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반도에는 상반되는 행동과 발언들이 정세를 혼미롭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화와 교류를 얘기하는가 하면, 그 반대로 군사훈련과 핵시험 가능성이 동시에 운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상태에서 대화와 교류로 가는 것인가, 군사적 긴장 격화와 전쟁의 길로 가는 것인가?
지난 11일 한국은 김규현 수석대표 (NSC 사무처장) 명의의 통지문을 북에 보내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 개최를 제의했다. 그 의제로는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문제를 포함, 남북 간 관심사항을 논의하기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특히 인천 아시안게임 북측 응원단 파견 등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전기가 될지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북측 응원단 파견에 대해 먼저 대화를 제의하지 않을 방침을 거듭 밝힌 상황에서 고위급 접촉이 아시안게임 참가 문제를 해결할 창구가 될 가능성도 관심을 끌고 있다.
북은 아시안게임 참가 절차를 차근차근 밟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북의 '조선올림픽위원회' 관계자가 인천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대회 및 종목별 조추첨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 북측 관계자들은 19일에 입국하여 20일 송도 컨벤시아와 경인교대 인천캠퍼스에서 열리는 '2014인천아시안게임' 기념 국제학술회의와 21일 종목별 조 추첨 행사, 22일 종목별 경기장 시찰 등에 참가할 예정이다. 통일부 당국자도 "국제경기대회이므로 이들의 방문을 승인할 예정이다. 조직위에 최대 협조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관련, 남측 가톨릭계가 북측 가톨릭 신자들을 초청한 데 대해, 북측이 7월 말경 최종 거부한 것도 아시안게임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북측의 거부가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연합군사연습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남측 가톨릭계 관계자에 따르면, 북측은 지난달 인천 아시안게임 관련 남북 실무접촉이 한 차례 결렬된 이후, 참가 논의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종교계 인사를 먼저 파견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 초청거부는 역설적으로 북이 아시안게임 참가를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이는 김정은 제1비서의 발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김정은 비서는 최근 북 여자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을 보며 "앞으로 진행될 국제경기에서 주체 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남김없이 떨치리라"는 기대를 표명했다고 조선중앙TV에서 보도,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힌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정은 비서는 지난 7월 17일 아시안게임 남북 실무접촉이 결렬된 직후에도 북 국가대표팀 남자축구경기를 관람하며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는것은 북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고 불신을 해소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라며 아시안게임 참가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와는 반대로 한국과 북은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오는 18일부터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시작한다. 올해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진행된 한미 키 리졸브 연습에서는 '맞춤형 억제전략' 개념을 소개하는데 그쳤다면 이번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에서는 '맞춤형 억제전략'을 공식 적용한다. 북이 감행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공격행위를 각 형태와 수준마다 압도적으로 보복한다는 전략을 실전에 이행할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전의 억제전략보다 분쟁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최종단계에서 압도적인 핵공격을 상정하므로 저강도 국지분쟁을 순식간에 핵전쟁으로 비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북은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군사적 대응능력을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명서와 논평 등에서 '맞대응'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7월 28일 자 논평에서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에 대응하여 "자위적 핵억제력을 계속 억척으로 다져나갈 것이며 대응행동도 연례화, 정례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 31일에는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에서 을지프리덤가디언을 "사실상 ... 핵전쟁선전포고"라고 규정하고 "북남관계가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 처하고 정세가 최극단에로 치달아올라 모든것이 끝장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조선반도에서 철과 철, 불과 불이 맞부딪치게 되면 ... 아직 포탄한발 떨어진적이 없다는 미국본토도 무사할수 없게 될 것"이라며 미국에도 경고를 보냈다.
이어서 8월 1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리동일 차석대사가 "한반도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계속되면 북한도 자위적인 차원에서 맞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대응에는 미사일 발사와 핵시험 등 모든 방안이 다 포함될 것이라면서, 핵시험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7일에는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난하며 "그 대응에는 미사일 발사와 핵시험 등 모든 방안이 다 포함될 것"이라고 핵실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북측 대표단으로 참가한 최명남 북한 외무성 부국장은 8월 10일 약식 기자회견에서 "핵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 계속 박차를 가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어떤 행동도 다할 권리가 있고 이를 행사할 것"이라고 주장, 4차 핵실험 가능성을 또 언급했다.
이러한 상반되는 발언과 행동은 8월을 고비로 해서 어느 쪽으로든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을지프리덤가디언을 강행하고 북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로 강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의 추가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력히 대응키로 한 한미일 3국도 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한반도는 끝을 알 수 없는 긴장악화의 싸이클에 급격하게 빠져들 것이다. 반면에 을지프리덤가디언이 강행되는 데도 불구하고 북의 대응이 제한적인 것으로 끝난다면 아시안게임에 북이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완화되는 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북이 지난 20여 년간 '말에는 말, 행동이라는 행동'이라는 수세적 대응을 했다면, 김정은 체제에서는 두 가지 특성이 추가되고 있다. 첫째 북의 대응이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말과 행동을 동시에 취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미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남북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이 지금까지 을지프리덤가디언에 대해 공언한 것에 비춰보아 강한 대응을 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아시안게임에 대한 강한 의지에 비춰볼 때 을지프리덤가디언에도 불구하고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아시안게임에 대한 의지는 김정은 제1비서의 목소리로 표시가 되고 있는 반면, 을지프리덤가디언에 대한 강력한 반발은 그보다 낮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국면의 전개는 두 가지 변수에 의해 상당 부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실시는 상수라고 전제할 때, 북이 이 군사훈련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변수일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을지프리덤가디언이 상수라면, 북이 강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도 거의 상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북의 대응에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일 것이다. 북의 군사적 대응이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대응이라는 '현실주의적'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라고 이해할 경우, 아시안게임에 북이 참가하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북의 대응을 문제 삼아 추가적 제재조치나 압박을 취하는 경우 한반도는 앞을 알 수 없는 위기국면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한국이 제안한 고위급 접촉은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8.15 경축사에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한다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보다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이나 그 이후에 보여줄 구체적인 '행동'일 것이다.
'전략적 인내'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나와 있다. 미국 내에서도 일부 국회의원들과 비확산전문가들 사이에 새로운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간선거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 남은 임기 2년 동안 역사적 유산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이번 고비를 어떤 방식으로 넘기느냐가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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