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내년의 총 지출 증가율이 명목 GDP 증가율 전망치보다 훨씬 적어서 GDP 대비 총 지출 규모는 오히려 줄어든다. 정부는 2014년 명목 GDP 증가율을 6.5%로 예측했는데, 총 지출은 본예산 기준으로는 4.6%, 추경 기준으로는 2.5%를 늘리는 데 그친다. 금액으로 총 지출 규모는 15.7조 원 증가하는데, 법으로 규정되어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의무 지출 증가액이 약 10조 원 정도이므로 정부가 새롭게 의지를 가지고 증가시킨 예산은 5.7조 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총 지출 규모가 거의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도 하고 맞춤형 복지도 증가시키려다 보니, 다양하게 사업은 만들었으나 각 사업의 예산 규모와 내용이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이다.
SOC 위주의 빈약한 '경제 활력·일자리 예산'
'경제 활력·일자리 예산'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SOC 위주로 짜여 있으며 SOC 이외의 사업들은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경제 활성화 예산으로서 제시된 사업 중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 사업을 들여다보자. 연 평균 5조 원 수준의 지방 재정 확충안이 들어 있는데, 이는 취득세 영구 인하를 보충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적극적 의미에서 지방 경제 살리기가 되기는 어렵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주요 사업은 SOC 사업들이다. 현 정부는 분명히 SOC 사업의 규모를 줄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나 실제로는 거의 줄이지 않은 셈이다. 문제는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 없음' 판정을 받거나 예비 타당성 면제를 받은 대형 SOC 국책 사업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4년 새로 시행되는 사업비 500억 원 이상 사업 64개 중 48건이 '경제성 없음' 판정을 받거나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는데, 이 중 13건이 SOC 사업이다. '경제성 없음'으로 판정받은 사업 중 대표적인 사업은 '남일-보은2 국도' 건설 사업으로서 경제성 분석(B/C)이 0.28에 불과하였으며 종합평가(AHP) 점수에서도 기준선인 0.5를 넘기지 못했지만(0.43 기록) 1392억 원의 총 사업 예산이 책정됐다.
일자리 예산은 더욱 문제이다. 총 11.8조 원으로 2013년 대비 8421억 원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 일자리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3.86조 원을 차지하는 실업급여 예산이다. 실업급여 예산은 사회 안전망으로서 물론 중요하지만, 실업급여 인상, 수급 대상 확대 조치가 없다는 점에서 예산액 증가는 수급자 증가 및 최근 급증한 육아휴직 급여 때문일 뿐 일자리 창출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또한 많은 신규 사업들, 예를 들어 '핵심 직무 역량 평가 모델' 개발, '스펙 초월 멘토링 시스템' 신설은 실효성이 의심스럽고, 취업 성공 패키지 사업 확대 역시 단기 처방에 가깝다. 또한 일자리 예산의 핵심은 실버 세대에 대한 사회 참여형 일자리, 시간 선택제 일자리 등인데, 이 사업들은 저임금·단기 일자리에 대한 지원이 중심이어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시간제 일자리 사업의 경우 또 다른 비정규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그나마 책정된 예산으로 창출되는 인원도 예년에 비해 1460명 증가(2013년 3570명 -> 2014년 5030명)하는 데 불과하다.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낮은 고용율도 문제이지만 많은 일자리가 질 낮은 일자리인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저임금 고용 비중이 2007년 이래 작년까지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따라서 향후 일자리 정책은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어야만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자리 사업은 우선 공공 부문에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2015년까지 6만5000여 명의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던 정부 계획을 실현할 예산이 전혀 편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번 예산안의 일자리 사업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어느 세대, 어느 계층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할 복지 예산
정부는 2014년 예산안을 제시하면서 생애 주기별, 취약계층별 맞춤형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밝혔으나 예산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 보건복지 분야 예산은 올해 대비 8.7% 증가한 105조9000억 원이지만,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공적연금 증가액(3.3조 원), 건강보험 국고지원액(0.5조 원) 등의 의무적 복지 제도 운용에 따른 자연증가분과 주택 분야(0.8조 원) 등 비복지성 예산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보육·양육수당, 반값 등록금, 고교 무상 의무 교육 등 국민들이 기대하는 복지 예산은 지난 5월말 정부가 발표한 공약 가계부나 6월에 각 부처가 제출한 2014년도 예산·기금의 총 지출 요구 규모에서 대폭 축소되었다.
