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1> <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2>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
환풍은 제대로 되지 않아 미세한 먼지와 철가루 등이 공중에 떠 있었다. 매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발 디딜틈 없을 정도로 드릴, 철사 등 각종 장비와 자재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사방이 꽉 막혀 있어 전등을 켜지 않으면 대낮임에도 깜깜했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조선소 안의 작업현장을 보고 든 첫 생각이었다.
조선소에서 일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대학 다닐 때, 공사판에서 험한 일 좀 해봤다고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그 자신감은 조선소에서 일한 지 하루 만에 사라졌다. 모든 게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일한 곳은 배의 엔진룸 캐이싱(casing). 캐이싱이라는 곳은 쉽게 설명하면 배 엔진 시설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겉 상자다. 상자라 해서 작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큰 배의 경우 축구장 두 배 크기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 배를 움직이려면 엔진의 크기도 장난이 아니다.
캐이싱의 크기는 보통 아파트 10층 높이 정도했다. 캐이싱 내부를 채우는 건 대부분 파이프들이었다. 1층부터 이어진 파이프가 캐이싱 꼭대기까지 닿아 있다. 이 파이프는 엔진에서 나오는 연기를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엔진 크기도 엄청 크기 때문에 파이프의 지름도 그에 걸맞게 컸다. 작은 건 지름 1m정도 했고 큰 거는 지름 3m를 넘겼다.
이곳에서 한 일은 파이프에 함석판을 씌우는 일이었다. 기자가 일한 하청 업체는 배에 단열재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 회사였다. 엔진 파이프를 그대로 두면 열기가 그대로 파이프를 통해 퍼져나가기에 단열재를 붙여야 했다.
대략 인원은 30명 정도였다. 여기서도 일이 쪼개져 단열재를 씌우는 팀과 단열재를 씌운 뒤, 그 위에 함석판을 덧씌우는 작업을 하는 팀이 나눠 있었다. 기자는 함석판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드릴'질' 제대로 못하는 어리바리한 노동자
▲ 기자가 일한 조선소. ⓒ프레시안(허환주) |
이 발판은 엔진 파이프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 약1.5m 높이의 간격으로 10층 높이까지 올라가 있다. 이렇게 설치된 발판이 없으면 선박 내부에서 일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발판 때문에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1.5m 높이 때문에 족장 위에서 일을 할 때는, 늘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있어야 했다. 작업장 내에서 늘 써야 하는 안전모까지 쓰면 키가 180cm가 훌쩍 넘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보니 허리와 등, 무릎 등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함석판 설치는 단열조가 파이프에 단열재를 설치하고 난 뒤 붙인다. 미리 사이즈별로 제작한 함석판에 드릴을 뚫어 나사못으로 파이프에 부착시킨다. 말로 하면 참 쉬운데 이게 해보면 정말 어렵다. 우선 드릴'질'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기자 입장에서는 드릴'질'이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함석판이 고정된 것도 아니다보니 드릴은 항상 삐뚤빼뚤하게 뚫려버렸다. 한번은 드릴이 미끄러져 함석판을 쥐고 있던 왼손을 뚫을 뻔하기도 했다.
그나마 발판 위에서 일할 때는 안정적이었다. 드릴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그 부위가 비좁아 발판이 설치 안 된 곳도 있었다. 그러면 그쪽 벽을 타고 파이프 등에 몸을 기대어 드릴'질'을 해야 했다. 조금만 삐끗하면 바로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 조선소에서 사고가 나면 사망 아니면 전신불구라고 하던데 그 말은 하나도 과장된 게 아니었다.
초보자인 기자에게 그런 일을 시키진 않았지만, 가끔 일이 급해 부득이 공중에 매달려,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일해야 할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정말 죽을 맛이었다. 드릴이라는 게 힘을 주어 밀어야 철판이 뚫린다. 자칫 힘을 잘못 주다 삐끗할 경우, 밑으로 떨어질까 드릴'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층까지 뻥 뚫려 있는 아래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도저히 드릴'질'을 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함께 일하는 노동자에게 민폐를 끼쳤다.
안전모도 기자를 괴롭히는 요소 중 하나였다. 위에서 뭐가 떨어질지 모르니 안전모는 케이싱 안에서는 필수로 써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모를 쓰니 시야가 가려 머리 위를 잘 볼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좁은 발판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 위에 있는 파이프, 못 등 온갖 장애물에 머리를 부딪쳐야 했다. 바보가 따로 없었다. 물론 늘 허리를 구부리거나 무릎을 굽히고 다녀야 했지만 5분만 그렇게 다니면 허리랑 다리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프레시안(여정민) |
사람 목숨 갉아 먹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리 먼지
단열재에서 나오는 유리 먼지도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였다. 엔진 파이프 단열재에 쓰이는 유리섬유가 깨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유리 먼지가 발생한다. 물론 유리섬유가 깨지지 않도록 작업하면 되지만 말이 쉽지 그건 불가능하다.
이 유리 먼지는 말 그대로 유리다. 흡입하는 거는 몸에 무척 해롭다. 작업장에서 일하던 동료들은 발암물질이라며 절대 이걸 마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작업장 내에서 마스크는 쓰지만 유리가루, 즉 유리 먼지를 제대로 막아주기엔 부족했다. 법적으론 발암물질이라고 규정되지 않았지만 현장 노동자 사이에서 유리먼지는 발암물질로 인식됐다.
작업이 끝나고 코와 입에 쓴 마스크를 벗으면 입 주위와 코 주위에도 미세한 유리 먼지가 박혀 있었다. 이런 건 씻어도 잘 떨어지지 않기에, 일이 끝난 뒤에는 함께 일한 노동자들은 테이프로 이것들을 제거했다. 90% 이상 분진을 걸러주는 고급 마스크는 비싸기에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1회용 마스크를 사용했다.
유리 먼지는 호흡기만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작업복 안으로 들어와 일하는 내내 몸을 가렵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유리 먼지가 몸에 달라붙어 괴롭혔다. 숙소에서 타월로 몸을 '박박' 씻어야지만 제거가 됐다. 그래봤자 다음날 작업복을 입으면 작업복에 붙은 유리 먼지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 기자가 일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은 전체가 철판으로 돼 있는 이 안에 들어가 용접도 하고 도장도 한다. ⓒ프레시안(허환주) |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함석판을 붙이는 작업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을 시킨다고 했다. 실제 보온조, 즉 단열재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50~60대가 주를 이뤘다. 이유를 듣자니, 단열재를 붙일 때 유리 섬유 등 좋지 않은 물질들이 많이 나오기에 젊은 사람들은 잘 안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나마 함석판을 붙일 때는 낫다는 것.
그렇기에 나이 들고,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단열재 붙이는 작업을 주로 한단다.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니 일을 하는 거다. 이래저래 우울한 조선소다.
한편, 한국내화건축자재협회에서는 유리섬유가 석면과는 전혀 다른 제품이며 발암성 물질이 아니라고 알려왔다. 또한 절단 등의 작업시 다소 분진이 발생해 피부자극을 발생시킬 수도 있으나 유리섬유가 피부에 박히거나 폐에 흡입된다해도 석면과 달리 비결정질로 체액에 녹아 빠른 시일내에 체외로 배출된다고 알려왔다. |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2>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3>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4>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1>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2>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3>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4> "5년동안 몰랐는데 내가 바로 불법파견이더라" - 위험의 양극화, 대책은? <1> 폐암 진단, 길고 긴 소송, 얻어낸 건 장례비 <2> "냉동고에서 질식사한 노동자, 그러나 회사는 무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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