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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에서 사망까지' 사교육, 허리 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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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출생에서 사망까지' 사교육, 허리 휘는 대한민국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4> 경제발전 가로막는 과중한 사교육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되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한다는 뜻으로 곧잘 인용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뜻으로 통용될 만하다. 갓난아이 때부터 음악듣기, 영어듣기를 쫓아다녀야 한다. 영어열풍이 갈수록 드세져 서너 살짜리 유아들에게도 우리말보다 먼저 영어를 가르친다고 야단이다.

초등학생들도 하굣길에 이 학원, 저 학원에 들러 해질 무렵에야 집에 온다. 영어, 피아노, 태권도는 기본이다. 국제중학교 또는 예능계 중학교에 진학하려 저학년부터 본격적인 과외공부를 한다. 예능계 중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고학년이 되면 학교에서도 아예 실기교습을 받으라고 장기간 결석과 조퇴를 눈감아 준다.

중학교에 가도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특목고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중학생들은 학교공부는 뒷전에 두고 학원에 매달린다. 과학고와 외국어고가 우수한 학생들을 먼저 선발하니 대학입시에서 합격률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특목고가 설립목적과 달리 대학입시전문학교로 전락하다보니 입학경쟁이 치열하다. 그 까닭에 중학교도 고등학교 못지않게 과외열풍이 뜨겁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그날부터 과외전쟁이다. 입시전문학원에 들러 단과반, 종합반에서 밤을 샌다. 방학 때는 아예 집을 떠나 합숙과외를 하기도 한다. 입시가 임박해지면 '마무리', '찍기', '족집게'과외라는 게 판을 친다. 과외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예체능계 대학에 들어가려면 집 한 채는 날려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부자만 과외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다. 여러 조사를 종합해 보면 각급 학교의 재학생 가운데 90% 이상이 과외공부를 하거나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빈곤층도 상당수가 자녀에게 과외공부를 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판이니 보통 월급쟁이는 봉급의 절반 이상을 자녀 사교육비로 털어 넣는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과외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2년제 대학생들은 4년제 대학에, 지방대 재학생이라면 수도권 대학에 편입하려고 편입학원에 다닌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 얻기가 어려우니 취직을 위한 과외공부를 하느라 난리다. 마흔이 넘으면 직장에서 쫓겨나니 대학생들이 안정된 직장을 찾는다. 공무원이 단연 으뜸이다. 각종 공무원 채용시험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응시행렬이 길어진다.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각종 학원이 성업 중이다. 교재도 터무니없이 비싸고 종류도 참으로 많다.

자격증이 있으면 취직에 유리하다고 하니 저마다 학원에 다닌다. 이른바 '스펙 쌓기'다. 직장마다 토익, 토플 점수를 요구하니 영어학원은 언제나 붐비고, 컴퓨터학원은 기본이다. 영어로도 모자라 중국어 등 제2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몰린다. 변리사, 감정평가사, 공인회계사, 공인중개사, 로스쿨 등등은 지원자가 많다보니 학원마다 만원이다.

대학졸업 후에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늙어서는 일자리를 얻기 위한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을 떠나지 못한다. 과도한 교육비로 인한 가계부담 증가가 출산율을 저하시키고 계층 간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 또 비생산적인 분야에 대한 과도한 지출로 인해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잠식한다.

과도한 교육비, 출산율 낮추고 빈부격차 확대시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8년 4/4분기∼2009년 1/4분기 가계의 교육비 지출액이 40조5248억 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39조1557억 원보다 3.5% 증가했다. 이것을 2005년의 30조854억 원과 비교하면 3년간 1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미국발 세계적 경제위기가 터져 국민생활이 어려워졌는데도 불구하고 교육비 지출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뜻이다.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었는데도 다른 부문 지출을 줄이면서까지 교육비 지출을 늘렸다는 소리다. 실제 같은 기간 주류 및 담배 지출액이 0.5% 줄었는데 이것은 1971년 관련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또 교통비 3.1%, 통신비 1.5%, 의류 및 신발 구입비 1.1% 등으로 감소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가계소비 중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3%이다. 이것은 2007년 기준 미국 2.6%의 2.8배, 일본 2.2%의 3.3배, 영국 1.4%의 5.2배에 달한다. 또 2008년 기준 프랑스 0.8%, 독일 0.9%의 9배 수준이다. 2009년 상반기에는 그 비중이 7.4%로 더욱 높아졌다. 2000년의 5.4%에 비해 2.0%p 증가한 것이다.

