 인권 탄압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 문제를 매년 제기하고 있다.
넷째, 합리성이 없는 군대이다. 한국 군대는 자발적 복종이 아니라 강제적 복종을 추구한다. 이건 '까라면 까라'는 식의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과 징병제라는 제도가 결합되면서 착종되었다. 합리성과 소통이 거세된 상명하복이 강압에 의한 외적인 충성은 가능케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내적인 불만을 잉태시키게 된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도 잃기 쉽다.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는데 타인, 특히 후임병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건 더더욱 어려워진다. 한국 군대에 말로 '부도덕한 병영에서 도덕적인 개인'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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