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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허용한 '살인제', "치명적인 폐 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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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허용한 '살인제', "치명적인 폐 손상"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21>]국가 차원 화학물질중독센터 만들어야

가습기에 사용한 살균제가 도대체 얼마나 위험했기에 일상생활에서 이런 끔찍한 집단 폐 손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제껏 가습기 살균제처럼 일상 생활용품의 사용 중에 치명적인 건강 영향을 초래했던 화학물질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없었다. 21세기에 화학물질 사용으로 영유아, 임산부를 포함한 사망자까지 발생한 집단 폐 손상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생한 것이다. 환자가 발생해 병원을 찾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초부터였고 학계에서 원인 미상의 폐 손상 환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게 2006년이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6~11년의 긴 시간이 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서 폐 손상을 입었다고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신고한 사람은 500명이 넘었다. 학계와 시민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임상검사를 실시하고 살균제 노출 정도를 평가했다. 그 결과 폐 손상과 살균제의 관련성을 평가하기 어려운 사람을 제외한 361명 중에서, 47%인 168명이 입은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가 확실하거나 이와 상당히 연관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가능성 낮음'으로 판정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모두 210명으로 전체의 58%다. 168명 중에서 사망자는 75명으로 전체의 45%였고, 소아는 104명으로 무려 62%나 된다. 게다가 사망자 중에는 임산부와 영유아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폐를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간질성 폐질환 유발

화학물질의 건강영향에 대한 위험(risk)은 화학물질이 지닌 본래의 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으로 표현한다. 독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 영향이 발생할 위험은 보통 몸에 흡수되는 노출 수준으로 결정한다. 전혀 노출되지 않으면 위험은 제로다. 이는 자동차가 사고 위험은 있지만 자동차에 타지 않거나 도로 인근에 접근하지 않으면 사고 위험이 없는 것과 같다.

화학물질의 위험 크기는 그 독성과 노출수준의 곱으로 산정한다. 독성이 큰 화학물질에 자주 노출되면 암, 돌연변이, 생식기능 이상, 발달 장애 등 치명적인 건강영향, 즉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독성이 낮은 물질에 노출되면 자극, 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노출을 멈추면 증상이 쉽게 회복되지만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역시 심각한 질병이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물질이라도 전혀 노출되지 않으면 그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의 건강 위험, 즉 독성은 우리 몸에서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교환이 일어나는 매우 중요한, 폐의 말단 부위 조직인 폐포(허파꽈리)가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증상을 포함한 간질성 폐질환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기관지 말단부위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폐포를 심각하게 손상시켜 호흡곤란을 겪다가 결국 호흡정지로 숨지고 만다. 그 동안 정부는 물론이고 제조회사, 전문가조차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에 대해 아무런 주의와 경고를 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정부가 판매를 승인한 제품이고 많이 알려진 큰 회사가 안전하다고 줄곧 선전한 것을 그대로 믿고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를 계속 사용해 왔다. 이 때문에 짧은 기간에 치명적인 집단 폐 손상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건강 위험이 매우 큰 살균제를 일상생활에서 가습기 용품으로 사용해도 안전한지 정부가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판매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살균제를 가습기에 넣어서 분무 형태로 사용하게 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 모 씨가 광화문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2012년 5월 21일) ⓒ환경보건시민센터

제품에 주의사항 없어 반복 노출이 치명적 결과 불러

가습기를 틀면 물에 녹아 있던 살균제가 물 입자 방울과 함께 공기 중으로 퍼진다. 그러면 가습기 근처에 있는 사람은 살균제를 포함한 공기를 계속 마시게 된다. 공기 중으로 분산된 살균제 입자는 엄청나게 미세한 크기인 100 나노미터(nm) 이하여서, 바로 호흡기 말단 폐포까지 침투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치명적인 영향을 알려주는 별도의 주의사항이 없어 건강 영향에 대한 주의나 의심 없이 살균제를 계속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살균제 위험인 폐 손상이 나타날 때까지 노출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이유이다. 그러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간, 즉 노출된 살균제 양은 어느 정도였을까?