예를 들어 장애인연금의 경우 올해 초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당시에는 "공약에 따라 현재 중증장애인 32만7000명(63%)에서 59만 명(100%, 3급 전체 포함)으로 대상을 늘리고 금액도 20만 원으로 늘리겠다"고 보고되었으나, 2014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대상자 수는 3만7000명 늘어난 36만4000명에 불과하다. 이는 애초에 공약했던 내용, 즉 전체 중증장애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보편적 지급 공약'이 아니라 일부 장애인에게만 연금을 현재의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늘려 지급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 고령화 수준과 공적연금 지출 규모. 가로축은 2007년 기준 노인 부양률(20세 이상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 세로축은 GDP대비 공공 연금 지출 비중. 한국(KOR)은 평균보다 덜 지출하고 있는 국가다. 노인 부양률 수준을 고려했을 때 OECD 평균의 2분의 1이다. ⓒ출처 : Pensions at a Glance 2011: Retirement - income Systems in OECD and G20 Countries(2011) |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복지 공약을 축소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재의 낮은 복지 수준을 생각해 보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재의 공적 연금 지출 규모로 판단해 보면 우리나라의 공적인 노인 복지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OECD 노인 자살률이 1위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복지 프로그램들을 원래 공약보다 대폭 후퇴시킨 것은 복지는 경제 상황이 좋을 때에나 실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 프로그램은 경기가 호황일 때는 자동적으로 경기를 진정시키고 경기가 불황일 때는 자동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때문에 복지 프로그램이 적정 규모로 확대되는 것은 경기 조절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감세 이후 지출 억제 위주의 재정 준칙의 문제점
재정 효과가 이렇게 억제되도록 예산안이 짜인 근본적인 원인은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MB 정부가 대규모 감세를 단행하고 지출 억제 위주의 암묵적인 재정 준칙(균형 재정에 이를 때까지 총 지출 증가율을 총 수입 증가율보다 3%p 이상 낮게 유지) 제도를 운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재정의 역사를 보면 예산 편성의 원칙으로서 수입 범위 내에서 지출을 억제하는 양입제출(量入制出)의 원칙이 사용된 바 있다. 이 원칙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적자 재정 편성 과정에서 포기되었다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다시 도입되었다. 정부는 지출을 수입 이하로 관리하여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 예산의 내용은 가능하면 경제 분야에 투입하고, 특히 조기 집행함으로써 경제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재정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재정수지 악화를 방지하여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정책은 바람직한 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 준칙을 조세부담률을 낮춘 후 지출 억제 위주로 과도하게 시행하면 오히려 경기 안정화와 재정 건전성 유지 모두 실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는 재정 수지를 매해 균형, 혹은 흑자로 만들 필요는 없다. 경기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므로, 재정의 자동 안정 장치가 잘 작동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호황기에는 재정 수지 흑자가, 불황기에는 재정 수지 적자가 나타나면서 경기 변동이 완만하게 조절되고 중기적으로 균형 재정이 달성되므로 재정 건전성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경기 변동에 상관없이 흑자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경기가 불황인데 흑자 예산을 실행함으로써 제대로 경기 활성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로 인해 GDP가 쪼그라들어 GDP 대비 국가 부채는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남유럽 재정 위기 발생 이후 유로존 국가들의 경우 경직적인 재정 준칙을 운용하여 지출을 억제하는 긴축적인 재정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것이 경제 상황을 장기간 침체로 몰아넣었다는 반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반성으로부터 경제 위기 이후에는 재정 준칙에 변화가 있었다. 경기 변동에 따른 자동적 재정 수지는 용인하여 경기를 조절하고, 그보다 더욱 심각하게 재정 수지가 발생할 경우만 통제하기로 하는 재정 준칙을 채택하는 국가들이 늘어났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이 대표적이다. 재정 준칙에 대한 이러한 흐름과 비교하였을 때, 우리의 경우 복지 지출 규모가 작아 재정의 자동 안정화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경직적인 재정 준칙을 채택하여 지출을 억제함에 따라 제대로 된 경기 대응 능력이 미약한 것이 문제이다. 과거 양입제출의 재정 정책을 펴도 그나마 경기 위축 현상이 심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출이 내수를 견인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출이 늘어도 내수가 늘지 않는 상황, 즉 내수를 진작시킬 강력한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지출, 특히 복지 지출을 더욱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페이고(PAYGO)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페이고 제도는 새로운 의무 지출(특히 법정 복지 지출)이 증가할 때, 다른 의무 지출을 감축하거나 새 재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향후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연금 등 복지 지출이 급증할 것이므로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재정 준칙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요 근거로 제기된다.
