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결과가 나왔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9곳에서 승리했다.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과 함께, 야당에 대한 정치적 불신도 함께 표출된 선거 결과였다. 새누리당의 후보가 기존의 지역 기반인 경북, 경남, 대구, 부산뿐만 아니라, 경기와 인천에서도 승리한 데서 볼 때, 이번 선거에서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과 야당에 대한 불인정
수십 년 동안 여당의 텃밭이라고 여겨지던 대구에서 새정치연합 소속의 김부겸 후보가 40.3%, 부산에서 무소속 오거돈 후보가 49.3%(서병수 후보의 50.7%와 1.4%포인트 차)를 획득한 것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대한 정치적 불신의 표현이다. 정당 득표에서 야당 지지율이 47.94%로 여당 지지율 45.65%를 앞서 약 53.7만 표의 차이를 만든 것도 정부·여당의 무능과 불통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새정치연합이 전남, 전북, 광주 등 기존의 전통적 지지 지역뿐만 아니라, 기존의 충남과 충북에 더해 대전과 세종에서 추가로 당선된 것은 수치상으로 보면 승리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나 안대희 총리 지명자 낙마 등 연이은 사건에도 불구하고, 기존 인천을 내주고 경기도를 탈환하지 못한 것은 국민들이 새정치연합도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감 선거에서 드러나 진보진영의 정치적 약진 가능성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후보들이 압승했다. 17개 광역 지역구 중 진보 후보가 13개소, 중도 후보 2개소, 보수 후보가 2개소에서 당선됐다. 진보 진영 약진의 원인은 ① 초기부터 추진된 후보 단일화(실제로 30%대 득표율로 당선된 곳이 다수임), ②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영향(학생들의 희생이 교육적 사안이자 교육감의 책임으로 인식되어 여권에 대한 심판 작동), ③ 기성 정당 정치가 아닌 형태의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져 뚜렷하게 구분되는 교육 정책 구도 때문으로 평가된다.
물론 서울의 조희연 당선자는 경우가 조금 다른 측면도 있었다. 고승덕 후보와 딸의 공개편지 파문으로 보수표가 분산된 효과를 봤다. 그러나 다른 지역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은 지역주의를 반영하는 기성정당 구도가 아니라, 가치와 정책 노선의 차이를 반영하는 '진보-보수' 구도의 수혜자들이다. 우리가 앞으로 이런 식의 '진보-보수'라는 가치와 정책의 차별적 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진보 진영이 정치적으로 약진할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몰락과 안철수 의원의 추락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은 광역은 물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모두 패배했다. 6명의 후보를 낸 녹색당도 한 석도 획득하지 못했다. 이는 현실 정치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진보정당의 한계를 보여준 결과다. 이러한 추세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2016년 국회의원 선거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기존의 안희정 충남지사 외에도 권선택(참여정부 인사 비서관 출신) 대전시장과 이춘희(참여정부 신행정수도기획본부장 역임) 세종시장 등 3명의 친노 성향 광역 지자체장이 탄생하였다. 기초 지자체장도 16명에서 22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는 친노 세력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기초 체력을 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 성공으로 정치적 입지가 높아짐에 따라, 이후 새정치연합에서는 그를 매개로 이합집산과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당의 주도권 장악을 노리는 계파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윤장현 후보의 광주시장 당선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 과정, 기초 지자체 무공천 철회 과정 등을 거치며 대권 후보로서의 지지를 크게 상실했다. 안철수 의원 스스로 지난 수년 동안 기성정당을 '낡은 정치'로 비판했고, 이에 대항하는 제3의 정치세력을 자칭하며 '새 정치'라고 했으나, 결국 낡은 민주당에 녹아들어 감으로써 '새 정치'의 기치를 버렸다. 국민은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원에도 안철수 의원은 더는 그 대변자가 아니다. 따라서 장차 그가 정치적 지지를 회복하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정책 실종의 지방선거
2010년 지방선거가 보편적 무상급식 논란을 계기로 생활 정책에 대한 관심 증대와 복지국가 담론의 공론화에 기여하였다면, 2014년 지방선거는 세월호 침몰 참사와 함께 새정치연합의 무능으로 정책 대결 구도가 실종되면서 여야 정치권 모두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무상급식의 이슈화로 토목·건설에 투입될 뻔했던 연간 2.5조 원의 예산이 학부모들의 고정 지출을 줄이는 데 사용됐다. 이후 복지국가 담론과 정책이 이슈화됐고, 이는 다시 무상보육 등 복지 확대로 이어져 가계 지출의 상당 부분을 절감해주었다.
이번에 새정치연합은 성북구, 노원구, 금천구 등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이룩한 민주당 소속 지방정부의 보편적 복지 정책 성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거나 중앙정치의 이슈로 만들지 못함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활용하지 못했다. 새정치연합은 보편적 복지 정책이 주는 정치적 효과를 학습했지만, 국정원 선거 개입 규탄과 특검에서부터 안철수 의원과의 합당으로 이어지는 공학적 이합집산에만 매몰됨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등에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야당이 무능해 여당을 심판해도 대안이 없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복지국가 정치의 전망
2010년부터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 점화되자, 2012년에 여야 대선 후보 모두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정책 대결의 구도가 외형적으로나마 형성됐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성 없는 선거용 구호에 불과했다. 여야 후보들이 화려하게 내세운 복지국가 정책들에는 증세 등의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없었다. 이는 '작은 정부'의 관성에서 탈피하지 못했거나, 증세에 대해 정치적으로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선 이후 1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복지국가 건설과 관련한 성과는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대선 당시의 복지국가 공약을 대부분 축소하거나 폐기하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복지국가 공약의 실천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이슈에 스스로 매몰되는 자충수를 둠으로써 정책적 무능과 무기력을 드러냈다. 이들 두 정당은 극단적 대결구조를 항상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전략, 즉 '적대적 공생 전략'으로 정치적 이익만 챙기고 있다. 기존의 양대 정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복지국가 건설 전망은 더는 이들의 것이 아니라는 세간의 질타가 무게를 더해가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몰락 수준의 성과만을 보여준 진보정당들이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새 정치'의 기치를 낡은 정치에 헌납한 안철수 대표와 '우클릭'을 거듭함으로써 국민적 기대를 배신한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복지국가를 건설할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이들에게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시민사회는 평가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정부·여당의 기초연금 법률안을 군사작전 하듯이 통과시켜준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정치 행태는 시민사회로부터 '새누리당의 2중대'라는 조롱을 당하기에 충분했다. 이로써, 안철수 대표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함으로써' 노후 소득 보장을 망쳐버리는 '낡은 정치'를 스스로 행하고 말았다.
그래서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의 대업을 이룰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제법 들려온다. 이미 전문가들과 시민사회 운동가들은 "복지국가 건설의 대의에 부합하는 대한민국의 정당정치 질서는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새로운 정치 세력, 즉 복지국가 정치세력이 등장할 분위기가 이미 조성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혁명적 수준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지지가 있다면,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재편은 기대를 넘어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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