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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쫓겨난 대통령 띄워 북한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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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 번 쫓겨난 대통령 띄워 북한 무너뜨린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8> 해방과 분단, 열세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네 번째 이야기 주제는 해방과 분단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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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교학사 교과서의 숱한 문제점 중 하나로 이승만을 지나치게 띄우고 김구의 비중은 축소한 것이 꼽힌다.

서중석 : 뉴라이트나 이번 교학사 교과서나 독립 운동을 폄하하면서도 또 이승만이 독립 운동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아, 김구와 이승만이 어떻게 비교가 되나. 그런데도 이승만을 김구보다 훨씬 부각해 놨다.

독립 운동 당시에 이승만처럼 논쟁의 회오리바람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사람을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다. 이 양반이 3.1운동이 있던 그해(1919년, 독립이 아니라 국제연맹) 위임 통치론을 주장했을 때부터 임시정부 내부뿐만 아니라 독립 운동 전(全) 전선에서 이 문제가 분열의 씨앗이었다고 얘기할 정도로 굉장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재미 동포들이 참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 운동 자금을) 갹출했나. 그런데 (이승만이) 그걸 어떻게 사용했느냐 하는 것도 상당히 큰 분쟁의 씨앗이 됐다. 그러면서 1925년 탄핵을 당해 (임시정부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았나. 1960년 200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의 희생 끝에 이승만이 또 쫓겨나고 마는데, 두 차례 다 쫓겨나는 게 뭘 의미하는 건가. 이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임시정부 대통령이던 때 이승만의 행적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서중석 : 이승만은 그 시기에도 '미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했다', '도대체가 임시정부 수반이면 상하이에 와야 하는데 6개월 동안 왔다 간 것 말고는 뭐가 있느냐', 이런 비판을 참 많이 받았다. 그런 이승만(의 활동)을 만주라든가 상해(상하이)라든가 연안(옌안) 같은 데에서 그야말로 간난신고를 겪어야 했던 독립 운동, 또 국내(에서 목숨 걸고 해야 했던) 지하투쟁, 이런 것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과거 분단 세력보다도 뉴라이트들이 더 이승만을 건국의 지도자로 부각하는 것 같다. 일제 시대(에 대해서는) 독립 운동을 폄하하면서 소위 실력 양성 운동을 치켜세우는 것과 똑같이, 해방 직후에 대해서는 해방을 폄하하면서 이승만의 '건국'이라는 걸 그렇게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만주·상하이·옌안·국내 등에서 간난신고 겪은 이들과 이승만, 비교가 되나"

프레시안 : 가장 먼저 짚을 대목은 무엇인가.

서중석 : 우선 이승만이 '건국'을 했나? 난 몇 년째 강연이나 글에서 용어 문제를 상당히 많이 얘기하고 있다. (이 경우) 뭐냐 하면 이승만 '건국'이라고 쓰는 것보다는 정부 수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 문제다.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지금까지도 한국이 신생 국가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참 어이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우리 전근대사, 근현대사를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쓴 것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정치학에서 얘기하는 신생 국가엔 아주 분명한 것들이 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 오세아니아와 태평양 연안의 도서 국가들, 이건 다 신생 국가다. 또 사하라 이북에서도 주로 지중해 연안 지역의 경우 예전에 주로 제국이 존재했다. 로마 제국이라든가 이슬람 제국 안의 한 지역으로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했다. 이것도 신생 국가라면 신생 국가다. 그렇지만 한국을 신생 국가라고 볼 수 있나? 이건 일본과 비교해 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프레시안 :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서중석 :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말미암아 연합국에 의해 점령당한 것 아닌가.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조인된 후에야 주권을 가진 정부가 들어섰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우익일수록, 극우일수록 (4월 28일을) 주권 회복의 날이라고 기념하고 이번엔 아베 총리가 심지어 천황 부부까지 나오게 하고 그러지 않았나. 주권 회복이라는 게 뭘 의미하나. 그럼에도 '일본이 그때 신생 국가로서 등장했다', 아무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1952년 4월 28일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발효된 날이다. 일본 우익은 이날을 주권 회복의 날로 기념해왔다. 아베 신조 정권은 2013년 4월 28일,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기념식을 거행했다. 같은 날, 오키나와에서는 '주권 회복의 날' 기념식을 규탄하는 행사가 열렸다. 류큐 왕국으로서 오랫동안 일본과는 다르게 살았고, 일본에 병합된 후에는 차별에 더해 제2차 세계대전 말 옥쇄 작전을 강요당했으며, 일본 패망 후에는 1972년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이등 국민' 오키나와인들의 역사의식이 담긴 행사였다. <편집자>)

우리는 수천 년간 독립 국가를 발전시켜왔는데 다만 일시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유일한 한 시기를 일제한테 강점당한 적이 있었(던 거)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독립한 것이기 때문에 '건국'이라고 하면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신생 국가 문제와 결부해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건 헌법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한국=신생국? "역사를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헌법의 어떤 부분과 이어진 문제인가.

