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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국민적 합의…헌법정신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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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국민적 합의…헌법정신으로 돌아가자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10> 양극화 해소 없이 경제민주화 없다

1987년 6월 민주화의 열망이 아스팔트 위로 분출했고 그 열기가 군벌지배 체제의 종막을 내렸다. 그 6월항쟁은 신군부의 폭정을 분쇄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국민들은 구체제의 잔재와 폐습을 혁파하고 희망에 찬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5년을 주기로 열병 같은 홍역을 치른 끝에 새 대통령이 태어나나 국민에게 희망보다는 절망과 실망을 안겨 주곤 한다.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5년이란 세월을 허송하고 만다.

정당사를 되돌아보면 모든 정당이 선거용 포말정당이나 다름없다. 5년마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이합집산이나 신장개업을 되풀이하며 당명을 바꾼다. 정권실패에 대해서는 반성을 모르고 잃어버린 국민적 신뢰를 되찾겠다고 새롭게 치장하는 꼴이다. 선거 때마다 보수니 진보니 하며 떠드나 정책방향은 없고 공허한 이념공방만 남는다. 어디에도 투철한 국가관과 국정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을 잡더라도 집권세력의 정책기능이 취약한 탓에 이 나라에서 가장 보수적 세력인 관료집단에 의존한다. 그 까닭에 역대 정권의 사회-경제정책의 골격은 신자유주의에 근거하여 대차가 없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는 양극화이다. 역대정권이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에 근거한 신자유주의를 맹신한 결과 계층-부문 간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형성되었다. 사상 최대의 빈부격차, 가계부채 1000조 원, 비정규직 양산과 청년실업, 부동산 투기와 전세대란, 과중한 사교육비와 출산율 저하, 경쟁 위주의 교육의 시장화, 유통재벌의 골목시장 침탈, 거대자본의 자영업-중소기업 영역 침투, 부문-지역 간의 발전격차 등등 국가적 난제 한가운데는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계층-부문 간의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 간극을 좁히지 않고는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국민적 합의이며 경제발전 불균형에 따라 국민적 불만이 발화점에 달했다는 뜻이다. 역대정권이 노동의 가치는 말하지 않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니, '친기업'이니 떠들며 자본 위주의 편향적 경제-사회정책을 펴왔다. 정-재-관계가 한 몸이 되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앞장서온 것이다. 그 뒤에는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5단체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선거철에만 서민을 찾는다며 시장 바닥이나 누비고 다닌다.

정치권이 내놓는 경제담론을 보면 구체성-현실성이 결여된 채 재벌개혁에만 매몰되어 있다. 경제민주화를 자칫 잘못 논의하다가는 이념논쟁만 유발하여 본질은 증발하고 사상논쟁만 남을 공산이 크다. 구체적 각론과 실천의지를 담보하지 않은 재벌개혁은 정치구호로 변질되어 색깔론만 유발할 우려가 큰 것이다. 그곳에는 항상 반자본주의와 반시장주의라는 반격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성장론과 복지론 또한 비생산적인 이념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짙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민생복리이다. 그 지향점은 양극화 완화를 통한 사회통합이다. 논의의 초점을 민생복리에 맞추지 않는다면 경제민주화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만 남는다.

▲ 눈물 흘리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양산은 양극화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배제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민생복리에 초점 맞추지 않으면 공허한 수사로만 남을 수도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제 헌법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경제민주화에 관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대한 제약적 규정으로서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인사들이 아직도 야유조로 경제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따위의 망발을 일삼고 있다.

1987년 체제 이후 25년간 역대정권이 이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있었다. 어느 정권이나 하나같이 규제완화를 통한 효율성을 합창해왔다. '완화'라는 단어도 모자라 '철폐', '혁파'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며 외쳤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위한 규제,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 환경보존을 위한 규제 등등을 마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이라는 듯이 경쟁적으로 없애버렸다. 그 결과 계층-지역-부문 간의 발전격차가 극대화되었고 재벌로 경제력 집중이 더욱 심화되었다.

맹목적인 규제완화가 자본-지식-기술-정보에서 열위에 있는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강자가 약자의 이익을 뺏어가는 약탈적 사회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역대 정권이 외적 성장에만 몰두한 탓에 성장의 과실이 과점되어 양지는 더욱 밝아지고 음지는 더욱 어두워졌다. 하루 종일 먹고살려고 버둥대다 밤이 되면 지친 몸을 다시 이끌고 대리운전을 나가는 아버지들. 자식 과외비를 마련하느라 허드렛일도 마다않는 어머니들.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밤일, 잡일로 지쳐 수업시간에 졸음과 싸우는 대학생들.

퇴직금을 털고 빚을 내서 조그만 가게 하나 차렸지만 골목상권마저 초토화하는 유통재벌과 재벌 프랜차이즈 횡포 앞에 밤잠 못 이루는 자영업자들, 봉급을 아무리 모아도 내 집 마련의 꿈은 무지개마냥 멀어져만 가는 셋방살이 월급쟁이들. 전방위 FTA에 따른 농촌붕괴로 통곡하는 농민들. 정치권은 귀를 막았는지 성장의 그늘 아래서 들려오는 신음과 절규가 갈수록 커지나 들을 줄 모른다. 정치권이 사회의 공동번영을 최우선가치로 삼아야 구성원의 행복이 보장된다. 그 해답은 바로 민생복리이고 그것이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민주화란 시대정신에 걸맞은 대통령이 되려면 역대정권의 정책실패를 되돌아보는 지혜가 소중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남북긴장완화, 인권신장, 권위주의 타파, 민간영역의 자율성 확장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경제부문은 정책의 보수화로 다른 정권과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이념과잉에 따른 진영논리에 있다. 민주개혁세력의 기반이 취약한데다 이른바 보수세력이 가치중립적 사안에 대해서도 이념공세를 펴면서 조직적으로 저항해왔다. 그 과정에서 선거철이 다가오면 영남민심을 악의적으로 자극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 그것이 왜곡된 지역구도에서 다수파를 쉽게 포섭하는 방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국민들이 지역주의의 포로가 되는 바람에 정치발전과 정책대결이 실종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남은 것은 정치체제의 퇴영과 경제질서의 왜곡뿐이다. 다행히 근년에 들어서는 지역주의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특히 수도권 20-30대는 지역의식이 많이 희박해져 새로운 정치지형의 변화가 예고된다. 이제 국민들이 깨어나서 1990년 3당합당 이후에 고착화된 지역구도를 깨야 한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정치권이 지역주의를 토템(totem)처럼 숭배하는 미신을 타파하지 못하면 정치적-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다만 역대정권의 실패를 답습하는 길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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