유학-연수비용까지 합치면 교육비 지출비중은 8.2%로 2000년의 5.8%보다 2.4%p 늘어났다. 교육비 지출 중에서 공교육비 비중은 2000년 3.5%에서 2009년 상반기 3.8%로 증가세가 미미한 편이다. 그런데 사교육비 비중은 1.9%에서 3.6%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역대정권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헛구호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교육비 지출증가는 치열한 입시경쟁 탓이 크지만 그 이전에 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의 공교육비를 비교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1인당 유아 교육비가 25개국 중에서 24위, 초등교육은 28개국 중에서 23위, 중등교육은 29개국 중에서 22위, 대학교육은 27개국 중에서 21위로 최하위권이다.

또 학업성취도가 기초수준 미달인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미국이 69.9%, 일본이 53.1%인데 비해 한국은 29.2%에 불과하다. 반면에 학업성취도가 탁월한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미국이 17.9%, 일본이 45.1%지만 한국은 83.7%에 달해 월등히 높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대학입학을 위한 사교육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다.
▲ '사교육 일번지'로 불리는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연합뉴스

사교육비를 감당하기도 어렵지만 생활비가 모자라니 저마다 공돈 생길 일이 없나 하고 눈을 두리번거린다. 이것은 공공분야나 민간분야나 마찬가지다. 그 까닭에 한국사회의 부패원인을 과중한 교육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과외비를 충당하려고 돈벌이에 나서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자녀교육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파출부, 보모, 보험설계사, 우유배달, 신문배달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계가 이렇게 과중한 교육비를 부담해서는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출산율 저하의 첫째 원인은 교육비 부담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력 감소는 내수성장을 둔화시키고 나아가 경제규모를 축소시킨다. 맞벌이를 해도 자녀 교육비를 대기 어려우니까 출산을 기피한다. 사교육비를 대다보면 내 집 마련도 어려워지고 문화여가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빚을 내서 가계를 꾸려야 한다. 웬만한 가정은 자녀 둘만 대학교육을 시키고 나면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노후를 위한 저축은커녕 빚에 눌려 사는 형편이라 집마저 처분해야 할 처지다. 학벌이 출세를 보장하는 망국병이 중산층을 파괴하고 사회를 빈곤화시키는 한편 부패구조를 심화시킨다.

그런데 지난 반세기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개혁이란 말을 들어왔지만 교재, 교복, 앨범, 수학여행 따위를 둘러싼 리베이트니 뒷돈거래니 하는 잡음조차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작더라도 학부모 부담을 줄여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적으로도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부진으로 내수산업이 진작되지 않는다. 교육관련산업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약하다. 조기유학-해외연수는 국제수지를 악화시킨다. 저축률 저하는 자본축적 감소로 인해 성장둔화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중산층을 붕괴시켜 사회 양극화를 촉진한다. 가계저축률이 1988년에만 해도 25.2%로 세계 1위였는데 2000년 들어 급격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2010년 3.2%로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을 나타낼 전망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자율과 경쟁의 교육정책을 주창하면서 사교육이 더욱 번창하고 있다. 강남 학원의 증가와 사교육 사업의 팽창이 그것을 말한다. 대형학원은 이미 학원이 아니고 기업 수준이며 주식시장에 상장된 사교육업체만도 18개나 된다.

경제민주화, 교육 바로 세우기에서 출발해야

공교육에 대한 투자확대를 통해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역대정권의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은 중산층을 붕괴시키는 빈민화 정책이며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잠식하는 빈국화 정책이다.

핀란드 국가교육청장을 지낸 에르끼 아호는 경쟁력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라고 역설했다. 학교는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가르치는 과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핀란드는 이 같은 교육철학을 바탕에 둔 까닭에 학교에서는 등수 대신 각자의 수준에 맞게 설정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성적표에 표시한다. 또 하위권 성적의 학생들에게는 예산을 1.5배 책정한다. 핀란드가 교육대국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교육현실은 어떠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에 손을 댔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도 없이 자본-시장논리에 근거한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입시정책의 잦은 변화에 따라 공교육은 붕괴적 위기에, 사교육은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입시정책의 빈번한 변화는 학부모와 학생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린다. 반면에 돈 냄새를 동물적 후각으로 맡는 사교육 업체들은 정책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해 급속한 성장세를 키워왔다. 지금처럼 대학입시제도가 복잡하고,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는 공교육은 사교육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예산과 인력이 제한된 공교육로서는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이와 달리 사교육은 시장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학생특성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은 교육이야말로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확고한 가치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 핵심은 보편적 가치를 토대로 계층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식의 학교가 결정되어 계층이 세습화하는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경제민주화는 교육 바로 세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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