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64%인 410만 명에게 기초연금이 지급되었다. 대상자 410만 명 가운데 20만 원 전액을 받은 노인은 57%, 각각 16만 원씩 32만 원을 받은 부부 노인은 36%였다. 나머지 7%의 노인들은 20만 원 미만의 '삭감된 금액'을 수령했다. 여기서 세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36%나 되는 노인들은 기초연금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둘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은 기초연금으로 받은 20만 원을 기초생활보장 생계 급여에서 삭감당하므로 사실은 정부가 '주었다가 빼앗은' 격이다. 셋째, 기초연금의 지급액이 국민연금의 가입 기간과 연계되어 삭감되고 있다.
기초연금은 복지국가를 열망하는 국민의 전리품
일찍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10년 '보편적 복지' 담론의 공론화 이후 구체적인 정책 패키지의 하나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정책을 제안하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10+2 복지국가 총선 공약'을 정치권에 제안하는 세미나를 국회에서 개최했다. 이때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노령연금 18만 원을 매달 지급하겠다"는 '2배 인상 공약'을 최초로 제안했다. 이 공약 제안은 빈곤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어 급속하게 확산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도 이를 공통 공약으로 수용했다.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70%의 노인들에게 지급하던 기초노령연금을 80%의 노인들로 확대하고, 금액도 2배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한걸음 더 나아가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일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정부·여당을 둘러싸고 공약 철회에서부터 대상 축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란이 일었다. 결국 "70%의 노인들에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하여 차감하는 방식으로 최대 월 20만 원 지급"이라는 현재의 방안으로 정리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기초연금 정치 과정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노년유니온,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등의 시민사회단체들과 노동계와 함께 종묘 공원에서 '노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했고, 국회와 복지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복지국가 촛불문화제 및 여야 국회의원들과의 간담회와 세미나도 열었다.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관련 내용을 기고했다. 공약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투입된 노력보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시민사회의 이런 투쟁을 통해 불완전하게나마 현행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이 달성된 것인바, 이는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우리 국민의 열망과 승리의 전리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기초연금 2배' 공약이 없었으면 2012년 당시 4조 원이던 예산이 연간 6.12조 원(2015년), 7.14조 원(2016년), 8.38조 원(2017년) 등으로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자연 증가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10.33조 원(2015년), 10.95조 원(2016년), 11.54조 원(2017년)으로 관련 예산이 매년 4조 원 이상 증가한 것은 복지국가 운동의 성과다. 이 공약이 없었다면 지난 총선과 대선도 토목과 건설을 중심으로 흘러갔을 개연성이 크고, 4대강 개발 같은 토건 사업들에 예산이 끌려 들어갔을 것이다. 국가 예산의 배분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 임기 동안 최소한 약 14조 원의 예산이 소비가 필요한 노인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는 재래시장을 살리고 골목상권을 활성화하여 내수경제를 진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폐지 줍던 노인, 손수레 17대 분량 덜 주워도 되는 돈
<조선일보>(7월 12일, '서글픈 무단횡단')는 폐지 줍는 노인의 수를 무려 175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 추계는 전국에서 사업 중인 7만여 개의 고물상 한 곳당 평균 25명의 노인이 폐지를 줍는다는 가정에서 계산된 것이다. 2012년 1kg에 350원 하던 폐지 가격은 지난해에는 120원, 올해는 8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폐지 줍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공급과잉이 되어 이제는 1kg에 60∼70원 선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노인에게 그동안 지급되었던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전환되면서 9만7000원에서 최대 10만3000원이 더 주어지게 된 것으로 당사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이 돈은 중상류층 국민들에게는 별것이 아닐지 몰라도, 폐지를 주워 팔아 생활하는 노인들에게는 한 달에 무려 1.7톤의 폐지를 덜 주워도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할아버지가 교통사고의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단횡단을 해가며 힘겹게 끌고 가는 폐지의 무게가 손수레에 가득 실려도 100kg을 넘기 어렵다. 등 굽은 할머니가 자기 몸만큼의 크기로 쌓아서 카트에 실을 수 있는 무게도 50kg을 넘지 않는다. 종일 모아도 5000원 벌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지급되는 기초연금으로 인해, 이분들이 적어도 17대의 손수레나 34대의 카트 분에 해당하는 무거운 폐지를 모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 보면? 이분들에게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노인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이하 소득자들의 비율) 1위로 전체 노인의 48.5가 상대빈곤 상태(2012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스스로 소득이 없이 자녀가 주는 용돈이나 생활비로 살아가는 비율이 75%에 달한다. 