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돈 벌 욕심이었으면, 이렇게 안 했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돈 벌 욕심이었으면, 이렇게 안 했죠"

[현장] 자활과 기업이 뭉친 최초 협동조합 '숲소리'

지난 4~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에서는 서울 시내 '희망기업'들이 총출동한 '희망서울 구매 엑스포'가 열렸다. '희망기업'이란 장애인 기업,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친환경기업, 여성기업 등 공공기관의 우선구매 등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기업을 말한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 있었다. 제1, 2 전시관 사이 로비에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마치 이번 엑스포 대표 기업인 듯 물품을 전시 중인 '협동조합 숲소리.' 갖가지 색깔의 친환경 원목 장난감과 자동차 모양으로 만든 어린이용 원목 침대, 원목 옷걸이로도 쓸 수 있는 어린이용 텐트, 주방 가구를 축소 시켜 놓은 원목 가구, 유아용 원목 책걸상 등 숲소리의 제품들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 지난 4일 '희망서울 구매 엑스포'에서 전시 중인 숲소리 제품들. ⓒ프레시안(김하영)

쉼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협동조합 숲소리 대표 김승목 씨. 50대 중반인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지난 5년은 깨달음의 세월이었다.

김 대표는 5년 전 제법 큰 돈을 만지는 사업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믿었던 회사 후배가 배신을 했다. 회삿돈을 갖고 사라진 것. 그는 총을 두 자루 구했다. 후배를 찾아 헤맸다. 죽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찾아 내기도 전에 그 후배는 죽었다.

"그 후배는 그 돈을 갖고 가서 쓰지도 못하고 죽었죠. 차라리 돈이나 다 써버리지. 세상 자체가 증오스러웠어요. 그 이후로 집 밖에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죠."

김 씨는 세상과 등을 졌다. 빚만 남았고 아내의 수입으로 살았다. 1년 쯤 지났을 때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하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아내가 너무 힘들게 일해 조금이라도 보태고자 일을 하려고 했는데 그 마저도 나까지 순서가 안 왔어요. 그런데 동사무소 직원이 자활 교육 한 번 받아보겠냐고 하더라고요."

김 씨는 서울강서방화지역자활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김 씨는 비로소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자활센터 목공사업단에서 목공 기술을 배웠다. 집 고치기도 다니고 가구 제작도 배웠다. 가구를 만들며 다시 행복해졌다고 한다.

"오늘은 뭐를 만들까. 이건 이렇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스스로 구상하고 디자인해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재밌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게다가 많지는 않지만 수입도 생기니 사는 맛이 나기 시작했죠."

그렇게 3년 9개월을 자활센터 목공사업단에서 기술을 익히고 일을 하던 김 씨는 목공사업단에서 함께 기술을 배우던 동료 2명과 함께 독립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 숲소리'. 방화자활센터 김원중 실장과 '주식회사 숲소리'가 참여했다. 지난 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동의 공장 개소식을 열었고, 4일 '희망서울 구매 엑스포'에서 정식 개소식도 열었다.
▲ 숲소리 제품들. ⓒ프레시안(김하영)

자활과 민간 기업의 협동

'협동조합 숲소리'가 생기기까지 '주식회사 숲소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숲소리'는 친환경 원목 장난감으로 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브랜드다. 숲소리는 제품 판매액의 일부를 복지단체에 기부하는 소셜쇼핑 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그렇게 숲소리는 기업의 공익적 활동을 넓혀가던 중 2010년께 방화자활 목공사업단과 인연을 맺어 원목가구 제작을 의뢰했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법이 발효되면서 부터는 자활에 제작 의뢰를 하는 방식이 아닌 협동조합을 통한 본격적인 제품 생산 협동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숲소리는 유아용 원목 가구와 어린이집 원목 교구로 품목을 늘리고 있던 터라 제품 제작 수요가 늘고 있었다.

민간기업의 협동조합 참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호성 서울광역자활센터장은 "숲소리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 지사를 둘 정도로 제품이 뛰어나고 기술력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기업"이라며 "자활에서는 기술과 노하우가 없어 감히 할 수가 없는 일인데, 숲소리에서 기술을 가르치고 일감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는 협동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자활 출신의 창업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업지원금 2000만 원으로 개인이 창업을 할 경우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해 시장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창업을 할 경우 일단 자본금 규모를 늘릴 수 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특히 (주)숲소리와 같은 민간기업의 참여는 사업 초기 기술과 유통망,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도와줄 수 있다.

그렇다고 (주)숲소리와 협동조합 숲소리가 원청과 하청의 관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주)숲소리는 협동조합의 법인 조합원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해당하는 회사 이름도 공유할 정도로 협동조합의 한 주체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 협동조합 숲소리 공장. 여기서 얼마나 많은 '꿈'들이 새로 생겨날까. ⓒ프레시안(김하영)

(주)숲소리 송재근 대표는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며 직원 조합원을 계속 늘려가겠다고 했다. 역시 조합원으로 협동조합 설립에 산파 역할을 한 방화자활 김원중 실장은 "직원 조합원의 50%는 어려운 계층이 참여하도록 해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가고자 한다"며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우리가 먼 길을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하는 게 좋다"는 협동조합 숲소리 김승목 대표는 "돈을 벌 욕심이 있었다면 협동조합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이 쉰이 넘어서 꿈이 생기는 벅찬 기쁨을 누렸다. 다른 이들과 이런 경험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