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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샨과 대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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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샨과 대월지

[이상엽의 노마드 7] 중앙아시아에서

이 사진은 중국 시안의 국립박물관에서 발견해 찍은 사천왕상이다. 머리는 과장되게 만들어졌지만 섬세한 근육의 표현이나 옷의 주름은 전형적인 간다라 미술의 표현 양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표현 양식은 실크로드의 동단이라 할 수 있는 신라의 석굴암에서도 발견된다. 간다라 양식은 대월지, 더욱 정확하게는 쿠샨인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 간쑤성 하서회랑지역에서 흉노에 의해 몰려난 대월지인들은 쿠샨과 어떤 관계인가? 대월지인들이 중국 서부와 중앙아시아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동서양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문명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말을 가축화하고 그것을 타고 전쟁을 수행했던 민족이 스키타이족이다. 광대한 유라시아초원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페르시아, 인도에서는 사카라 불렸고 중국에서는 월지로 불린 듯하다.(중국 문헌에서는 새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새족과 월지인들은 구분되어 기술되지만 풍습과 인종이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월지인들은 기원전 2세기 전부터 중국의 변방에서 활동하며 기마문화와 남성의 바지문화를 전달했다. 또한 이들이 더 동쪽에 위치한 흉노와 동호에게도 기마문화를 전달한 것이 명백하다.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사이 어느 시기부터 발흥한 흉노가 월지인들을 압박하고 그들의 본거지인 하서회랑지역에서 쫓아낸 것은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 한 무제는 용감한 하급 관료인 장건과 기마에 능했던 노예 감보를 서역으로 파견해 쫓겨간 대월지인들과 동맹을 맺으려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장건의 서역행인 것이다. 하지만 장건이 천산을 넘어 중앙아시아 대완(현 페르가나 분지)을 지나 대하(박트리아)에 도착했을 때 대월지인들은 그곳 생활에 만족하고 선대의 원한을 잊은지 오래라 동맹은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다리야 강 인근에서 강력한 5개의 흡후(봉건영주)로 나뉘어 있고 그 중 귀상흡후가 가장 강력하다는 정보를 얻어온다. 이후 대월지인들은 귀상흡후가 나머지 흡후들을 격파하고 귀상제국을 건설한다. 이것이 바로 쿠샨제국인 것이다. 이들은 간다라를 침공하고 인도북도에서 이란 지역까지 세력을 넓히면서 거대한 제국을 만든다. 이들이야말로 로마에서 시안까지 거대한 문명의 고속도로를 건설한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월지인들과 쿠샨인들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미스터리가 많고 그래서 수 많은 이론이 존재한다. 이들이 스키타이 계통의 아리안인들이 것은 밝혀졌지만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 이들이 하서회랑의 월지인들이 전부인지? 아니면 박트리아인들과 동족인지? 어떻게 단숨에 초일류문명을 건설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끝이질 않는다. 다만 유력하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스키타이의 활동 범위가 무척 넓었다는 것과 타 문명을 흡수하는데 무척이나 빨랐다는 것, 중국이 여전히 쿠샨을 대월지라 불러도 별 저항감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대월지와 쿠샨인들의 계통적인 연속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서회랑에서 베그람까지 6천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해 문명의 이동경로를 확장한 대월지인들, 그래서 우리가 실크로드와 노마드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람들인 것이다.

사진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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