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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세월호 눈물'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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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세월호 눈물'을 멈출 수 없다

[세월호 릴레이 기고] 세월호 참사, 2014년의 '5.18'이 될 것인가

#1

처음엔 '교통사고'였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제주를 향하던 세월호가 맹골수도에서 뒤집어지던 순간, 그건 바다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였다.

하지만 '전원구조'라던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했던 일이 얼토당토 않은 '오보'임이 밝혀지고, "역대 최대"의 구조 작업이 '구조 쇼'로 서서히 드러나면서 급기야 '구조자 0명'으로 끝난 순간, 세월호 참사는 더 이상 '교통사고'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라고 우기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의도는 명확하다. '사고'가 '참사', 더 나아가 '몰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밝혀지지 않은 일들'을 숨겨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네 달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그들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3일 광주지법에서 세월호 재판에서 "선내 진입이 불가능했다"고 우기던 김경일 해경 123정장은 "상황실에서 (세월호) 선체에 진입하라고 했는데 왜 (해양경찰관들에게) 진입 지시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당황해서 깜빡 잊었다"고 답했다. 해경이 선내 진입 지시 자체를 하지 않았고, 따라서 진입 자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2

같은 날 청와대 앞, 세월호 참사 유가족 2명이 경찰과 대치과정에서 실신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뒤,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이동하던 유가족들을 경찰이 막아섰다. 경찰은 해산 명령을 내린 뒤 진압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고(故) 최성호 군의 아버지 최경덕 씨는 경찰에게 사지가 들린 채 끌려 나오다 실신했다. 고(故) 박예지 양의 어머니 엄지영 씨는 경찰이 자신을 끌어내려 하자 가방 끈으로 목을 감고 항의했으나, 경찰이 이를 무시하고 목이 졸린 상태 그대로 끌고 가 실신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다른 유가족은 "목에 졸린 상처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시각 광화문에선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31일째 단식 중이었다.

'이러다 죽는다'는 많은 이들의 걱정에 김영오 씨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고 한다. "죽으면 유민이 곁으로 가는 건데...." 이날 청와대 앞에서 경찰들에게 '모욕'을 당한 유가족들도 목놓아 외쳤다고 한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건 특별법이 아니라 자식들"이라고.

▲13일 오전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주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연 세월호 유가족이 경찰과 대치 과정에서 실신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3

8월 13일. 이날은 당초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기로 했던 날이다. 하지만 무산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여야 원내대표간 합의를 깬 새정치민주연합을 탓하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게 주겠다"던 약속을 뒤집은 여당 대표를 물고 늘어졌다. 야당은 전날 "지금 정치가 누구를 위해 있냐"고 말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모든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고 이 문제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박근혜 대통령의 무책임한 태도 역시 비난했다. 우리 국민들이 익히 보아왔던 여야 간 '책임 떠넘기기'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덜컥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협상을 통해 특검 추천권도,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과 기소권도 모두 포기한 특별법을 합의해줬다. 현 원내상황을 고려해보면 박 원내대표의 결정을 아주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7.30 재보선에서 야당은 처참하게 졌고, 여당의 원내 과반 상황이 깨지기는커녕 도리어 의석 하나가 더해졌다. 그렇다고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똘똘 뭉쳐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지원해준 것도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9일 밤 새정치연합 당사에 항의 방문 갔을 때, '불 꺼진 당사'의 풍경이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새정치연합의 무관심을.

유가족들이 단식까지 연장하면서 새정치연합을 압박한 결과 다행히 "야합"에 기반한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상황은 더 악화됐다. 여당은 13일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처리되지 못한 모든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면서 19일로 끝나는 임시국회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세월호 청문회 일정도 사실상 '올 스톱'이다.

지난 10일 유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찾은 박영선 원내대표의 한 마디가 정치권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는 듯 하다. 박 원내대표는 특검 추천권과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을 거듭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모든 걸 다 얻으려고 하냐"고 말했다고 한다. 유가족들이 얻으려는 건 단 '하나'다.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유가족들은 '자기 목숨'을 내놓고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4

유민 아빠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서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전달하기 전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14일 교황이 한국 땅을 밟는다. 교황 즉위 이래로 '낮은 곳에 임하소서'라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보여준 분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세월호 유가족 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쌍용차 해고자, 용산참사 피해자 등을 만날 예정이다. 천주교 주교회의에선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시복식을 이유로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쫓아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눈물 흘리는 자를 내쫓을 수 없다"는 것. 서울시도 이 같은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다행스런 일이다.

교황 방한을 계기로 세월호 참사는 또 한번의 '정치적 계기'를 맞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교황은 귀한 '손님'일 뿐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해 이 땅의 '눈물 흘리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줄 수는 있지만, 눈물 자체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멈추게 하고, 저들을 다시 살게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

#5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1980년 있었던 5.18 광주항쟁이 떠올랐다. 물론 군부가 민간인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학살한 광주항쟁과 세월호 참사를 병렬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 특정 지역에 희생자가 집중됐다는 점, 살아남은 자들이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 등은 유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사실상 '진상규명' 투쟁의 주체가 어이없게도 유가족들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진상규명' 자체는 권력층이 기를 쓰고 막고 있다. 이를 통해 '진상규명'이 저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걸 유추하게 된다. '진상규명' 자체가 '정치적 이해'와 매우 밀접한 일이라는 사실은 특정 정치집단이 피해자들을 역으로 정치적으로 낙인찍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은 "유가족들 사이에 반체제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국회 정문 앞, 13일 청와대 앞에서 유가족들을 막아서는 경찰들의 태도는 그저 '시위대 진압'일 뿐이었다. 호남을 배제시키는 '지역주의'를 통해 현 기득권 세력은 얼마나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어왔던가. 여전히 극우 사이트인 '일베'에선 호남 사람들은 '홍어', '절라디언'이라는 '비하적인 용어'를 통한 정치적 낙인 찍기가 진행 중이다.

'구조자 0명'이라는 어이없는 구조 과정 이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과정은 우리 모두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수 있다. 이는 분명 34년 전 광주항쟁과 다르다. 하지만 이 사실이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더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우리 모두에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게 너무 과한 일일까. 유민 아빠의 단식을 멈추게 하고 더 이상 유가족들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일에서 이 사회 구성원들은 자유롭지 않다. 당신은 해상에서 일어난 사고가 국가가 개입(그것이 행정적 과실에 그칠 지라도)된 참사로 귀결되는 것을 봤다. 또 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극한적인 단식 투쟁까지 하면서 최소한의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이 고통스런 과정도 매일매일 지켜보고 있지 않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책임은 위임된 권력자들에게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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