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세계평화공원', 평화체제의 전략을 수반해야
하지만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서 평화협정을 위한 논의는 꽉 막혀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장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가 평화번영의 길로 회복될 조짐을 좀처럼 보이고 있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불신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과 함께 핵개발 우려 대상 국가였던 이란과는 진지한 대화와 협상을 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란에서는 선거를 통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온건한 정권과의 대화를 통해 중동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 지난 2010년 사진가 이상엽씨가 촬영한 DMZ 모습 ⓒ이상엽 |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 포기를 향한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핵을 개발했고 이란은 아직 개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란과 북한의 차이로 들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북미간 대화 재개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또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중동문제가 우선이므로 북한 문제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대화 재개를 위한 중재외교를 펼치던 중국의 노력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의 의미 있는 선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미국과, 조건 없는 대화를 제기하는 중국 및 북한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건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DMZ 세계평화공원'을 추진할 경우 '호랑이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리는 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잔뜩 고조된 지방자치단체들의 개발에 대한 기대감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합계획도 전략도 없는 상태에서 'DMZ 세계평화공원'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칫하면 DMZ가 아닌 그 남쪽 지역 남한땅 몇 군데에 토건족들의 이익만 보장한 시멘트 조형물을 만드는 데 그칠 수도 있다. 흉물을 만들게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수난 속의 축복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은 남북의 긴장완화라는 정치적 의미 이외에도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 일대에 평화적 차원에서 청정산업공단, 생태계 보전지역 지정, 민족 생태공원, 물자교류센터, 세계평화를 위한 상징적 건물을 신축하자는 의견과 함께 야외음악 공연장 등을 조성하자는 수많은 의견들이 제시되어 왔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수난 속의 축복'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비무장지대가 민족 분단이라는 수난의 산물이지만, 비무장지대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에 의해서 비무장지대는 민족의 축복이 될 것이다.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란 '군 병력과 시설을 유지해서는 안되는 지역'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북 사이에는 정전협정에 따라서 동서로 약 250 킬로미터(km)의 군사분계선이 설치되어 있다. 이 군사분계선에서 남과 북으로 각 2 킬로미터 떨어진 선이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이며 북방한계선이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있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이다. 이 비무장지대는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0.5%에 해당한다. 실제로는 남방한계선은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북방한계선은 남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비무장지대의 폭은 4 킬로미터가 되지 못하고 면적도 더 줄었다. 비무장지대의 전 지역에서 남북의 직선거리 4 킬로미터가 유지되는 곳은 거의 없고 가장 가까운 곳은 700~800 미터에 불과하다.
비무장지대는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의 현주소이자 남북이 최신예 무기를 동원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백만 개가 넘는 대인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름에 홍수가 나면 대인지뢰가 떠내려와서 민간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경우를 해마다 보아왔다. 비무장지대의 대인지뢰는 비무장지대가 결코 평화지대가 아님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DMZ는 전쟁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지역?
신동엽 시인은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 밤은'이라는 시에서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이라고 비무장지대를 노래했다. 그러나 현실의 비무장지대는 이미 '평화로운 논밭'이 아니다. 기관총, 박격포, 대인지뢰 등으로 중무장한 지역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완충지역에서조차 중무장한 채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면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무장지대는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존재'이면서도 '전쟁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지역'이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서는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역량을 철거할 것을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폭발물, 지뢰 등도 제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에는 비무장지대의 실질적인 비무장화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에 대해서는 한국이 북한보다 보다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은 사실 북한에는 매력적인 일이 아닐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통한 남북 교류와 협력의 증대보다는 비무장지대라는 긴장지역의 존재가 위기관리에는 보다 효율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 제12조에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를 협의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남과 북은 이때 합의 이후에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합의를 진척시키지 못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남북의 정치 군사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비무장지대는 적대 쌍방간에 우발적 혹은 의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군사적 충돌을 막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완충지대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말하기에 앞서서 비무장지대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당시보다도 오히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병력과 무기가 크게 증대하여 한반도의 비무장지대가 세계적인 군사력 밀집지역이 되어버린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개발해서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된다면 그 자체로서 매우 훌륭한 완충지대가 되는 것이다. 남측으로서는 북한의 기습공격 가능성을 막게 될 것이고 북측으로서도 남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덜게 된다. 즉 평화적 이용은 비무장지대의 설치 목적인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다.
남북의 손바닥이 마추쳐야
결과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세계평화공원은 설치 목적도 달성하고 또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데서 오는 여러 가지 기대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북의 정부 당국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이 지니는 군사 전략적 가치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결국 DMZ 세계평화공원은 남북의 손바닥이 마추쳐야 가능한 것이다. 또한 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한반도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동아시아의 평화정착 과정 속에서 추진할 과제이다. 한반도에서 남북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동아시아인들의 공동의 인식이 갖춰져야 세계평화공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반도와 같은 군사력 밀집지대에서 분쟁의 가능성이 약화되고 평화가 정착된다면 그 자체로써 동북아시아 평화를 이룩하는 길이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는 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할 수 있다.
DMZ세계평화공원을 위해서는 남북대화를 평화번영의 관계로 복원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아울러 한국정부가 북미대화를 지원해서 6자회담과 4자회담의 촉매제를 만들어내고,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며, 4자회담을 통해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과 전망이 분명하다면 'DMZ세계평화공원'을 일종의 파일럿 프로젝트 형식으로 우선해서 추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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