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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청와대 지시로 노조파괴 공작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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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청와대 지시로 노조파괴 공작 벌였다

조합원을 '사과·배·토마토'로 분류…책임자 처벌 요구

한국전력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지시를 받고 자회사인 발전회사들의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데 직접 개입한 정황이 공개됐다.

8일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은 이 같은 정황을 묶어 발간한 '발전노조 노동탄압 백서'를 발표했다.

노조에 따르면 정부의 발전노조 기획탄압은 지난 2009년 9월 17일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주재로 열린 '노사관계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스노조가 입수한 회의 자료를 보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 비서관은 이날 회의에서 "철도공사에는 적극적으로 노조대응을 하고 있으나, 가스와 발전은 계획만 있지 실천은 없음"이라며 가스·발전 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더불어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은 "해당기업이 고소, 고발하면 경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 당부"라며 경찰의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는 노동부, 행안부, 지경부, 교과부, 방통위 등 관련 정부 부처 국장이 참석했다.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이 주재한 노사관계 회의 자료. ⓒ발전노조 제공

청와대와 정부부처가 모여 발전노조 대응을 논의하고 한 달 후인 2009년 10월, 발전 5개사는 '노사관계 환경변화와 선진노사관계연구용역'을 공동 발주했다. 그리고 같은 달 발전노조 영흥화력 남성화 지부장을 근무태만을 이유로 해고했고, 11월에는 동서발전이 발전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발전노조는 "근무시간 중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무리한 해고사유를 들며 남성화 지부장을 해고했는데, 이는 9월에 있었던 BH회의에 따라 발전노조에 강경 대응하고 있음을 사측이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동서발전 이길구 사장은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와 공격적인 노무관리를 자신의 공적으로 포장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도 밝혔다.

"한전이 각 발전회사에 민주노총 탈퇴 이끌어내라고 지시"

백서를 보면 발전5개사의 모회사인 한국전력은 재작년부터 각 발전회사가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이끌어내기 위해 얼마큼 노력을 기울였냐를 점수 매겨 경영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일례로 한전은 재작년에 치러진 발전노조 간부선거에서 민주노총 탈퇴를 공약한 후보의 득표율을 계량 평가하고 각 발전회사의 민주노총 탈퇴 후보 발굴 노력과 노조 사무실 회수 노력 등을 비계량 평가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탈퇴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중부발전과 남부발전은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 한전의 발전회사 노무관리 평가 문서 자료. ⓒ발전노조 제공

발전노조는 "한전이 민주노총 탈퇴를 발전회사의 경영평가 지표로 제시함으로써 발전노조 선거는 온갖 지배 개입과 부당노동행위로 무법천지가 됐었다"고 전했다.

특히 민주노총 탈퇴 투표가 부결되자 발전회사 측은 'Plan B'를 시행,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발전노조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탈퇴시키기 시작했다. 발전노조는 당시 조합원의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수단으로 '강제퇴출제도'와 '공개경쟁보직제(드래프트제)'가 쓰였다고 설명했다.

드래프트제도는 일하기를 희망하는 3개 부서에서 모두 선택이 안 되면 타 사업소로 강제 발령되고, 타 사업소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3개 부서에서 또다시 선택이 안 되면 무보직 발령, 무보직을 3회 받으면 해고되는 상시 인력 퇴출 프로그램이다.

발전노조는 사측이 "노조 탈퇴서를 안 쓰면 이번 드래프트에서 무보직을 받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들을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조합원들이 자신의 신념과는 달리 발전노조 탈퇴서를 작성했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 민주노총 탈퇴 투표가 진행되던 당시 '일산화력'이 작성한 문건. 조합원을 성향에 따라 사과·배·토마토로 분류해 관리했다. ⓒ발전노조 제공

노조가 입수한 민주노총 탈퇴 투표 당시 일산화력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사측은 조합원들의 성향을 '사과·배·토마토'로 분류해 관리했다. 토마토로 분류된 조합원은 겉과 속이 모두 빨개 발전노조를 탈퇴하지 않을 조합원을 일컫는다. 사과는 개별 협박하면 탈퇴할 가능성이 있는 조합원, 배는 약간의 협박만으로도 발전노조를 탈퇴할 조합원을 말한다.

발전노조는 사측이 사과 조합원을 집중적으로 협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조합원들의 성향을 분류한 후 사과 조합원 1명당 담당 간부 2명씩을 배치해 집중 관리하고, 해당 조합원의 담당 회사 간부가 특히 집중적으로 회유·협박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발전노조는 경찰청과 정부 기관들이 노조 탄압에 개입한 정황도 공개했다. 노조에 따르면 재작년 11월 동서발전 박노준 노무차장은 경찰청 본청에 근무하는 박은복 정보국 경찰관에게 "죄송합니다 투표를 가결시켰어야 했는데... Plan B 추진일정을 보내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보고를 했다.

또 사측은 '선진화 추진실적 보고서'를 지식경제부에 제출하는 등 노조탄압 진행과정을 정부 유관 부처에 상세히 보고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는 "상위직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무관리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인사적, 급여적 불이익이 곧바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노조) 총회 투표를 통한 민주노총 탈퇴 시도" 등의 구절이 나온다.

▲ 동서발전이 지식경제부에 보고한 '선진화 추진실적' 보고서의 일부. ⓒ발전노조 제공

발전노조는 "이처럼 심각한 노동탄압, 인권침해에도 이에 앞장섰던 발전회사 사장들은 연임되고 출세를 하고 있다"며 "부당노동행위와 인권침해에 응당한 법적·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통합당 홍영표 의원은 8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민간 부문에서 기업들이 창조컨설팅과 같은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과 컨택터스 등의 폭력 용역회사와 결탁해 노조파괴에 나섰다면, 공공부문에서는 청와대와 정부부처, 경찰이 직접 개입해 전 방위적으로 발전회사 노조파괴에 나섰음이 이번 발전노조의 백서 발간을 계기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만약 MB 정부 5년간의 노조파괴가 다음 정권에서도 지속된다면 다음 정권이 끝날 때쯤 민주노조와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은 대한민국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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