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의 빡빡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실험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오히려 '긴 하루'를 보냈던 아베 총리가 9일 밤 노무현 대통령 주재 만찬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전날까지만 해도 과거사 문제에 있어선 큰 이견이 없고 북핵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톤 다운'을 이야기 하고 아베 총리는 기존의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경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북핵 실험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노 대통령 스스로가 한일정상회담 직후 "포용정책을 더 주장하기도 힘들다"며 "지금까지는 미국과 일본이 상대적으로 제재를 강조하고 중국과 우리가 대화를 강조했지만 이제 입지가 줄어들었다"고 밝혔을 만큼 우리 정부가 일본 측에 '유화적 방안'을 고집할 명분도 줄었다는 것.
정부 당국자 "역사문제, 중일 간 합의 수준에 동의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날 회견에서는 대북문제에 대해선 한일 간에 별다른 이견이 없는 대신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만 일부 이견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많은 부분 의견 일치를 봤다"며 "아베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감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양국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괄적 언급을 했다"고 전했지만 양국의 앙금이 말끔히 해결되지는 못했다는 것.
노 대통령도 "문제 해결보다 실마리를 푸는 정상회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정부 핵심 당국자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핵심 당국자는 "중일 사이의 역사인식이나 상황 차이와 한일 간의 그것이 같을 순 없다"면서 "중일 간에 합의한 수준의 공동발표문에 합의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대통령도 우리 국민의 (역사)인식과 일본이 말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씀했고 일본 쪽에서 과거 역사를 좀 더 겸허한 자세로 직시해 한일 관계에 장애가 되는 난관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심이 집중된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정치적 결단을 한꺼번에 요구할 순 없었다"고 말했고 이 당국자는 "아베 총리 본인이 특정한 정치적 생각을 옹호하기 위해 (과거에 야스쿠니 신사에) 갔던 것은 아니라며 하지만 외교적, 정치적 문제가 되기 때문에 신중히 감안해서 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 했다"고 전했다.
친연성 강조한 아베 "집 사람이 한류 팬이다"
한편 이날 아베 총리는 현충원 참배, 한명숙 총리 주재 오찬 등 예정된 일정을 변함없이 소화했다. 오후 3시 경 청와대 본관에 도착한 아베 총리는 현관 입구에 내려온 노 대통령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다.
노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맞으며 "총리 취임을 축하한다"며 "저와 한국 국민은 한일 관계가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덕담했다.
약 30여 분 간의 단독 정상회담에 이은 확대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아까 (UN사무총장 취임이 확실시 되는 반기문 외교장관을) 소개하셨는데 일본을 잘 부탁드린다. 앞으로 UN개혁에 지도력을 발휘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확대 정상회담에 일본 측에서는 시모무라 관방 부장관, 안도 관방부장관보, 이노우에 총리비서관, 사사에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 아베 총리의 측근과 실무진들이 배석했다.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에다가 북핵 실험까지 겹쳐 어수선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공식 만찬은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총리대신 취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며 "우리 두 나라는 서로 친구가 되지 않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과 청산, 주권의 상호존중, 그리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토대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친연성을 강조했다. 그는 "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돼서 왠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든다"며 "예의 바르고 부지런하고 게다가 문화적 매력이 풍부한 한국민 여러분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무언가를 느껴 온화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저의 집 사람은 우리나라(일본)에서도 한류 팬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부터 이전보다 더 굉장한 한국 팬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 가까운 시기에 방일 하기로 결정
이날 회담에서 그간 중단됐던 한일 정상의 정례적 셔틀외교 부활 여부는 논의되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초청에 응했다.
노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일본을 방문하기로 했다"며 "긴 시간을 가지고 자주 만나서 격의 없는 대화를 하고, 또 손님으로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님으로 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고 명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일본 국민들에게도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에 우리 쪽에서도 (방일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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