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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만 자유, 독립? 연구자들도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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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언론만 자유, 독립? 연구자들도 절실합니다!"

[인터뷰]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유종일 교수

해방된 지 7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툭 하면 '자유'와 '독립'을 외쳐대는 집단이 있다. 언론이다. 정권으로부터의 자유,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사주(社主)로부터의 독립까지. 그런데 알고 보니 자유와 독립이 절실한 집단이 또 있었다. 연구자 집단이다. 정책 연구자 113명이 모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지식' 협동조합이라 한다. 이름은 '좋은나라'다.

'좋은나라'는 18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총회 직전 유종일 교수(KDI국제정책대학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조합 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 유종일 교수. ⓒ프레시안(김하영)

가장 먼저 연구기관의 신뢰도에 관한 주제를 꺼냈다. 최근 한 언론에서 텅텅 빈 경인운하에 대해 경제성이 양호하다고 전망했던 모 연구원에게 물었더니 "전망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구차한 변명이죠. 원래 비용-편익 분석 자체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경인운하 경제성 연구도 처음에는 비용이 편익보다 크게 나왔음에도 정부의 팔 비틀기 때문에 수정한 것 아닙니까. 어디 경인운하 뿐이겠습니까. 한미FTA, 4대강 사업 등 권력의 팔 비틀기 사례들 많죠. 4대강은 환경 파괴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국정원에서 '반대하는 세력은 강 바닥에 쳐 박아야 한다'고나 하고 있고.(한숨) 기업에서 컨설팅을 할 때 대개의 경우 사장이 원하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 결과가 나옵니다. 정부 연구 용역도 마찬가지죠. 정치 논리에 따라 사업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연구가 활용되고 있어요. 정책 연구의 영역에서 힘의 논리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들이 더 많이 공유돼야 합니다. 공유의 힘으로 잘못된 정책들이 제어되고 합리적인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사회 발전의 중요한 축이죠."

사실 이런 저런 '싱크탱크'(연구기관)는 많다. 기본적으로 전국에 수백 개의 대학이 있다. 정부 각 부처마다 산하 연구기관이 있고, 국회에도 연구기관이 있어 공공 정책 연구를 수행한다. 기업들이 운영하는 연구기관도 수가 상당할 뿐 아니라, 재야 학자들이나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연구기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싱크탱크가 하나도 없다. '세계 몇 등' 식으로 줄을 세워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으나 우리 사회가 가진 연구 역량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돈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세계 톱 레벨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이나 스위스 등 더 작은 나라들보다도 연구 성과는 낮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학도 굉장히 많고 인구에 비해 박사 숫자도 굉장히 많은 나라입니다. 양적으로만 보면 연구 역량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획기적인 기술이나 이론, 정책 연구를 내놓는 사례는 거의 없어요."

유 교수는 두 가지 원인을 들었다. 하나는 잘못된 교육 시스템, 다른 하나는 연구기관에 대한 그릇된 평가 방식과 운영이다.

"우리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서열화 주입식 교육 시스템이 문제죠. 특히 서열화. 주어진 범위 내에서 문제를 내고 시험을 봐 등수를 정하는 데에만 집중하니, 학생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갖고 뻗어 나아가질 못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거버넌스와 인센티브입니다. 보통 평가 방식이 연구의 질은 따지지 않고 특허 몇 개에 몇 점, 논문 몇 개에 몇 점, 이런 식입니다. 양으로만 평가를 하니까 무조건 특허 내고, 억지로 논문 쓰고 보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특허의 양이 굉장히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수익이 나는 특허가 있나요? 특허로 받는 로열티보다 유지비가 더 나간다고 해요. 어디 주목 받는 논문 있습니까? 연구원 독립성도 없습니다. 이런 저런 압박에 시달리고, 기업에서는 당장 돈 되는 연구만 시키고."

유 교수는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협동조합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하려 했던 건 아닙니다. 좋은 정책 연구기관을 만들자고 모여서 논의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일반적인 사단법인을 고민했죠. 기부금을 좀 받아서 할까 했는데 안이한 생각이었습니다. 여기 저기 손을 벌리고 다녀서는 규모가 커질 수 없고, 그렇다고 큰 돈을 기부 받자니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그래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좋은 가치를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으면 경제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겠다 싶어서 독립적인 연구기관을 만들기로 했죠. 그 다음 고민은 주식회사냐 협동조합이냐였어요. 주식 시장에 우리를 내놔 비즈니스 플랜을 제시하고 투자 설명회를 해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죠. 돕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많이 투자한 사람의 입김이 강해지잖아요.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관과 지향점, 지식이라는 것의 공공재적 성격을 봤을 때 '1인 1표'의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경제학자' 유종일 교수는 '좋은나라'를 준비하면서 협동조합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가 보는 한국 사회에서의 협동조합 역할은 뭘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협동조합이 잘 버티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고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하고 우리나라도 입법을 하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죠.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해지고 저성장 모드에 들어가면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대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까지 보기는 어렵겠지만 충분히 경쟁력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조합을 만들어 현대자동차처럼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춰 거대 기업들과 경쟁할 수는 없겠지만 농업 같은 분야는 협동조합이 훨씬 경쟁력 있는 모델입니다. 미국의 썬키스트 등 세계적인 농업 회사들은 대부분 협동조합이잖아요. 화훼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는 꽃 시장의 경매회사까지 협동조합입니다. 사회적 경제의 핵심이 협동조합이라고 봅니다. 자영업 붐이 일었을 때처럼 요즘 막 생겨나는 협동조합 중에도 망하는 곳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다만 조합원들의 신뢰와 토론을 기초로 한 협동을 잘 해나간다면 자본주의 거대 기업들이 생산하지 못 하는 사회적 가치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유 교수는 협동조합의 장점으로 조합원들의 헌신성과 상상력의 확장을 꼽았다.

"우리가 독립성을 갖고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중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조합원들의 헌신성을 토대로 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죠. 우리가 스스로 돈 내서 하는 거잖아요. 어느 정도 기부를 받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위한 연구 용역과 교육 사업 등 수익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협동조합을 하기로 하니까 거꾸로 '이런 것도 해볼 수 있겠다', '저런 건 어떨까' 등 협동조합에서 시작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흔히 봐 오던 연구기관의 수익 사업을 뛰어 넘는 참신한 사업들을 발굴해서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조합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하려고 합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독립적인 연구 활동이 목표다. 유 교수는 "그래도 쟤들이 저런 얘기를 하니까 들어봐야겠다"는 싱크탱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 18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좋은나라 창립총회. ⓒ프레시안(김하영)

참여 조합원들도 경제, 과학기술, 교육, 국토환경, 노동, 문화, 법제사법, 보건복지, 분권균형발전, 여성, 역사, 외교통일, 정치행정 등 사회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학계의 관심도 뜨겁다고 한다.

"처음에는 6월 창립 조합원 50명으로 출발하고 연말에 100명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였죠. 그런데 창립 조합원만 113명이 됐습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참여하겠다는 문의가 많아요. 지금은 이른바 정책 전문가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는데 지식의 연구와 생산이 전문가들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문호를 넓힐 생각입니다."

'좋은나라'에 대한 관심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목마름이기도 하다. 이들의 타는 목을 협동조합이 적셔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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