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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안의 '늑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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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안의 '늑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프레시안 books]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언어, 그 주술성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쏟아낸 말이 화살 되어 돌아올까, 그대로 삼켜지기 일쑤였다. 뱉어내지 못한 말은, 피로 녹아들고 뼈로 더해져 '내'가 되었다. 소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던 찌꺼기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차마 뱉을 수 없었던 말이 곧 나이고, 나는 곧 게워내지 못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셈이다.

삶, 녹록할 거라는 기대 품지 않았다. 되레 실패와 고통이 반복될수록, '업장소멸'의 과정일 거라는 쪽에 기대며 안도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는 행복과 긍정의 아이콘으로 나를 추켜세웠다. 그들이 틀린 건 아니다. 최악의 순간에도 대책 없는 낙관을 뱉어내고, 비관을 삼키는 쪽이었으니 그럴 법하다. 희박한 근거를 들며, 아무 때고 '잘 될 거야'라는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말을 해댔다.

회피, 나를 지키는 최소의 방어 기제였는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덜 다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략이었다.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부터 갈등 상황은 두려운 '적'이고 '벽'이었다. 용기 없던 나는 '숨어드는' 쪽을 택했다. 보고 느낀 바를 그대로 진술하지 말기로, 차라리 침묵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느 여성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딸, 애인, 아내, 엄마, 직업인으로 살면서 날것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낸다면, 안전은 쉽게 무너질 터이다.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서 그들이 선택할 방법 또한 많지 않을 거로 본다. 그러니 입을 막고, 견디고, 인내하는 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그리하면 조금은 수월했을 테니 말이다.

▲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이루 펴냄). ⓒ이루
본성 그리고 늑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이루 펴냄)은 '여성'을 위한 책이다. 욕망을 억압하고 순응의 삶을 살다, 정서적 빈곤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위한 헌정이랄까. 희생정신, 예민함, 친밀감과 지구력으로 관통하는 여성의 본질은 장난스럽고, 호기심 많고, 직관적이며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늑대의 본성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늑대'는 곧 '여성 본능'의 상징이 된다. 저자는 둘의 삶 모두 평탄치 않다고 말한다. 이리저리 내몰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라 낙인찍힌 채 산단다. 희생을 담보하지 않은 여성 삶이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던가. 처연하고도, 강인한 '여성성'에 관한 저자의 일관된 시각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융 학파의 심리분석가이자 외상 후 스트레스 전문가인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이 책에서 분석심리학에서 나타난 상징을 토대로 여성의 삶을 해부한다. 다양한 신화와 동화를 통해 상징적 죽음과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강요된 금기,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모르고 싶었던 본능, 잠자고 있는 아니무스를 깨워서 현실 삶에 직면하라고 권한다. 초점과 방향을 잃은 채 지내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직무 유기라 부추긴다. 순종과 헌신의 대가인 안락함의 유혹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역경을 견디어야만, 진정한 '자기실현'이 가능하고, 고난을 관통해야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칼 구스타프 융은 말한다.

인용된 동화 속 인물에 이입해 보는 일은 흥미롭다. "<푸른 수염> 이야기는 모든 여성의 심리 안에 있는 포식자, 즉 천적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여성은 이 힘을 기억하고 통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직관과 인내심, 사랑과 예민함 등 타고난 능력을 모두 보전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뼈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직관으로 상처를 치료하며, 자신의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66쪽) 억압에 직면하는 일이 순탄치 않음에도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쾌감과 용기를 준다. 늑대의 '천적'을 몰아내려면 그동안 가해진 금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직관과 능력을 발휘하고, 사실을 말하고, 그 상황에 맞는 대책을 세워 실행해야 한다." (93쪽)

▲ 여성을 유혹해서 죽이는 야수 신랑 푸른 수염의 최후. 유럽과 북미 민담. ⓒ이루 제공

상징으로서의 죽음,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죽음과 마주해야 한다. 고통 없이는 성장도 없다. '삶은 고(苦)'라 했다. 그러하니,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행위가 죽음을 통과해 '새 생명'을 얻는 과정이라 하겠다. 다만 '새 생명'의 유혹에 매혹되어 섣부르게 덤벼들어선 곤란하다. 준비가 필요하다.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자신의 본성을 되찾고자 하는 여성은 진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실을 사고, 감정, 행동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통 융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영혼을 상실하는 것은 대개 35세 이후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여성에게는 매일매일이 위기다. 나이나 결혼 여부, 혹은 교육 수준이나 경제력과는 상관없다. 현대 사회는 멋지고 편리한 물건이 매우 많아진 만큼, 영혼을 위협하는 물건도 예전보다 더욱 늘었다. 중요한 것은 열정과 진솔함, 그리고 깊은 본능은 언제든지 다치거나 없어질 위험이 있으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39쪽)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희망을 말하고, 비관을 품어 온 오랜 습관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늑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조련되지 않은 늑대와 의식하지 못한 아니무스는 엉뚱한 곳에서 괴상한 모양으로 튀어나와 당혹스럽게 한다. 타인의 심리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직업으로 십여 년을 지내왔으나, 자신에 대한 오해와 이해를 수없이 반복한다. 소심, 조심 DNA는 시시때때로 울부짖는 늑대를 제어하는 데 급급하다. 하지만 좀 더 자주 물어볼 작정이다. "알고 싶지 않지만 내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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