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나라 대통령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놨다. 신규 일자리 가운데 10%를 '시간제 일자리'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이렇게 하면, 90개의 전일제 일자리와 20개의 시간제 일자리가 시장에 생긴다. 비취업자 110명이 이를 나눠 갖게 되면, 고용률은 '손 안 대고 코 푼 격'으로 61.1%가 된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정책의 민낯이다. 일자리를 새로 만들지 않고도, '쪼개기'만으로 고용률 지표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정책이란 것이다. 정부는 이미 공무원과 교원 신규 인원의 3~9%, 공공기관 신규 인원의 3~10%를 2배수로 키워 시간제로 뽑으란 지침을 각 기관에 하달한 상태다.
저성장 시대에 본격 진입한 한국의 고용률 지표가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고용률을 억지 부양해선 곤란하다. 일자리는 개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정부 스스로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 포기를 천명한 꼴'이라는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 '시간제 일자리' 논란을 4회로 나누어 짚어본다. <편집자>
시간제 일자리 논란 ① '투잡' 뛰어 한 달 150만 원, 이래도 양질의 시간제? ② 정부의, 정부에 의한, 정부를 위한 정책, 시간선택제 ③ "시간제 교사 늘어난 학교에 내 아이 안 보내고 싶다" ④ 대기업 "시간제요? 언론에 솔직히 말하기 어려워요" |
"너무 탁상공론이에요.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병원과 학교 등 공공 부문에 '시간제 일자리'를 신규 채용 형식으로 도입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알려지면서 현장 간호사와 교사들 사이에서 여기저기 탄식이 나왔다. '시간제 교사' 도입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발도 컸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지난달 13일 교육부가 하루 4시간만 수업하는 시간제 교사를 학교에 신규 채용해 배치하겠다고 발표하자마자, 학부모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2014년 600명, 2015년 800명, 2016년 1000명, 2017년 1200명 등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 총 3600명의 시간제 교원을 국·공립 초·중·고등학교에 배치할 계획이다.
"시간제 선생님 늘어난 학교에 아이 안 보내고 싶어"
특히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우려 섞인 전화가 많았다. 박범이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시간제 교사가 담임이나 행정 업무는 안 하고 딱 수업만 하니까 아이들과 유대감이 없으리라는 게 가장 큰 우려였다"며 "학급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일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김수정(36) 씨는 "공립학교부터 시간제 선생님들이 많이 자리를 잡는다면, 나중에 중·고등학교에 보낼 때도 공립을 못 믿어서 사립학교를 보내는 꼴이 될 것 같다"며 "시간제 교사를 뽑지 말고 다 정교사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요즘은 고학년만 돼도 덩치가 큰데 아이들도 예민하게 반응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부모는 "학교가 돌아가는 일을 알고 아이들과 같이 생활해야 교사지, 학교가 학원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일기는 마찬가지다. 한 교사는 "기존 기간제 교사와 과목이 겹치기도 할 텐데 수업 배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부터가 걸린다"며 "시간제 교사에게 수업 시간을 주기 위해 기간제 교사의 수업 시간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학교에서 '정규직 교사-시간제 교사-기간제 교사' 사이에 위계질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 '어륀지' 광풍의 희생양들…"국가가 사기 쳤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24일 전국 유치원·초·중·고 교원 4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인 결과, 82.7%(3437명)가 제도 도입에 반대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사로서의 학생 생활 지도, 진로 상담 등 책무성 담보 곤란'(51%)이 차지했다. 그 뒤를 '담임 업무 및 각종 행정 업무 등 타 교원의 부담 증가'(23.3%), '교원 신분에 따른 위화감 조성'(16.1%), '학교 교육 과정 편성 및 각종 행사 등에서 타 교원과 협업 곤란'(9.6%) 등이 이었다.
▲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도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한다. 교육계와 노동계는 시간제 교사 채용 규모가 강제 할당되면 '정교사-시간제 교사-기간제 교사'로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중증환자 많은 대형 병원에 시간제 간호사 늘면 업무 마비"
대형 병원에서도 시간제 일자리 증가는 달갑지 않다. 현직 간호사인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은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들이 많은 대형 병원 특성상, 시간제 일자리가 늘면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기가 어렵고, 시간제 인력이 (대가 없는) 초과 노동을 하거나 남은 인력들이 업무 인수인계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형 병원과 중소 병원에 월 80시간 일하는 시간제 간호사를 신규 채용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8시간씩 3교대로 돌아가는 대형 병원 특성상,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면 환자로서는 하루 3번 바뀌던 간호사가 최대 하루 6번 바뀐다. 현정희 분회장은 "그렇게 되면 사실상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에 대형 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설마 가능하겠느냐, 불가능할 것'이라고 무시되는 분위기이긴 하다"고 전했다.
시간제 일자리 확산은 대선 후보 시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내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과도 배치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정희 분회장은 "정규직 간호사 소정 근무 시간은 월 184시간인데, 서울대병원에는 이미 월 150시간, 170시간씩 전일 근무에 준하게 일하는 비정규직 시간제 인력이 300명이 넘는다"며 "계약 기간이 1개월, 3개월, 6개월 등인데, 스스로 원해서 시간제로 들어온 경우는 없고 비정규직 자리로 채용하니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경우"라고 말했다.
현 분회장은 "비정규직은 임금과 복리 후생 측면에서 정규직보다 차별받기에 노조에서도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의료 인력을 계층화하고 만성적으로 차별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초과 노동이 관행인 병원에서 업무를 원활하게 가동하고 간호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부족한 정규직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시간제 일자리는 '자발적 정규직'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핵심 과제"라며 단시간에 고용률 70%를 달성한 네덜란드와 독일을 모범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시간제 일자리는 70~80%가 '자발적인 노동 시간 단축형 정규직'이다. 시간제로 일할지 전일제로 일할지 선택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게다가 네덜란드에서 전일제와 시간제의 임금 격차는 민간 부문이 7%이고, 공공 부문은 거의 없다. 2011년 기준 네덜란드의 최저 임금은 11.38달러로 한국(3.9달러)의 3배 가까이 된다. 반면 민주노총이 안전행정부의 '시간제 일반직 공무원 제도'를 토대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 한국의 시간제 공무원의 기본급은 월 70만~90만 원으로 분석됐다.
70만~90만 원의 임금으로는 생계비를 마련하는 데 부족하므로 '투잡', '쓰리잡'을 허용하려고 해도, 이번에는 '공무원 겸직 허용 범위'가 걸린다. 윤선문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실장은 "전일제 공무원은 연금이나 노후 보장 때문에 '영리 행위'나 '민간과 결탁한 비리' 등 외부 유혹을 쉽게 물리치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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