서중석 : 헌법에는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돼 있다. 건국의 기초는 이미 임시정부에서 세운 거다. 그런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건데 어떻게 또 '건국'이라고 쓰느냐고 많은 사람이 비판하고 있지 않나.

'건국'이란 말을 쓰는 건 해방이라든가 광복이란 말을 쓰는 것과 다른 뉘앙스를 아주 강하게 풍긴다. 이승만의 단정 운동과 연결해 '건국'이란 말을 그렇게 강렬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그 단정 운동을 또 파고들면 친일파가 앞장선 것 아닌가. 독립 운동을 했던 세력은 당시 단정 세력에 대한 비판 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2008년에 일각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엄청난 논란이 일었을 때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이 '우리 서훈, 국가에 다 반납하겠다'고까지 했다. '친일파에게 건국 포장을 주자는 말이냐. 반민족 행위를 한 자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어떻게 역사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 그러지 않았나. 요즘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서도 바로 이 점을 가지고 얘기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

(광복절이란 말의 본래 뜻을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1948년 우리 정부가 들어선 날이 광복절인 거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원래 뜻으로만 보면, 그전엔 광복이라고 보기가 좀 어렵다. 주권 회복은 아니었으니까. 그 점에서도 우리 정부가 수립된 때를 광복절로 봐야 하는 것이다. '건국절'은 잘못 사용되면 엄청나게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잘못 사용되면서 (그런 것처럼). 이런 점을 생각해야 한다. 아울러 분단 세력이 지금처럼 '건국'이란 말을 사용할 때 이상한 면이 있을 수 있다.

프레시안 : 무엇인가.

서중석 : 뭐냐 하면 분단 정부를 세운 것을 희석하는 면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에 있는 정부에 대한 강한 증오, 적대감, 말하자면 북한 정권이 붕괴해야 한다는 요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고도 얘기들을 한다. 이런 부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한반도에 분명히 분단 정부가 있는데 (마치) 그게 없는 것처럼 하는 건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비판이다.

그와 함께 1948년 8.15 경축식장을 보라 이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만방에 선포한 그날 모습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하지와 같이 서 있는 그 유명한 사진(에 담긴 장면)이 있고 그 위에 써 붙인 게 뭔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 정부 수립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프레시안 : 이승만의 '건국'을 일각에서 띄우면서 제헌 헌법을 '건국 헌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서중석 :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 당시에 부른 대로 제헌 헌법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승만이 정말 '건국'한 건지도 논의를 해봐야 한다. 이승만은 집요하게 단정 운동을 폈다. 이건 누누이 이야기한 거다. 그렇지만 미국은 1947년 5월 제2차 미소공위를 열 때만 하더라도, 이승만의 단정 운동에 아주 비판적이지 않았나. 그러면서 이승만한테 강력히 권고했다. '이젠 반탁 투쟁 그만하고 미소공위에 협력하라'고. 이 시점까지는 분단 정부가 들어서는 걸 미국도 막아보려는 노력을 하긴 한 것이었다. 그다음에 마셜 플랜, 대소 봉쇄 정책 같은 게 나오면서 미국과 소련이 강력한 적대 관계로 뒤바뀌고 냉전 체제가 본격화하면서 (1947년) 11월 14일에 유엔 (총회) 결의가 나오는 거다. 한반도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이 유엔 결의는 이승만의 단정 운동과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다. 그것과 상관없이 국제 정세가 변했기 때문에 그런 결의가 나온 것이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1948년 1월 한국에 오고, 그러면서 5.10선거를 하지 사령관이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선거가) 이승만에 의해 결정됐다? 이승만의 영향력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난 어떤 자료에서도 본 적이 없다. (한반도의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 결의대로 하지가 5.10선거를 결정한 거다. 처음엔 5월 9일이었다가 하루를 늦춘 거다.