그런 상황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최초로 '기초연금 2배 인상' 공약을 제안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기초연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자살률과 심각한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정책 수단이다. 2) 기초연금은 현대판 고려장을 예방하고, 우리 사회를 인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3)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데 기여한다. 4) 기초연금은 내수 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5) 기초연금은 자녀들의 부모님 용돈과 생활비 지원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다. |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약 1350조 원에 이르는 국내총생산(GDP) 중에서 연간 10조 원 정도를 어르신들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투입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혹자는 20만 원이라는 적은 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진다. 국민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최저생계비 기준을 보면 1인 가구는 60만 원이고, 2인 가구는 102만 7000원인데, 기초연금 20만 원은 어르신들의 기본적인 생활 보장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20만 원은 자녀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기도 하다.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들, 다시 시작이다
한 번의 승리 경험은 백번의 실패 경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우리 국민은 최근 수년 동안 선거공약을 통해, 정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경험을 조금씩 누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 효과가 선거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복지를 낭비로 보던 여당이 이제는 '누가 복지를 더 잘하는지' 야당과 경쟁하게 되었다. 항상 여당만 찍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여야를 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 기초연금 2배 수령은 선거를 통해 어떻게 내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경험하는 '복지국가 정치'의 학습장이었음이 분명하다.
누가 어떤 복지국가 정책을 내세우는가, 장차 이것이 총선과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기초연금을 어떻게 내실 있게 확대할 것인지, 이런 경쟁이 벌어지면서 과거에 선거의 판세를 좌우하던 개발 및 건설 공약은 자리를 점차 잃을 것이다. 또한, '기초연금 2배' 인상은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에 이어 대다수 국민에게 '보편적 복지' 제도를 다시 한 번 체험하게 한다는 데 중대한 의미가 있다. 바로 이런 보편주의 정책들이 쌓여가면서 부지불식간에 대한민국이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현재 시행되는 기초연금은 문제가 많다. 실제로 지급 대상이 대선 공약과 비교해 30% 이상이나 줄었고,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면서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오래 낼수록 불이익을 겪게 되어 젊은 층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 때문이다. 이는 '1인 1국민연금' 원칙에도 배치된다. 이는 기초연금의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 논란이 벌어진 이후 국민연금의 임의 가입자가 급감한 데서도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관련 기사 : "누더기 된 기초연금, 얼마나 더 망가뜨릴 건가")
또, 기초연금의 지급액 기준을 소득의 증가가 아닌 물가의 상승률과 연동하면서 장차 현재의 40대와 50대는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기초연금 수령액이 많이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이는 애초의 대선 공약과 한참 멀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기초연금이라는 이름으로 상당수의 어르신에게 매달 20만 원이 지급된 것은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국민의 승리'다. 정부·여당의 고집스러운 강공책과 선거를 앞둔 야당의 정치적 야합으로 제정된 현행 기초연금법은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금방 드러낼 것인 만큼, 다음의 선거 및 정치 과정에서 이를 충분히 공론화하고, 법률 개정에 나서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자인 노인 39만 명은 기초연금이 지급은 되지만, 이를 새로운 수입으로 간주해서 기존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액에서 해당 금액만큼을 삭감하여 지급하므로 실질적으로는 기초연금의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것도 앞으로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대상 인구의 규모가 줄었고, 내용도 일부 누더기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복지국가 운동'의 전리품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20만 원으로 시작하지만, 기초연금을 통해 이제 대한민국에서 보편적 소득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이를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수용하게 된 것은 의미가 큰 일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므로 곧 걸음마를 시작하다가, 마침내 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이번에 기초연금법의 입법과 정치 사회적 논의의 과정에서 어느 정당과 어떤 정치인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현재 적대적 공생을 즐기는 거대 양당의 낡은 질서로는 분출하는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이 바라는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신념과 철학으로 무장한 '복지국가 정당'의 필요성이 뚜렷해졌고, 복지국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정치인에 대한 욕구도 더욱 분명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오늘은 '기초연금 2배 인상'의 실현을 통해 시대정신인 '역동적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우리 국민의 승리를 충분히 축하하고 만끽하자. 동시에 아쉬움과 한계도 분명하게 인정하고 성찰하자. 그리고 이번에 우리 사회가 내디딘 의미 있는 발걸음, 우리가 이룬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살려서 다음에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여는 더 큰 발걸음을 내딛는 위대한 승리의 투쟁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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