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줄세우기'라는 비판에도 아랑곳 없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5선 중진인 김덕룡 의원 모시기에 진력하고 있다.
김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의 공동 주최로 1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토론회에서 박 전 대표는 김 의원의 주제발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대선주자들이 통상 식전행사에서 축사만 끝내고 자리를 뜨는 모습과는 달랐다.
토론회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 정세균 의장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원희룡 의원 등이 축사를 마치고 토론회장을 떠난 뒤에도 박 대표는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서청원 전 대표의 캠프 영입 이후 박 전 대표의 김덕룡 의원에 대한 공들이기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우리 쪽과 더 가깝지 않겠나…"
박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모든 것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나는 원래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김덕룡 의원과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춰 왔다"고 친분을 강조했다.
박 전 대표 캠프의 한 측근은 "해석이야 기자들의 마음"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김덕룡 의원에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덕룡 의원은 영남은 물론 호남에도 일정한 조직력을 보유한 몇 안되는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한 사람.
캠프의 다른 측근도 "아무래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 보다는) 우리 쪽과 더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캠프 차원은 아니고 제3자를 통한 접촉은 계속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 전 시장은 사석에서 김 의원을 따로 만나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토론회에 이상득 국회부의장, 정두언 의원, 송영선 의원 등 이명박계 의원들도 눈에 띄었지만 김무성, 한선교, 유승민, 이혜훈, 정진섭, 주성영, 이해봉, 박세환, 최경환 의원 등 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280만 재외국민 참정권 주목
김 의원의 강점은 이날 토론회의 주제이기도 한 재외국민 참정권이 보장될 경우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도 있다. 오래 전부터 김 의원은 미국과 중국, 일본에 거주하는 교포사회 단체들과 친분을 쌓아 왔다.
김 의원은 이날 발제를 통해 "지난 15대 대선에서 39만 표, 16대 대선에서 59만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됐던 것을 감안하면 280만여 명에 달하는 재외국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한국 정치 지형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은 "재외국민의 참정권 실현이야말로 재외국민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국가발전에 원동력이 되는 계기"라면서 "재외국민 참정권은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20~30년 전에 도입된 제도"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그 동안 정부는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가 공론화될 때마다 '선거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국외 부재자투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며 "이는 선거 시스템이나 부족한 재정을 이유로 국민주권의 실현을 유보하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유학생, 재외공관원, 상사주재원, 파병군인 등에게만 한정해 국외부재자투표권을 인정하려는 정부의 계획을 재외 국민 전체로 확대 실시하자는 게 김 의원의 주장.
김 의원은 2007년 대선부터 재외 국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는 "OECD 국가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재외국민에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있다"며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야말로 우리가 큰 원칙을 갖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적극 동조했다.
그는 "재외동포들의 권익신장은 곧 우리 국익을 위하는 것"이라며 "참정권 부여 문제도 그런 의미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 급해 그 동안에는 소홀했지만 이제 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강국으로의 발전을 위해선 해외동포들에 대한 배려는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면서 "영주권자들을 포함한 모든 분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축사에서 "1987년에 민주화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재외국민에 참정권을 줬을 법도 한 데 잘 안됐다"면서 "'87년 체제'의 20주년이 되는 금년에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이 주어진다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이기도 한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도 발제를 통해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재외국민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투표권이 행정체제의 미비로 제약받고 있다"면서 "기술적인 문제 역시 현행 제도를 보완해 적용 가능한 대상부터 시행하고, 중장기적인 준비 하에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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