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발표를 보면 2014년 나라 예산은 357조7000억 원에 이른다. 얼마나 큰 돈인지 쉽게 가늠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단돈 5만 원이 아쉬운 처지에 매달 내는 세금을 생각하면 한 해 정부의 예산은 반드시 낭비 없이 사용돼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시작된 제도가 있다. 예비 타당성 조사 제도이다. 대규모의 신규 사업에 국가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이고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인 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을 미리 검토하도록 되어 있다. 수요가 없거나 경제성이 낮은 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기만 하고 효과가 낮아 예산이 낭비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국가의 사업이 때로는 경제성이 없더라도 공공성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 균형 발전 등 정책적 타당성도 함께 검토하게 된다. 대규모의 국가 재정이 지원되는 사업의 경제적 정책적 타당성을 확인하는 사전 검토 제도가 바로 예비 타당성조사이다.
세금 수천억 쏟아붓는데…경제적 타당성은?
그런데 2014년 정부 예산안을 살펴보면 고개가 갸웃하게 되는 것이 있다. 수백억, 수천억의 국가 재정이 투여되는데도 경제적 정책적 타당성이 없다고 확인 된 사업에 예산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춘천~속초 사업 재기획 조사 사업의 경우 2014년에 5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되어 있다. 이 사업은 수도권과 강원 간 99.2킬로미터에 고속화 철도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으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2014년 사업예산(안) 설명 자료를 살펴보면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친 예비 타당성 결과, '경제성은 확보하지 못했으나 강원 동해권 철도 교통망 구축 및 강원 지역 공약 사업임을 감안하여 14년 사업 재기획 조사를 위한 연구 용역비 50억 원을 반영' 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리 공약 사항이라도 대규모 국책 사업이 경제적 정책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혈세 낭비를 막는 일인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재기획에 50억 원을 투자한다니, 이것조차 예산낭비다.
이뿐이 아니다. 신규로 건설되는 도로 사업의 경우 경제성이 없다고 확인된 남일~보은2 국도, 고흥~봉래국도, 용진~우아 국대도 건설 사업도 예산이 편성되어 있다. 심지어 남일~보은 국도의 경우는 경제성뿐만 아니라 정책적 타당성도 없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2014년 예산만 살펴보자면 큰돈이 투자되는 것은 아닌 것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남일~보은2 국도, 고흥~봉래 국도, 용진~우아 국대도에는 각각 5억 원이 투자되고, 춘천~속초 사업 재기획 조사 사업은 50억 원이다. 그러나 문제는 2015년부터 이다. 통상 도로나 철도 사업은 사업 시작 2년째부터 실질적인 토지보상과 건설이 시작되어 대규모로 예산이 투여된다.
재정 투자의 규모가 달라지는 것이다. 3개의 도로 건설 사업의 2014년 예산이 15억 원에 불과하지만 총 사업비는 4354억 원에 이른다. 춘천~속초 고속화 철도 사업의 총 사업비는 3조 6743억 원에 이른다. 결국 수년에 걸쳐 혈세가 경제성 없는 사업에 낭비될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 수천억 투입…타당성 조사도 없다?
예비 타당성 조사 결과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문제지만, 수천 수조원의 국가예산이 투자되는 사업이 타당성 검증도 없이 진행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법률상 국가안보, 문화재 복원 등 목적 사업의 경우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 받을 수 있으나, 정작 타당성을 확인해야 하는 사업이 제도적 한계로 인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비껴가고 있는 점이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대규모 국책 사업은 103개이며, 총사업비 65조 2019억 원에 달한다. 이중 도로, 철도 사업만 살펴보면 그 수가 11개이며, 총사업비는 19조77억 원에 이른다. 한국의 국토 면적 대비 도로 구축 수준이 OECD 가입국 중 고속도로 5위, 국도 7위인 점을 고려했을 때 이미 도로 인프라는 충분하다. 2014년 국토교통부 예산에 98억 원이 책정된 포항~영덕간 고속도로 사업의 경우 선심성 지역구 사업으로 '형님 예산'이라 불린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이다.
국도 6호선 확장 사업으로 둔대~무이, 무이~장평, 장평~간평 간 국도 사업의 경우도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검토 없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뿐 아니다. 4대강 사업도 대표적인 예비 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이며, 광역발전 30대 프로젝트에 포함된, 포항-영덕간 고속도로, 유림문화공원조성, 한문화테마파크, 양평~이천간 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개발 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을 검증받지 않고 추진되고 있다.
혈세 낭비를 막자
문제는 경제성이 확인 되지 않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 시작되면 그 다음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예산이 장기적으로 투여된다는 점이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가장 현명하고 확실한 방법은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신규 사업에 대해 철저하게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 될 경우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 예산의 낭비를 막고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예비 타당성조사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결과를 무시하거나 제도를 피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국가 재정으로 장난치는 꼴에 불과하다.
이제 곧 국회에서 부처별 사업 예산안에 대한 검토가 시작된다. 국회의원들이 타당성 없는 대규모 개발 사업을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라고 묵인하거나 쪽지 예산으로 개발 사업을 늘려서는 안 된다. 부처와 국회가 국가 재정을 주머니 쌈짓돈 다루듯 해서는 안 될 것이다. 12월부터 예산 국회가 시작된다. 세금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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