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으로 '2012-2016년 국가재정운용계획 공개토론회'(12-14일)를 여는 것에 앞서, 시민사회가 바라는 향후 5년의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 방향과 재원 분배에 관한 쟁점과 정책적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발제자로서 2013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전반적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김현국 정책연구소 '미래와균형' 소장,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연합 국장,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오혜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가 분야별 토론자로 나섰다.
'부자 감세'로 재정 악화시키더니 재정 건전성 강조?
정창수 소장은 "한국의 재정 규모가 1970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작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 예산의 비중이 매우 낮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복지 구조"라고 비판했다.
정 소장은 "OECD 국가 등을 비교해보면 잘살아서 복지를 한 것이 아니라 복지를 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을 했다"며 한국도 "복지의 시기상조론을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정 소장은 최근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재정 건전성 및 균형재정 확보 주장을 비판했다.
"한국은 지난 3년간 적극적인 재정 확대로 위기를 버텨왔다. (…) 더 큰 규모의 경제 위기가 예상되는 시점에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본격적인 재정 긴축을 실시한다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러한 판단의 바탕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한 비판이 놓여 있다.
"정부는 지난 4년간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를 추진해, 공공 부문 부채를 두 배인 900조 원으로 늘려놓았다. 그런데 이러한 재정 운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균형재정을 들고 나왔으며, 2013년에는 균형재정을 확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간 증가한 부채에 대한 이자 지출 27조 7000억 원 등 악화된 재정 구조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 또한 그동안 개혁하겠다고 한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정치적 구호에 그칠 수 있고, 실제로 추진한다면 의무 지출을 제외한 복지 축소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 소장은 정부 편성안이 "공기업 등의 대규모 매각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는 미래에 활용될 자산을 줄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 소장은 예산 지출 구조 조정이 필요하며, 그 첫 번째로 불필요한 토건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예산(지자체 포함)에 반영되는 건설투자비 중 10퍼센트를 절감하면 약 4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산 외로 운영되는 재정과 관련, 정 소장은 "조기 납부 감면과 특별 감면 등의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돼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전반적인 개선 방향으로 재정 관련 통계 개편, 정보 공개 확대, 시민 통제 강화 등을 제시했다. 시민 통제와 관련해 정 소장은 "납세자 소송을 이번 대선 공약에 꼭 반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시민이 설계하는 2013년도 예산안 대토론회. @참여연대 |
"맥쿼리 등에게 특혜 주는 조세 감면 관련법 개정해야"
홍헌호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된 '2011-2015 국가재정운용계획-장기재정전망'이 허구적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 작업반은 2010년부터 2050년까지 조세부담률이 19.7퍼센트로 고정돼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또한 의료 지출 증가 시나리오를 추가로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식 의료 민영화를 전제로 한 것으로 매우 우려되는 시나리오다."
홍 연구위원은 조세 감면 관련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며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인프라)를 사례로 제시했다. 맥쿼리인프라는 요금 과다 인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메트로9호선의 대주주로서 "2011년 105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도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낸 것으로 확인됐다."
▲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 홈페이지. |
홍 연구위원은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법인세법 제51조2를 만든 이유는 금융 기관의 부실 자산을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만, 그 후 이 조항은 민자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투기자본에 특혜를 주는 방향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법인세법 제51조2를 폐지하고 맥쿼리인프라 등에게 정당하게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 홍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홍 연구위원도 과다한 토건 예산, 그중에서도 "복지의 탈을 쓴 토건"을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복지 정책에 대한 체감도가 낮은 주요 원인은 복지 지출액 자체가 적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복지 지출액 중 상당 부분이 토건 사업과 관련됐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홍 연구위원은 "최근 복지 지출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복지관, 문화관, 체육관 등이 우후죽순처럼 건립되고 있는데 그것이 지나치게 호화로워서 예산 낭비가 심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수혜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복지 혜택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홍 연구위원은 청년 일자리 창출 방안의 하나로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가 많은 기업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보다 사회보험료율을 높여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 진영, 지난 1년간 재정 관련 논의는 한 발짝도 못 나아갔다"
토론자 중 김성달 경실련 국장은 민자 사업의 문제점을 짚었다. 김 국장은 "도입 취지와 달리, 현행 민자 사업은 창의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규정했다.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도 사용료는 훨씬 비쌀 뿐만 아니라, 겉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민자 사업이라 부르기 궁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사례로 김 국장은 "수익형 민자 사업의 경우 약 30퍼센트는 재정 지원, 약 40퍼센트는 정부의 저리 재무보증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제시했다.
김 국장은 민자 사업이 "건설사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공사비 부풀리기, 최소운영수입보장, 토지수용권 부여" 등 특혜와 편법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이러한 특혜들을 폐지하는 한편 문제를 발생시킨 공무원과 관련 전문가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이 여전히 효율성이 낮고 질적인 문제도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데, 즉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이 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과 청년 고용 의무 할당제 등을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한국 재정의 핵심 문제는 직접세 수입이 적고 사회복지 분야 지출 비중이 낮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오 연구실장은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거꾸로 가는 재정 전략"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출 통제가 아니라 계층별 형평성에 맞게 직접세 수입을 늘려가는 게 옳은 길"인데도, 그와 반대로 "'부자 감세'로 초래된 재정 수지 적자를 재정 지출 억제를 통해 해소하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 연구실장은 "이명박 정부가 작년 국회에 제출한 '2011-201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애초 정부가 설정한 균형재정 달성연도를 2014년에서 2013년으로 앞당긴 것"이라며 "이는 작년 8.15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균형재정 목표연도를 2013년으로 선포한 데 따른 조치"라고 분석했다. 이어 "2013년 균형재정 청사진이 담긴 예산안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일 2012년 말에 제출돼, 대선에서 보편 복지 세력의 복지재정 확충론에 맞서는 핵심 카드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 연구실장은 상황이 이러한데도 진보 진영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년간 복지 논의는 계속됐지만 (이를 실현할) 재정 관련 논의는 한 발짝도 못 나아갔고 그래서 저쪽(보편 복지 반대 세력)으로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오 연구실장은 "증세 등을 통한 진보 진영의 세입 확충 방안을 마련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중과 이를 공유하며 정치적 힘으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관한 단계별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연구실장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증세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증세의 3대 원칙으로 "복지 증세, 보편 증세, 부자 증세"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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