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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진도에 '천막 청와대'를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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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진도에 '천막 청와대'를 쳐라

[편집국에서] '정부'의 존재감 보이지 못한다면…

'무정부 상태'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단원고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는 애끓는 절규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이 최근 피부로 절감하고 있는 일이다. 국민들은 지금 '심리적 무정부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사고 발생 열흘째인 25일, 초기 구조된 174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곤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했다. 많은 국민이 정말 간절히 '기적'을 바라지만 차마 현실을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와중에 사고 현장에선 해경의 이해하기 힘든 처사로 민간잠수사와 학부모들이 반발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내 새끼 물고기 밥 만들 거냐"는 실종자 부모의 절규는 결코 "미개한 국민"이라 터져 나온 게 아니다. "구조 작업에 도리어 방해가 된다"며 투입을 거부했던 다이빙벨은 25일 현장에 뒤늦게 투입됐다. 사고 발생, 구조 작업, 수색 작업, 이후 시신 수습 및 인계 작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기가 막히지 않는 일이 없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야멸차게 흘러가는 시간에 한없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부여잡고 쏟아지는 뉴스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의 마음이 이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어느 틈엔가 세월호 사태에서 사라졌다.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 다음 날인 지난 17일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1분 1초가 급하다"면서 구조 작업을 독려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러더니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장은 살인과도 같은 행태"를 했다고 비난한 뒤, <시사인>의 한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가장 먼저 이번 사태에서 탈출"했다.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다. 청와대도 발 빼는 모양새다.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2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의 위기 대응 매뉴얼에 안보실이 중앙사고대책본부를 컨트롤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어, '책임 회피'라는 비난이 일었다. 또 이정현 홍보수석은 지난 21일 "한 번 도와주소. 국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라고 정부 비판적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선장 탓'과 '부처 공무원 탓'으로 현 사태를 넘어갈 수 있을까? 정치권 일각에선 '내각 총사퇴' 이야기가 나온다지만, 이 역시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이제라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직도 생사 여부를 모르는 이들이 120명이 넘는다. 시간이 더 지나면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이들마저 생길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건은 진행 중이다. 아니,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들, 친구들과 선후배를 잃어버린 단원고 학생들, 이들을 아는 모든 국민들에겐 이 사건의 '종결'은 없다.

박 대통령이 진짜 진도로 내려가는 게 필요한 때는 지금이다. '사진 찍기' 위한 요식행위로 내려가라는 게 아니다. 진도에 '천막 청와대'를 차려라. 재난의 컨트롤타워임이 분명한 국가안보실 직원들 일부를 상주시켜라. 박 대통령도 한미 정상회담처럼 정말 피치 못할 외교적 행사 때문이 아니라면 수시로 '천막 청와대'를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 구조 현장을 직접 보고, 실종자 가족들의 얘기에 한 번이라도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 대통령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당선자 신분으로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국민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정치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지도자로 칭하는 사람들은 죄인 느낌을 가지고 일한다. 내 심정도 그렇다"고 말했다.

▲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차려 입주식을 하고 있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지난 2004년 당 대표를 맡아 침몰해가던 한나라당을 살리겠다며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쳤던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의 '천막'이 그저 특정 정당을 살리고,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겠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쳤다면, 지금은 '국가'와 '국민'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쳐야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지도자가 책임을 인지하고 자기를 내던질 때 나온다. 그때서야 아랫사람들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인다. "엄벌하겠다"는 협박으론 그저 '벌 받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이게 할 뿐이다.

지금은 한가하게 세월호 사태가 대통령 지지율이나 6월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놓고 셈할 때가 아니다. 현재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심리적 무정부 상태'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향후 4년은 존립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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