불확실성이 있지만 살균제가 호흡기로 들어갈 수 있는 양을 필자가 추정해 보았다. 시중에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 농도는 국정감사 때 보고된 자료를 활용했다. 가장 많이 팔렸고 피해자도 가장 많은 옥시 제품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 평균 농도로 추정해보았다. 물 1밀리리터(ml)에 1.276밀리그램(mg)이 녹아 있는 정도다. 즉, 제품에서 권장한 하루 10ml 정도를 사용했다면 공기 중으로 분산된 총 양은 12.76mg이 된다. 이 중에서 방 크기, 환기 정도, 사용자의 노출 정도, 가습기와의 거리, 사용자의 호흡률과 나이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실제 호흡기로 들어갈 수 있는 양은 달라진다. 최소로 가정해서 10% 정도가 호흡기로 흡수된다고 가정하면 하루 1.276mg(12.76 x 0.1=1.276mg)이 된다.

실제 이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1mg은 대략 백설탕 알갱이 20개 정도이다. 만약 4개월 동안 매일 10ml를 사용했다면 호흡기로 들어간 살균제 총 양은 153.12mg(30일/월 x 1.276mg/1일)이 된다. 이보다 높은 농도의 다른 제품(롯데와이즐렉 PHMG=1,307ug/ml, 세퓨 PGH=4,486ug/ml, 클린업 PHMG=6,917ug/ml)을 동일한 방법으로 추정하면 훨씬 많은 양인 5.4 배가 된다. 또 하루 사용 용량이 2회였다면 노출되는 양은 2배로 증가한다. 필자의 추정에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가습기 사용자는 상당한 살균제 양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임산부, 영유아 보호할 수 있는 화학물질 안전기준 없어

위에서 추정한 살균제 양이 폐 손상과 단기간 사망을 초래할 정도였는지 판단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한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고 동물실험 조사도 일부 제품에 한정되어 있다. 역치(threshold; 안전하다고 여기는 양), 무관찰작용량(no observed effect level; 동물실험에서 임상적, 병리적, 생리적 독성 영향이 관찰되지 않은 양), 동물실험 결과를 근거로 사람에게 안전한 것으로 추정된 량(safe human dose; SHD) 등과 같은 기초 독성자료조차도 보고된 적이 없다. 가습기에 사용한 살균제는 고분자 화학물질이고 물리·화학적 특성상 폐포에 들어간 양이 대부분 제거되지 않고 누적되어 염증, 폐포 독성 등을 초래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절대적인 독성 결과나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서 다른 화학물질의 노출기준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독성수준을 판단했다. 건강한 성인 근로자에게 폐암을 일으키는 유리규산(모래먼지) 1세제곱미터(m³) 당 25마이크로그램(μg), 비소 10μg/m³, 크롬 10μg/m³ 등의 노출기준도 필자가 추정한 공기 중 평균 가습기 살균제 농도보다 훨씬 낮다. 이런 기준들도 건강한 성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므로 화학물질에 훨씬 민감한 기존질환자, 노인, 영유아 및 임산부에 적용할 때는 더욱 낮아져야 한다.

임산부, 태아, 영유아들을 보호할 수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기준은 없다. 독성학적으로 영유아나 임산부에게 권고할 수 있는, 안전한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이들은 화학물질에 아예 노출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노출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임산부와 영유아들은 임신기간, 출산 후 일정 기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임산부와 6세 이하 어린이에게 피해가 집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 차원 화학물질중독예방센터 만들어야

서울아산병원 일부 의사들은 간질성 폐질환에 사용해오던 통상의 치료 방법으로도 환자들이 차도가 없는 특이한 폐 손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려 했고 정부가 역학조사에 나선 결과 그 진상이 드러났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의 환자가족들도 서로의 피해가 유사하다는 점을 알고 정부에 신고했다. 환자와 의사가 거의 동시에 정부에 문제 해결을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진상 추정을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금지하였고 이후 추가 폐 손상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매우 많다. 대부분 건강영향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반인이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어떤 건강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우리나라는 생활환경에서 화학물질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고 사고가 나더라도 초기에 차단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를 체계적으로 보상하는 것과 함께 유사한 화학물질 사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각종 화학물질 사고나 건강영향을 국가 수준에서 종합하고 감시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외국같이 가칭 '국가화학물질중독예방센터'를 만들어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학물질 노출로 발생하는 사고를 예방하는 일을 총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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