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지인들과 함께 베트남에 다녀왔다. 예상했던 대로 베트남 사람들의 호치민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지극했다. 발 닿는 모든 곳에 호치민의 자취가 어려 있었다. 베트남 지폐에도 당연히 호치민의 얼굴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의 친근한 이미지와 위대한 역정은 그러한 사랑과 존경에 값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를 되돌아봤다. 우리에게는 왜 호치민 같은 인물이 없을까? 민족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여정에서 한국인의 업적이 베트남 인민에 결코 뒤지지 않을진대 왜 한국 현대사를 이끈 영웅으로 한결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은 없을까? 베트남뿐 아니라 미국, 중국, 멕시코 등등 세계 각국은 근대적 경제 주권을 상징하는 자국 화폐에 그 나라 현대사의 영웅을 등장시키는데 왜 우리나라는 얼굴도 모르는 옛날 인물의 상상도를 내세워야 할까?
그럴듯한 설명에 따르면 근현대사의 인물 가운데 모든 한국인이 흔쾌히 합의할 만한 인물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돈에 실린 인물은 조선 전기에 살았던 분들로, 근현대는커녕 당쟁이 격화된 조선 후기의 인물도 화폐의 얼굴로 내세우기 어려울 거라고 한다. 이 현상은 한국 사회가 정치 사회적으로 그만큼 분열되어 있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거인과 싸워 이긴 베트남처럼 강렬한 인상은 없을지 몰라도 한국 역시 위대한 근현대사를 가졌다. 그런 역사에서 호치민, 마오쩌둥, 워싱턴 같은 인물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곰곰이 되짚어 보면 한국사를 바꾼 대변혁들에서 우리는 정말 호치민에 필적하는 지도자를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3.1운동, 4.19혁명, 6월항쟁…이름 없는 한국인들이 만든 위대한 역사
때마침 4월이니만큼 4.19혁명을 먼저 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4.19혁명은 한국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위대한 사건이었다. 6.25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동족상잔이자 국제전이 '정전'이라는 어정쩡한 상태로 일단락된 것이 1953년 7월 27일이었다.
지금도 정부의 잘못을 건드리기만 하면 '친북'이니 '좌파'니 하는 색깔론 공세가 퍼부어지는데,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간 끔찍한 전쟁이 중단된 지 7년밖에 안 된 당시에야 오죽했겠는가? 대통령 후보로 이승만과 호각세를 이룰 정도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조봉암도 빨갱이로 몰려 죽는 세상이었다. 그런 시절에 한국인은 분연히 들고일어나 독재 정권을 응징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4.19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에서 처음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한다. 이승만은 지독한 가난과 반공 콤플렉스를 등에 업고 온갖 부정한 방법을 다 동원해 영구 집권을 꿈꾸었던 바,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유독 심했을 뿐 우리만이 아니라 제3세계 전반에 만연해 있었다. 따라서 제3세계의 민주주의는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체념이 퍼져 있었다. 그런 전후 세계에 4.19혁명은 복음이었다.
이처럼 위대한 4.19혁명, 한국 사회에 환골탈태의 기회를 제공하고 제3세계 민중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던 4.19혁명을 돌아볼 때 어떤 지도자가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시라. 역사책을 제법 읽었다는 나로서는 도대체 어떤 지도자도 떠오르지 않는다. 또 그처럼 주목할 만한 지도자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다. 자신이 4.19혁명에 참가해 젊음을 불태웠노라고 하는 위인들이 있기는 한데, 그들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세력에 끼어 혁명의 명예를 더럽히곤 하는 게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아마도 역사를 기억하는 한국인이 4.19혁명 하면 떠올리는 인물은 김주열일 것이다. 4.19혁명을 촉발한 3.15부정선거를 앞장서 규탄하던 마산 시민의 3.15의거. 1960년 마산상고에 입학할 예정이던 김주열은 바로 이 3.15마산민주화운동에 참가했다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난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시신이 되어 발견되었다. 채 피지도 못한 젊은이의 참혹한 모습은 민심을 강타해 결국 세상을 바꿔 놓은 시민 혁명으로 폭발했다. (관련 기사 : '대통령 죽여라'…학생 시신 속 쪽지의 비밀)
김주열은 호치민 같은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의 아들이고 형이고 동생이다. 4.19혁명의 주역은 딱 김주열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아무런 조직도 무력도 갖지 못한 이 보통 사람들이 맨몸으로 들고일어나 강대한 권력을 평화적으로 끌어내렸다. 이처럼 이름 없는 대중이 역사의 기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4.19혁명만이 아니었다.
당신은 요즘 들어 3.1혁명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3.1운동의 지도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태화관이라는 중국집에 모여 앉아 대중의 만세 운동이 폭동으로 번질까 지레 겁먹고 자기들끼리 만세 삼창을 외친 뒤 자진 체포된 '민족 대표 33인'을 거론하겠는가? 그들의 숭고한 뜻은 존경해 마지않으나 온 세상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알린 3.1운동의 지도자는 그들이 아니었다. 3.1운동은 그들이 제 발로 잡혀 들어가고 난 뒤 일제의 통계만으로도 전 인구의 10% 이상이 참여한 거족적인 시위로 전개되었다. 이 위대한 3.1운동의 지도자는 4.19혁명 때와 다름없이 이름 없는 한국인 그 자체였다.
한국 사회의 현재를 결정한 6월항쟁도 마찬가지 아닌가? 6월항쟁에는 정치권, 종교계, 재야 운동권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그중에는 훗날 제법 이름을 알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6월항쟁의 인물은 이한열이고 박종철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 아프게 가슴에 묻어야 했던 우리 자신이었다. (관련 기사 : 새누리당과 뉴라이트의 '6월항쟁 탈취' 사건)
이처럼 호치민도 마오쩌둥도 없이 역사의 큰 줄기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한국인을 생각하면 역사의 주체는 소수의 영웅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엘리트 사관의 소유자들이 은연중에 멸시해 마지않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역사의 진리라는 것을 입증하는 살아 있는 사례가 바로 한국 근현대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사의 '얼굴'은 평범한 한국인, 우리 자신이다
문제는 이름 없는 민중이 역사를 바꾸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권력이 그들에게 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들 손에 권력이 쥐어져야 변화를 끝까지 추동할 수 있건만 중간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권력을 가로채고 역사의 흐름을 왜곡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민중의 뜻을 받들겠다고 자임하는 정치 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객관적, 주관적 요인이 겹치면서 차려 준 밥상도 챙겨 먹지 못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시작한 것을 마무리 짓는 것, 이것이 한국인의 남아 있는 과제일 것이다. 그 과제가 이루어지는 날 우리 사이에서도 호치민이나 워싱턴 같은 '영웅'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날에도 여전히 위대한 한국사의 '얼굴'은 평범한 한국인 자신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위대한 한국인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 지경에 과연 이 글을 쓸 수 있을까 힘들어하면서도 결국은 그게 나와 내 가족의 일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비겁한 여력으로 여기까지 타이핑할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맞이할 수 없는 최후에 맞닥뜨려야 했던 분들을 가슴에 묻으며, 그 참담한 희생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살아남은 모든 이의 분노와 결심이 귓전에 메아리친다.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자들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19> 166년 전 문서, 현대 한국의 비밀을 말하다
<23> 추신수 둘러싼 '가증스런 피라미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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