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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슘 쇠고기 사태, '이력제'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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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슘 쇠고기 사태, '이력제' 없었다면…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③] 먹기 전에 일단 찍어봐

2008년 광화문에서 타올랐던 촛불. 국민이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정부는 식품 안전에 대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강화하고, 국내산 쇠고기의 이력제는 물론 지난 겨울에는 수입쇠고기도 '유통이력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제 어지간한 먹을거리는 '출신 성분'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다만 정부가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식품 안전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제도에는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프레시안은 총 5회에 걸쳐, 원산지 표시제, 수입쇠고기 유통이력제, 국내산 쇠고기 이력제 등의 시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점을 짚어본다.<편집자>

[쇠고기, 너 고향이 어디니?]
"20년간 먹던 고깃집 고기 맛이 변했어. 조사해봐"
후쿠시마 세슘 쇠고기가 국내에 수입됐다면?

ⓒ프레시안
지난 7월 5일 저녁. 직장인 A씨는 회식에 참석했다. 요즘 회식으로 쇠고기를 먹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작년 까지만 해도 쇠고기 회식은 1년에 서너 번이었다. 올해에는 물가인상에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고기 값이 뛰어 삼겹살이 1인분에 1만3000원까지 뛴 곳이 생겼다. 반면 저렴한 가격에 쇠고기를 내놓는 체인형 쇠고기 식당이 늘면서 '조금 더 보태 쇠고기를 먹자'는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A씨는 이날도 서울 홍대 근처의 한 식당에서 신나게 쇠고기를 구웠다. 진열 냉장고에서 쇠고기를 직접 확인하고 고를 수 있는 정육점형 식당이었다. 고르던 중 쇠고기 포장에 붙어 있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스티커 중간의 노란색 부분이 확 띄었다. 그 안에는 '개체(관리) 식별번호'라고 써 있고, 열두 자리 숫자가 적혀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A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쇠고기이력제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켜 스티커에 있는 번호를 입력했다.

"002 030 709 524"

화면이 바뀌면서 여러가지 정보들이 떴다.

출생년월일: 2008-08-20
종류: 한우
성별: 거세

▲ 쇠고기 이력 추적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개체식별번호.

전산등록이 된 곳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이었다. 그 곳이 고향인 듯 하다. 오욱환이라는 사람이 주인이었다. 이후 2009년 3월 경북 봉화의 김도현이라는 사람이 이 소를 샀고, 2011년 6월 23일 충북 음성축산물공판장에서 도축됐다. 구제역 광풍을 이겨낸 모양이었다.

이 소는 육질등급 2등급을 받았고, 농협중앙회 인천가공사업소 등에서 가공돼 이 식당까지 왔다.

A씨는 기분이 묘했다. 소의 출생일과 출생지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6월 23일 도축돼 7월 5일에 식탁에 올랐으니, 신선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입 쇠고기는 냉장 쇠고기여도 운송 과정을 감안하면 도축된 지 한 달 이상 지난 쇠고기가 많기 때문이다.(수입 냉장 쇠고기의 유통기한은 3개월)

육질등급이 '2등급'이라는 점이 걸렸지만, 저렴한 가격을 감안하면 2등급이라고 표시돼 있다는 점이 적어도 '속이진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더 신뢰가 갔다.

개체식별번호를 알게 된 A씨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정육 코너에서 개체식별번호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매대의 표시판에는 횡성한우 마크가 찍힌 한우 쇠고기에 '1++'이라는 등급이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열두 자리 개체식별번호를 확인해 보니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에서 길러진 1++등급의 한우가 맞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쇠고기는 한우지만 등급이 표시돼 있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그 쇠고기의 개체식별번호도 조회해봤다. 충남 예산과 경기 안성에서 길러졌다. 한우는 맞는데 등급이 '1+'였다. 최상등급인 '1++'에 한 등급 못 미치지만, 등급 표시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정육 매장에서는 매대에 별도로 표시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찌됐건 개체식별번호 덕분에 육질등급을 쉽게 알 수 있었다.

▲ 매대에 표시된 개체식별번호(좌)와 쇠고기 이력 추적시스템에 조회한 화면(우) ⓒ프레시안

일단 찍어봐

쇠고기이력제는 소가 태어나면 개체식별번호를 부여해 귀표를 부착하는 것부터 시작해 매매‧도축‧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정보를 기록‧관리하는 제도다. 만약 위생‧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이력을 추적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유통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원산지 허위표시나 둔갑판매 등을 방지할 수 있고, 쇠고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어 소비자가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일본, 프랑스, 호주, 미국 등 축산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 호주는 브루셀라와 우결핵 박멸을 위해 1960년 이력추적시스템(cattle-tracing system)을 도입했고, 1996년부터는 소의 질병 및 건강상태 증명 목적의 NVR(출하자증명제)를 도입했으며, 1998년부터 농장에서 도축까지의 이력제도를 의무화 했다. 2004년부터는 모든 주에서 소에 귀표부착을 의무화했다.

