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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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수가 사내하청…산재로 죽는 건 모두 하청 노동자…"목숨에도 등급 있다"
사람 목숨에도 등급이 있다. 적어도 조선소에선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내하청 비율이 높은 업종은 조선산업이다. 대한조선이 84.2%로 사내하청 비율이 가장 높고, 규모가 큰 대우조선해양(58.5%), 삼성중공업(57.5%), 현대중공업(43.5%) 등 나머지 조선소도 40~7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서인지 조선소에서 사망·사고 사건이 발생하면 그 피해자는 대부분 하청 노동자다. 지난 1월에는 울산 세진중공업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2월에도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이 조선소에서는 이번 사망·사고까지 합하면 지난 12월부터 3명이 사망했다. 3월에는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군소 조선소까지 합하면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조선소에서 죽어 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자가 일하던 조선소에서도 추락 사고나 절단 사고는 빈번히 일어났다. 휴대전화 사용 도중 족장(발판)에서 미끄러져 50대 여성이 바다에 빠지기도 했다. 족장이 풀려 6m아래로 추락한 사건도 있었고 손가락이 프레스기계에 끼여 절단된 사건도 발생했었다.
기자가 조선소에서 일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조선소는 지난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사망자가 나왔다. 역시 하청 업체 노동자였다.
왜 사망·사고는 하청 업체 노동자에게만 일어날까.
ⓒ매일노동뉴스(정기훈) |
사람이 죽어 나가도 바뀌지 않는 작업구조
무엇보다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장 환경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대형사고로 번지는 게 조선소다. 노동자들은 조선소에서 사고가 나면 중상 아니면 사망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실제 노동부에 따르면 2009년 조선업계 재해자는 2413명이며 재해율은 1.41%에 달한다. 이는 전 산업 평균 재해율인 0.7%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체 제조업과 비교했을 때도 높은 수준이다.
사망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10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미경 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조선업종 사고성 중대재해 현황'을 보면 2011년 7월까지 조선소에서는 16명이 일하다 사고로 숨졌다. 2009년에는 34명이, 2008년에는 31명이 사망했다.
매년 서른 명이 넘게 죽고 있지만 정작 바뀌는 건 없다. 기자가 일한 곳에서는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진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현장에서는 "전날 사고가 났으니 좀 더 작업환경에 주의해서 일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을 뿐이다. 작업현실이나 제반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위험한 일은 하청의 몫
문제는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 대부분은 하청 노동자라는 점이다. 2009년 사망한 34명의 조선소 노동자 중 25명(75%)이 하청 업체 노동자였다. 2008년에 숨진 31명 중 25명(81%)도 하청 노동자였다.
이런 이유는 원청 노동자가 위험하고 힘든 일을 기피하자 그 자리에 하청 노동자를 채우면서 발생했다. 원청 노동자야 노조도 있고 법에 의해 보호도 받을 수 있지만 하청 노동자는 그런 시스템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위에서 시키면 '찍' 소리도 못하고 일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조선업에서도 3D업종(족장, 파워, 도장)은 하청 노동자의 몫이 됐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사고를 당하는 이유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 관계자는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하청 노동자는 일을 선택할 힘도 명분도 없다"며 "원청에서 어떤 일을 시키든 그냥 입 다물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라고 위험한 일을 하고 싶겠느냐"며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생색내기' 수준의 안전교육
물론 조선소 원청도 안전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를 취한다. 대표적인 게 안전교육이다. 이것은 법적으로도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교육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이 작업현장에서 도움이 되는지는 미지수다.
실제 현장에서 진행되는 안전교육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자가 받은 안전교육도 마찬가지였다. 보건, 안전체조, 산재사고 관련 지식 등으로 구성된 안전교육은 구색 갖추기에 불과했다.
'일할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용접 할 때 나오는 가스는 몸에 안 좋으니 마스크를 써야 한다' 등의 원론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게다가 법정시간으로 돼 있는 8시간 교육도 6시간만 진행됐다. 작업현장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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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줄이려 공사일정 앞당겨…원청 요구 거부할 수 없는 하청
원청 업체가 무리한 작업을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도 노동자 산재 사고를 부추긴다. 신원철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원청 업체의 경우 매년 생산성 향상, 즉 공사시수의 절감을 중요한 관리목표로 삼고 있다"며 "이에 따라 해마다 협력업체에 적용되는 공사시수도 절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시수, 즉 공사 일정이 줄면 그만큼 인건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협력업체의 경우, 공사시수 등에 관한 데이터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원청의 일방적인 공사시수 절감에 대해 항의하거나 체계적 반론을 하기 어렵다"며 "이에 따라 원청의 일방적인 공사시수 삭감은 그대로 하청에게 비용으로 넘겨진다"고 주장했다.
공사시수를 줄이면 그만큼 공정일정은 빡빡해진다. 10일 동안 작업해야 하는 물량을 8일 만에 끝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위험요소가 곳곳에 포진한 작업장에서 급히 일하다 보면 사고는 당연히 일어난다.
'혼재작업'은 사고의 온상, 관리감독 사각지대
가장 큰 문제는 혼재작업을 관리-감독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작업현장에는 공사시수를 맞추기 위해 여러 업체가 한꺼번에 들어와 일하는 혼재작업이 비일비재하다. 혼재작업은 하청 업체가 관리하긴 어렵다.
원청에서 이를 관리해야 하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관여하다 자칫 불법파견 판정이 날 경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에서는 생산공정 업무에서 노동자파견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불법파견을 판단하는 근거는 원청 현장 감독자가 하청 노동자를 직접 지휘하는가 안 하는가에 있다.
이 때문에 원청 업체에서는 섣불리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를 지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혼재작업을 할 경우에도 이를 현장에서 관리하거나 지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1월 발생한 세진중공업 폭발 사고도 혼재작업 과정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근로감독관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의 경우. 2010년 기준으로 관할조선업체는 1222개로 종사자만 7만2418명이다. 삼성중공업과 대우해양조선업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조선업 종사자까지 포함해 이 지역 전체 노동자는 17만8443명이다 하지만 산재예방지도과에 소속된 근로감독관은 3명에 불과하다. 이 인력으론 산업재해 현장을 감독하긴 불가능하다. 이는 조선소가 많은 울산, 목포, 부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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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철 "사내하청, 복수의 사용자를 전제로 한 새로운 고용관계로 파악'
신원철 교수는 "사내하청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사내하청제도 및 원청 기업 경영자의 고용전략과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며 "이에 사내하청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사내협력업체'의 고용주와 사내하청노동자 양자 사이의 관계로 한정해서 이해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원철 교수는 "사내하청노동자의 고용관계는 '모기업-사내하청업체-사내하청노동자'라는 복수의 사용자를 전제로 한 새로운 고용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노동부의 의지도 강조했다. 신 교수는 "노동부는 하청 노동자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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