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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선 정치, 고장난 세상에 고함"

[2012 생명평화대행진·⑧] "우리 모두가 하늘이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국가들은 부패한 독재체제가 된 인민권력에 대한 인민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그 때 촛불을 든 군중이 외친 구호는 "우리가 그 인민이다(We are the People)"였다.

2011년 가을, 세계경제 위기의 한가운데서 금융자본주의의 상징인 월가에 모인 일단의 군중들은 20년 전에 내걸렸던 것과 똑같은 구호를 내걸었다. "우리가 99% 민중이다(We are the 99% People)!" 이보다 앞서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G20의 정부수반들이 모였을 때, 회의장 밖에 모인 군중들은 또 이렇게 외쳤다. "사람이 우선이다(Put people First!)"

한 세기 전 동학농민들이 사발통문을 돌려 부패하고 무능한 왕조와 외세에 대항했을 때, 그 때도 같은 구호가 외쳐졌다. "인내천(人乃天)!, 백성이 하늘이고 만물이 다 하늘이다!"

정치가 거꾸로 섰을 때, 인민민주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정치가 '민'의 이름을 팔아 특권을 파괴를 전쟁을 옹호할 때, 민초들은 예외 없이 "우리가 하늘이다, 우리가 바로 그 인민이다, 우리가 99% 민중이다"라고 외쳤고 결국 역사를 전진시켰다.

▲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25일 울산 현대차공장 인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을 찾아, 이들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선거참모들, 아직 민초가 사는 땅으로 내려오지 않아

대선 후보들마다 경제민주화를 얘기하고 복지국가를 역설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공약을 발표한다. 말이라도 그럴듯하니 과거보다는 나아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 우선하는 정치', '진심의 정치', '함께 사는 정치'는 아직 현장에서 너무 멀다. 그들이 대표하는 정당들과 선거참모들은 아직 대다수 민초들이 사는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지금 빈손으로 전국을 돌며 "함께 살자! 모두가 하늘이다!"를 외치고 또 외치는 이들이 있다. 쫓겨나고 내몰린 사람들, 파괴되고 죽어가는 방방곡곡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다. 정치가 대변하지 못하는 목소리들을 듣고 또 듣고, 서로의 고통과 상처를 함께 나누고 함께 위로하고 함께 치유하며 걷고 또 걷는 이들이 있다. 10월 5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출발하여 전국을 돌아 지금 수도권을 행진하고 있는 2012생명평화대행진단이 그들이다.

대행진은 고통받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시작된 민초들의 자구적이고 자결적인 연대행동이다. 이 행진은 정치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 대의제에 대한 고발, 주류정당과 영향력 있는 후보들의 말뿐인 성찬에 대한 경고, 그리고 낡은 정파적 갈등과 내부의 도덕적 흠결로 인해 사분오열된 진보정당에 대한 질책이다.

대행진은 걸어 다니는 인권선언이다. 대행진은 우리 정치와 사회운동사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은 노동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풀뿌리 주민운동의 대안적 연대행동이다. 이들 모두는 '우리는 그저 삶의 터전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 없이 국가안보, 경제성장,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내건 국가폭력과 자본의 폭력에 직면해야 했다. 이들을 연대하게 한 공통분모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국가안보나 경제발전 같은 물신화된 가치를 내세워 정작 국민의 대다수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을 박탈해온 낡고 오래된 체제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자각이다.

지리산과 평택에서의 2차례의 민회를 거치면서 행진단에 참여한 이들의 연대는 더욱 풍부하고 깊어졌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행진단은 10월 19일 저녁과 20일 오전 양일간 '이심전심 통통통!'이라는 주제로 1박2일의 내부토론회를 열었다. 이 내부토론은 20일 민회를 준비하기 위한 예비토론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행진단은 특히 '저들의 가치 우리의 가치'라는 주제로 ∆비정규직과 일자리 문제, ∆해군기지와 국가안보문제, ∆대형마트와 소비자 편익 문제, ∆핵발전소와 에너지 문제, ∆농업과 개발문제 등 총 5가지 의제를 두고 주류언론의 주장에 대해 행진단 내부의 입장을 정리하는 분임토의를 가졌다. 서로 다른 현장을 가진 이들이 헤쳐모인 각 분임조에서 행진단은 자신들이 미처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현장들의 사회구조적 쟁점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했다.

