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총선에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으나, 나름 상징성이 꽤 큰 선거구가 경기도 의정부 을이었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대학 총장과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청소노동자가 맞붙었다. 두 후보의 살아 온 삶은 너무 달랐다.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원도 하고, 대학 총장을 맡고 있는 여당 후보와 동물 사료 나르는 일을 하다 청소노동자가 되어 17년을 꼬박 청소일을 한 야당 후보. 병역까지도 대조적이었다. 군 방위병으로 입대했다가 4개월만에 '허리 디스크'로 의병제대한 여당 후보와 육군 GOP부대에서 근무하고 상병으로 만기전역한 야당 후보. 이 곳에서 당선된 이가 바로 홍문종 의원이다. (관련기사 : 청소부 vs 대학총장…"여기야 말로 99%대 1%의 싸움")
그는 ‘친박계’다. 지난 2006년 7월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강원 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도내 사업가들과 2개 팀으로 나눠 골프를 친 이른바 ‘수해 골프’ 사건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제명됐던 그가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따낼 수 있었던 이유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수해 골프’ 뿐 아니라 지난 2005년 부친이 11억8000만 원의 국고보조금과 학교 임대수익금 등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는 등 사학 비리와도 연루된 바 있다.)
당 3역 중 하나인 사무총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친박 중에서도 꽤 핵심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의 한 칼럼에서 소개한 분류에 따르면, 그는 ‘장뇌삼’ 급이다. (산삼은 선친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성골, 장뇌삼은 친박 최측근 인사, 인삼은 그냥 친박, 도라지는 자칭 친박이라고 한다.)
‘장뇌삼’ 급에 걸맞게 홍 의원은 뜯어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다. 부친이 정치인 출신이라는 것, 사학재단 이사장이 주요 경력이라는 점, 부친 덕택에 수십억 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등이 닮았다. (홍 의원의 부친은 홍우준 경민대학 설립자로 11-12대 때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홍 의원은 41세에 아버지 지역구인 의정부에서 당선(15대), 일찌감치 정계에 입문했다. 2013년 홍 의원과 그 배우자의 부동산 신고가액은 162억여 원이나 되며, 총 재산 신고액 73억여 원에 달한다.)
홍 의원이 요즘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의 ‘노예 노동’ 실상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출신 예술가들은 월 60여만 원의 말도 안 되는 저임금에 쥐가 들끓는 숙소, 열악한 식사, 여권 압수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왔다고 한다.
홍 의원은 처음에는 “박물관 일은 잘 모른다”며 발뺌을 하다가,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한 근로계약서에는 홍 총장 본인의 사인이 있고, 노동자들의 식대가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된 것은 홍 총장과의 면담 후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등 직간접적으로 ‘노예 노동’을 강요해온 정황이 밝혀졌다. 또 이 박물관 터 내에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불법 건축물을 지어 2년간 임대료를 받아온 사실도 언론을 통해 확인됐다.
이처럼 노동법 위반 뿐 아니라, 군사시설보호법과 납세관련법 위반 논란까지 불거지자 야당은 일제히 ‘사무총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수의 실정법 위반 등 사태의 무게를 감안할 때 ‘사퇴’를 요구하는 게 무리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로선 홍 의원이 사무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홍 의원은 파문이 확산되자 서둘러 지난 12일 박물관 측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그간 체불임금 전액 등 총 1억8968만 원을 지급하는 등 노동조건 개선을 약속했다. 수습에 나선 것이다.
총선에서 공천조차 뒷말이 나왔던 인사인 홍 의원이 작년 5월 사무총장에 오르게 된 것은 그가 이른바 ‘조직의 귀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그는 6월 지방선거용 사무총장인 셈이다. 이런 관측에 걸맞게 홍 의원은 최근 정몽준, 남경필, 원희룡 등 ‘중진차출론’을 가장 먼저 언급했고, 신기하게도 ‘불출마’ 입장이었던 정몽준 의원이 최근 서울시장 출마 쪽으로 돌아선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서울 중구 당협위원장이 나경원 전 의원을 제끼고 지상욱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낙점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배경에도 그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런 모든 결정의 배후는 ‘박심’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아프리카박물관을 둘러싼 그의 ‘위법’ 논란에 대해 여당과 청와대에선 어떤 비판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낙마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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