다만 5.10선거가 치러지는 과정에서 이승만이란 중요한 인물, 단정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동대문갑 구에 출마를 한 것이다. 이건 상당한 의미가 있긴 하다. 왜냐하면 김구나 김규식 등은 출마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선 의미가 있다. 그런데 5.10선거에서 아주 심하게 말썽이 일어난 지역이 바로 이 동대문갑 구다. 5.10선거의 역사적 의미가 퇴색하게 하는 데 동대문갑 구 지역이 큰 역할을 한 거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이승만 '건국' 띄우기와 북한 붕괴론, 그 수상한 관계

프레시안 : 이승만의 상대 후보는 최능진이었다.

서중석 : 최능진은 독립 운동을 했고 해방 직후 미군정 경무부에 들어가 수사국장이란 요직까지 맡은 사람이었다. (경무부장) 조병옥과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의 횡포에 반발해 경찰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최능진이란 사람이 동대문갑 구에 출마하면서 (이승만 쪽에서 보기에) 문제가 생겼다. (참고로,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최능진의 아들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어떤 문제가 생겼나.

서중석 : 5.10선거에서는 (후보로 등록하려면) 일정한 숫자의 추천서를 받게끔 돼 있었다. 이승만의 손발 노릇을 많이 한 서북청년회(서청) 핵심 간부 문봉제의 증언록에 아주 잘 나오는데, 최능진이 (후보로) 등록하려 하자 (서청 청년들에게) 등록 서류를 다 날치기 당했다. (그 후 최능진이) 가까스로 후보 등록을 하니까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지휘 아래 후보 등록 무효화 작업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동대문 서장이 '최능진 후보가 유리하다'고 보고한 것에 당황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증언들이 있지 않나.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박사를 당선시켜라'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서 경찰, 서청 같은 데에서 '추천인이 본인 승낙 없이 서명 날인했다'는 식으로 (공작을 펴서) 마감을 이틀 앞두고 입후보 등록을 취소시켰다. 이것만으로도 참 많은 문제를 야기한 거다.

그런데 최능진은 딘 군정장관하고 직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군정에서 김규식(을 통한 좌우 합작)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것과 결부하는 사람이 많다. 하여튼 (최능진이) 항의하니까 딘 군정장관이 여기에 한해 등록 연장 조치를 내렸다. 그렇게 하니까 (경찰 등이) 다시 무효화 운동을 펴 가지고 선거 이틀 전인 5월 8일에 선관위가 등록 취소 통보를 해 결국 최능진이 출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승만이 단독 후보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동대문갑 구가 참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거다.

프레시안 : 그런 이승만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기는 이들이 여전히 일각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 딱한 일이다.

서중석 : 그렇다. 5.10선거는 분단을 초래한 선거지만 그 선거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난 되도록 많은 세력이 5.10선거에 참여하도록 이승만과 한민당이 적극 권유했어야 한다고 본다. 분단을 초래하는 선거라고 해서 많은 세력이 5.10선거를 거부했다는 것 때문에도 그렇고, 또 대한민국이 튼실하고 훌륭한 국가로 탄생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정반대로 했다.

예컨대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의 주요 지도자들은 남북 협상에 참여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방에 있는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5.10선거 후보로 나서는 데 대해서 (이승만 세력과 한민당 쪽에서) 상당히 강한 원색적 비난 발언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상모략을 하고 색깔론 같은 걸로 몰아붙이는 걸 볼 수 있다.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이 제헌 국회를 독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극우 단정 세력이 아주 심한 편파성, 편협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5.10선거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얘기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이승만의 '건국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영화 제작을 추진하는 쪽도 자신들의 영화가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건국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김구 죽인 "안두희 의사" 시대 부활하나)

서중석 : 이승만한테 과연 '건국 정신'이란 게 있었느냐. 나는 이승만의 '건국 정신'이란 게 뭔지 예전부터 의아했었다. 그런데 한 수구 신문에 '이승만의 건국 정신은 4월혁명 정신과 똑같다'는 내용이 실려 읽어봤다. '이승만 건국 정신이 뭔지 여기엔 써놨겠지' 하는 생각으로 봤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그게 뭔지 나오지 않더라.

만일 이승만의 '건국 정신'이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그건 민주주의라든가 친일파 처단이라든가 자유라든가 인권이라든가 통일 국가 수립,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승만과 이 중요한 명제들이 얼마나 거리가 먼가? 이걸 안 느낄 수가 없지 않나. 그러니까 (저들이) '건국 정신'이란 말만 쓰지 뭐가 '건국 정신'이다, 이건 없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스물아홉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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