그러나 페이고 제도는 선진국 다수가 널리 적용한 재정 준칙이라기보다 OECD 국가 중 미국과 일본에만 도입된 매우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 1990년부터 2002년 사이에, 그리고 2010년 이후에 재도입되어서 실행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2011년 이후에 실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의 효과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의무 지출이 빠르게 증가한 것은 복지 수준이 과도하게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현상이다. 해결책은 복지 지출 억제가 아니라 적극적인 저출산 해결 대책이어야 한다.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으로서 복지 지출 증가를 억제하려는 것은 오히려 노후 불안을 야기하여 저출산, 고령화를 조장할 수 있다.
또한 페이고 제도의 밑바탕에는 현재의 복지 지출의 규모를 늘리지 않겠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인데(페이고 제도는 새로운 의무 지출의 형성을 억제하지만, 현존하는 지출 계획에 대한 위축 효과는 없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편집자>), 현재 우리나라 복지 지출 규모는 적정선 이하다. 즉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복지와 관련하여 여전히 '작은 정부'이므로 복지 지출 규모는 당분간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 당장은 우려스럽겠지만, 적정 수준까지 증가시킨 이후에는 저출산을 해소해 주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 다음에 그보다 더욱 증가하지 않도록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복지 지출 증가에 대응한 적절한 재원 마련 전략이 동반되어야 한다.
예산안 재검토 방향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하반기 경기가 회복되고 있으므로 적극적인 재정 정책은 필요치 않으며 투자 활성화 관련 법률을 개정하여 막힌 투자를 푸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상항에서 민간 투자가 쉽게 살아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간 투자가 살아나기를 기다리기보다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 정책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복지 지출을 대폭 확대하여 자동적 경기 조절 기능이 작동하게 하며, 일자리 예산도 대폭 보강해야 한다.
이러한 재정 기능을 감당하려면 조세 부담률을 올려야 한다. 즉 빈약한 예산안의 근본적 원인은 낮은 조세 부담률 수준이므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최우선의 과제는 적극적인 증세다. 어떤 증세안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나, OECD 국가들보다 우리나라의 조세 구조가 직접세의 역할보다 간접세의 역할이 강하다는 점에서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수 증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특히 법인세는 지난 정부 하에서 대규모 감세가 집중되었고 그로 인해 세수 부족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증세가 필요하지만 탈세 방지, 예산 낭비 제거 등도 동시에 전개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예산안의 대표적인 낭비 사업으로는 정부가 이색 사업이라고 제시한 DMZ 세계 평화 공원 조성 사업을 예로 들 수 있다. 정부는 DMZ 내에 남·북, UN 등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세계 평화 공원을 조성하고, 지뢰 제거비 등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에 402억 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총 사업 규모 2501억 원이 투자되는 대규모 국책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았다. 이는 추가적인 예산이 들어갈 가능성도 높고 무엇보다 북한과 UN이 사업을 합의하지 않고는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렵다는 점에서 무계획적인 예산 편성의 전형이다. 이런 사업들은 이번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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