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섭 대표의 당 쇄신안이 나온 30일 오후,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의총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11개 안건에 대한 당론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지도부도, 의원들도, 그리고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관심사는 모두 다른 곳에 있었다.
이미 4.25 재보선 참패 이후 한나라당 안팎에서 관측되고 있는 바와 같이,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과연 결별할 것인지, 그리고 강재섭 대표의 거취 문제가 이 결별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것인지를 지켜보려는 생각들이었다.
강 대표는 대표직을 유지한 채 '대선주자가 아닌 당 중심의 체제 강화, 윤리기능의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양대 진영은 쇄신안을 두고도 입장이 갈리는 등 사태는 '봉합'이 아니라 '확전' 쪽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전 시장 진영은 오픈프라이머리 반영 등 캠프의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다. "쇄신안을 보고 거취를 판단하겠다"던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날 의총과 본회의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캠프 소속 의원들도 거듭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도 '쇄신안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정두언 의원은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쇄신안'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거취 문제는 오늘 발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다"고 전해 사퇴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한 초선의원은 "지금 당장은 침묵하고 있지만 이재오 최고위원이 강재섭 대표의 쇄신안을 뒤집어엎을 정도의 새로운 안을 제기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 측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전 시장을 지원하고 있는 진수희 의원은 "쇄신안은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서 "우리 캠프의 요구가 들어갔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 과연 저 정도의 대책을 국민들이 인정해 줄 것인가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강재섭 대표는 '지금 사퇴하면 전당대회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논리를 폈지만 책임은 책임이고, 정상적으로 지도부를 선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재보선 후 분열 가능성 높아져"
상황이 이지경이다 보니 당 내에선 "이러다가 정말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임태희 의원은 이날 의총 직후 <프레시안>과 만나 "강재섭 대표의 쇄신안은 지금 당 내의 분란을 정리하기에 미흡하다"면서 "강 대표는 지금 체제대로만 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의 갈등을 처리하지 못하면 결국 '백약이 무효'라는 주장이다. 임 의원은 "그 동안 양 진영의 공방을 보면 같은 당에 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라면서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대단히 심각하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임 의원은 특히 "당을 분열시킨 당사자는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당장 누군가 당을 뛰쳐나가는 일이야 있겠느냐"면서도 "재보선 전과 후를 비교해 볼 때 이명박-박근혜 양 진영의 분열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강재섭 대표의 거취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경선 룰 등 박근혜, 이명박 진영의 민감한 쟁점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이 한나라당의 분열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일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이 재보선 이후 하강곡선을 그리는 상황도 무시 못 할 변수다. 상대적으로 지지기반 충성도가 높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격차가 좁아질수록 경선 룰을 유리하게 완성하려는 이 전 시장의 견제가 분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전 계속되면 '결단'"…등 돌리는 뉴라이트
그런가 하면 임 의원은 "한나라당의 구태에 실망한 뉴라이트 등 당의 외곽세력이 한나라당에 반발하면서 보수신당을 창당하는 등 외부적 정계개편의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박근혜 갈등의 확산과 궤를 같이해 뉴라이트 전국연합, 자유주의연대 등 정치권 외곽의 한나라당 지지세력들도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게 사실이다.
자유주의연대의 신지호 대표는 이날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이 국민적 염원을 저버린 '그들만의 전쟁'을 계속하고, 국민적 경고를 무시하고 확전하는 모습을 반복한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할 것"이라면서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신 대표는 "양 진영을 보면 이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서 하는 건지 회의적"이라면서 "두 주자가 제대로 갈 수 없다는 게 확인된다면 (뉴라이트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도 전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현재의 한나라당으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한나라당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체질개선을 하지 않는다면 정권 교체를 위해 독자적인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범여권의 상황변화 등 외부적 요인도 두 사람의 분열을 촉진시키는 요소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권영세 최고위원은 이날 의총 직후 가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여권의 대선주자인 정운찬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 분당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 동안 범여권에서 나올 정 전 총장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명분이 한나라당에 있었지만, 그 명분이 사라졌다"면서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한나라당이 해체로 가는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는 논리를 폈다.
이처럼 안에서든, 밖에서든 한나라당의 '5월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속속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제어할 구심력은 당장 당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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