이 토론은 안보 성장 개발 논리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과 특권의 논리를 우리 스스로의 언어로 비판하는 기회였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들의 한계를 성찰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날 진행을 맡은 인권활동가 류은숙 씨가 적절히 요약한 것처럼, "노동자가 노동자로써 자본과 싸울 때는 강력한 반면, 소비자로 돌아오면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을 토론과정에서 새삼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 행진단은 우리의 고통과 무관해 보이는 무한 소비의 달콤함을 경계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노동, 환경, 평화, 지역에서의 조화로운 삶 등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해결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 2008년 당시 기륭 공장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소연 분회장. ⓒ프레시안(여정민)

꿈꾸는 자가 잡혀가는 세상

예비토론을 마친 기륭노조 유흥희 씨는 내게, 요즘 들어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해고에 맞서 1800여 일 동안 투쟁하며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가 '세치 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깨달은 것은 아닐 터이다. 그는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무엇이 과연 우선되어야 할 가치인지, 민초들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 자각하고 공공연히 밝힘으로써 정치의 언어를, 사회적 의제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 것이다.

예비토론 후 이어진 민회 본집회에서는 전국에서 찾아온 300여명의 시민들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믿는 상식'에 대해 140자 선언문을 작성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고장난 세상에 대한 현장으로부터의 고발, 이를 바로세울 새로운 우선순위에 대한 제안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살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해야만 하는 세상, 이러한 죽음마저도 외면되는 세상은 고장난 세상"
"절망으로 죽음을 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내 의견을 묻지 않고 누군가가 '국익'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는 세상"
"적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 없는 사회"
"절차를 지키면 51%의 결정에 따라야 하나?"
"개개인의 꿈이 괜한 걱정이나 불안, 위협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세상"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세상"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다"
"성장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세상"
"자신이 가난하고 약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
"사람이 쪽수나 돈이 아니라 사람 그대로 사람인 세상"
"배려와 관심, 돌봄을 중히 여기며, 대화와 타협, 비폭력과 평화를 높은 가치로 여기는 세상"
"작은 것, 낮은 것, 약한 것, 다른 것, 어린 것, 적은 것에 눈높이를 맞추는 세상"
"비정규직 정리해고자 눈물과 한숨 없는 세상"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농민이 기타 국민으로 취급받지 않는 세상, 학벌이 없는 세상"
"돈 따위가 이 아름다운 나무와 뭇 생명들과 굳은살 박힌 농부의 손을 이길 수 없는 곳"
"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세상"
"청소년 자살률 1위의 나라가 아니라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부동산 값을 내리고 사람 값을 올리자!"
"낮은 이들의 생활과 삶이 나눠지는 골목이 다시 살아나는 세상"
"기본 소득을 누리고 기본 주거, 기본 텃밭을 가질 수 있는 세상"
"군대가 없는 세상, 모든 이가 대중교통 이용하는 세상"
"비무장, 평화, 중립국가"
"무기 경쟁과 패권적 강압과 적대적 대결에 맞서 화해하고 협력하며 참여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꿈꾸는 자가 잡혀가지 않는 세상"
"조금만 내 가족을 덜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상"
"조금 불편한 것, 좀 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 다 후손들을 위해 감수하자."
"약하고 힘없는 이들이 연대하는 세상이여 오라!"
"노사갈등이 일어나면 단호히 노동 쪽에 서는 대통령...그런 대통령이 선거에서 뽑히는 세상"
"내 의견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고 경청되고 토론되며 무시되지 않는 세상."
"민주주의 찾게 하소서. 꼭 우리들에게 힘을 주소서"
"느리더라도 함께 갑시다. 생명평화대행진 화이팅! Go Go!
"11월 3일은 세상 뒤집기."
"평택, 쌍용을 거쳐 서울광장을 접수합시다. 평택 서울에서 만납시다!"