일본도 2001년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이력제를 조기 도입했다. 2002년에 모든 소에 귀표를 부착했고, 2004년 12월부터 생산은 물론 유통단계까지 쇠고기 이력제를 시행했다. 역시 광우병 광풍이 불었던 유럽의 경우 프랑스는 2005년부터 쇠고기는 물론, 사료에까지 이력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 ⓒ프레시안

우리나라는 2004년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2007년 12월 관계법령을 공포, 2008년 12월 사육단계 시행에 이어 2009년 6월 소비자가 개체식별번호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유통단계까지 이력제를 확대 실시했다. 또한 송아지가 태어나거나 거래를 할 경우 신고해야 하는 기한을 한 달에서 5일로 변경하는 등 제도를 점차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등 국민의 먹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입 쇠고기 물량이 높아지면서 국내산 한우와 육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시스템이다.

최근 대전주부교실이 시민 9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쇠고기이력제 실시 이후 국내산 쇠고기가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는 응답자가 70.9%에 달했고, 쇠고기 구입시 개체식별번호를 조회해봤다는 응답자도 26.7%로 나타나는 등 소비자들의 인식도 점점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세슘 쇠고기 사태, 그나마 쇠고기 이력제 있기에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유출 사태가 쇠고기 시장으로까지 번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우선 원인부터 따져보자면, 도축 검사 상의 허점이 노출됐다는 평가다. 이번 오염 사태는 소들의 먹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지진으로 사료 공급이 부족해지자 축산 농가들은 볏짚을 사다 먹였는데, 이 볏짚이 오염됐던 것이다. 미야기현의 60개 농가에서 오염된 볏짚을 축산농가에 판 것으로 확인돼 사태가 점점 확산될 분위기다.

또한 먹거리 오염이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전수조사를 하지 않은 점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세슘 오염 소가 발견된 아사카와 마을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60km 떨어져 방사능 검사 대상에서 빠졌다. 이에 일본 정부는 뒤늦게 전수조사를 검토하고 있지만, 지자체에서는 과일과 채소에 대한 조사만으로도 업무량이 폭발적이어서 난감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일단 전수조사 체제가 갖춰질 때까지 후쿠시마현의 쇠고기는 출하를 전면 금지시켰다.

검사 단계의 허점으로 인해 쇠고기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나마 쇠고기이력제 덕분에 오염된 재고 쇠고기 회수에 나서는 등 소비자들은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고 있다.

19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세슘에 오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후쿠시마산 소 537마리의 개체식별번호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또한 아이치현은 지난 11일 후쿠시마현 미나미 소마시 축산 농가에서 출하된 쇠고기 6마리 중 1마리가 현 내에 유통된 것을 개체식별번호 추적을 통해 확인한 뒤 곧바로 보건소 직원을 소매점으로 보내 30분 만에 재고로 남아 있는 쇠고기를 회수할 수 있었다.

쇠고기 판매점에서도 '커밍아웃'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후지사와시의 오다큐 백화점은 정육매장에서 후쿠시마산 쇠고기가 쇠고기 카레 조림용으로 판매된 것을 확인해 재고를 회수하고 소비자들에게 반품, 환불 공지를 냈다. 이밖에도 마츠야마시 이마바리시 등의 슈퍼마켓들도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소의 개체식별번호를 조회해 매장의 재고를 전량 회수하고 소비자들에게 반품을 호소하고 있다. 쇠고기 이력제가 없었다면 불안감으로 인해 일본 쇠고기 시장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도축장에서는 소가 들어오면 수의사가 질병 감염 여부를 판단하고, 도축 후에는 기생충‧잔류물질 등의 검사를 거치고 병변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질병검사를 실시한다. 소의 경우 전수 조사를 한다.

방사능 검사는 상시 실시되지 않지만, 오염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즉각 조사에 들어간다. 만약에 국내 원전에서 사고가 있을 경우 주변 지역을 모니터링하고, 오염 의심 지역의 젖소에서 우유를 뽑아서 검사하는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젖소의 우유가 방사능 오염 여부를 측정하는데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는 것. 농식품부 관계자는 "질병, 잔류물질 등은 항시 전수 조사 하지만 특수한 경우의 식품 안전 위험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선택과 집중에 의해 신속하게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봄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남해안 지역에서 농산물의 방사능 오염 여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일본도 원전 사고 직후부터 이와 같이 관리했으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쇠고기이력제가 실시된 이후 쇠고기 오염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 아직 개체식별번호 추적을 통해 회수에 나섰던 적은 없다.

그런데 만약 유통‧판매업자가 개체유통식별번호를 속여 육우를 한우로 속여파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이를 위해 DNA를 수집한 뒤 유통단계 점검을 나선다. 도축된 소의 DNA 정보를 판매되는 쇠고기와 비교해 개체식별번호와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다. 적발되면 형사입건 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거나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처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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