민회를 통해 행진단과 참석자들은 우리가 말하고 글로 쓴 제안들을 모아서 11월 3일 서울에서 선언문의 형태로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더불어 11월 3일 서울 집회 후에도 서울에 고통받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쌍용, 용산, 강정의 외침은 물론, 밀양, 고리와 삼척, 강원도 골프장 건설현장, 그리고 전국 도처에서 쫓겨나고 내몰리고 있는 정리해고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중소상인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증폭시킬 거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간절히 원하는 정치적 대변자

대행진단은 10월 28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열린 2차 민회에서 행진 이후의 행동계획을 더 분명히 가다듬었다. 수도권 진입을 앞두고 열린 이날 민회를 위해 행진단은 특별히 전국단위로 투쟁하고 있는 각 사안별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연대기구들을 초청했다.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000만 선언 운동을 주도해온 민주노총 비정규투쟁본부, 중소상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청년실업의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는 경제민주화2030연대, 공교육개혁과 비정규직 교사/교수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대규모 집회를 준비 중인 전국교직원노조, 한미FTA 폐기와 한중FTA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한국진보연대, 그리고 비정규직을 위한 투표시간 연장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투표권보장공동행동 등과 더불어 행진단이 서울에 도착한 후 만들어질 거점에서 함께 협력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민회에 참석한 노동/시민사회 단체 대표자들과 의제별연대기구들은 대선까지 계획하고 있는 각 자의 활동계획들을 소개했다. 동병상련이라던가? 모두가 간절히 연대를 구하고 있었고 정치적 대변자를 찾고 있었다.

평택민회를 통해 행진단과 참석자들은 서울 도착 이후의 행동원칙과 행동계획의 초안을 성안했다. 행동원칙은 ①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흩어지지 않고 완강하게 싸운다, ②우리는 투쟁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더욱 광범하게 모아내어 우리의 힘을 강화한다, ③우리는 현장의 고통을 외면하는 거꾸로 선 정치를 바로 세운다, ④우리는 다양한 주장과 의견의 차이를 존중한다, ⑤우리는 국가폭력, 자본의 폭력에 피해를 당하는 시민, 민중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한다 등 5개 원칙이 제시되었다. 행동계획은 ①우리는 서울에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거점투쟁을 전개한다, ②우리는 대선 주자들에게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고, 그들의 답변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할 권리가 있다, ③우리는 대선 이후에도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단결과 연대를 위해 확장하기 위해 우리의 네트워크를 확장해간다, ④우리는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진행해온 두 차례의 민회를 행진 이후에도 이어 간다 등 4개항이다. 11월 3일까지 보다 가다듬어질 이 행동제안을 한마디로 집약하면 이렇다.

서울을 점령하자! 대선의 우선순위를 바꾸자!

행진단 일행은 11월 2일 저녁 서울 여의도 공원에 도착한다. 11월 3일 오전 10시 여의도를 출발한 행진단은 12시 용산 남일당 터에서 용산참사 진상규명 집회를 가지고 2시 국방부 정문 앞에서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촉구 집회를 연다. 이어 4시에는 서울역에서 열리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전원복직을 위한 3000인 동조단식 행사에 참여한 후 6시 이 행진의 목적지인 서울시청 광장에서 전국 집중 집회 '함께 살자, 모두가 하늘이다'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날엔 전국 방방곡곡에서 행진단과 만났던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이 간절한 바람을 모아 '바람버스'를 타고 구름처럼 서울에 모일 것이다.

행진단이 서울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걸으면서 외치고 있다. "함께 걷자! 걷어내자! 바람을 모으자! 서울을 점령하자!"
서울에 모여 그들은 선언할 것이다. "함께 살자 모두가 하늘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그들은 고장난 세상과 거꾸로 선 정치를 향해 쉼 없이 계속해서 외칠 것이다. 함께 살자! 함께 걷어내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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