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한미 FTA는 가장 확실한 중소기업 정책"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나서서 "우리 민족이 살 길은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세계를 지향하며 개방하는 것"이라며 "한미 FTA 국회 청문회에라도 기꺼이 서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정 보좌관은 25일 '햄버거와 유토피아 : 한미 FTA의 진실'이라는 장문의 글을 청와대 브리핑에 실어 한미FTA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 보좌관은 청와대브리핑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과연 19세기 종속이론을 21세기에 적용하는 것이 온당한지 의문"이라며 '反FTA' 진영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나 정 보좌관의 이번 글에 대해서도 의도성 여부와 상관없이 오류가 많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코카콜라도 한국에선 적자 못 면해"…'콜라 815'라고 들어봤나?
정 보좌관은 이미 지난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4대 선결조건이라는 지적에도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 표현을 수용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4대 선결조건은 있었나"며 "그것들은 FTA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고집했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그것은 한미FTA 협상 정지 차원에서 통상현안을 해결하고자 했었던 것"이라고 인정했었다.
이어 정 보좌관은 쟁점 현안에 대한 정부 측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정 보좌관은 "우리 영화가 중국, 동남아 등에 본격적으로 수출되고 있는데 이미 불필요하게 되어버린 40%의 쿼터에 언제까지 집착할 것이냐"며 "이미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땅 짚고 헤엄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발전을 거부하고 퇴보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자간 협상도 아닌 한미 간 FTA와 동남아 영화 수출은 별 관련이 없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또한 정 보좌관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 농업이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도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산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더라도 상당부분은 다른 나라 수입 농산물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정 보좌관은 "우리 농산물도 품질 고급화 등을 통해 경쟁해 볼만 한 것으로 분석되었다'며 "다만 보리나 콩 등 일부 품목의 경쟁력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정 보좌관은 "혹자는 '햄버거 굽는 일자리'나 늘어날 것이라는 비아냥으로 FTA의 효과를 폄하하고 있다"고 한미 FTA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캠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도 비판했다. 장 교수는 최근 <PD수첩>에 출연해 "한미 FTA가 체결돼도 직접 투자가 별로 늘 것도 없고 일자리 증가 요인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햄버거 굽는 일자리나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었다.
정 보좌관은 "'햄버거 굽는 일자리'가 뭐가 나쁘냐"면서 "우리 브랜드의 닭고기 햄버거체인이 외국에 진출하면 외국에서 '햄버거 굽는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 보좌관은 "최근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우리나라에서 철수했으며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굴지의 다국적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우리나라 관련 산업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맥도날드나 코카콜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웰빙 열풍이나 독극물 파동 등으로 인한 패스트푸드 산업 전체의 문제이지 한국 업계의 경쟁력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코카콜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국코카콜라는 IMF 직전인 지난 1996년 일방적으로 국내 보틀링(병입) 업체와 3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계약을 해지하고 직영 보틀링 업체(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설립한 바 있다. 그 뒤 코카콜라의 하청업체인 범양식품은 직접 콜라 815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맞서고 해태음료도 옐로콜라를 출시하는 등 토종콜라가 4종이나 쏟아져 나왔지만 코카콜라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결국 다 망했다.
"멕시코가 미국에 예속됐다는 말 못 들어봐"…"혼자 못 들어봤겠지"
정 보좌관은 '反FTA' 진영에 대해 "아직도 종속이론인가" "'자주'라는 이름의 유토피아"라는 자극적 언사를 사용해 직설적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정 보좌관은 "반대 주장의 근저에는 우리 경제가 미국에 예속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적 위기도 극복했는데 FTA충격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보좌관은 "농민단체나 서비스 산업 종사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반대 입장을 가지는 것은 그럴 수 있는데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조가 앞장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미국의 노조가 반대한다면 모를까 일자리가 늘어나고 노조에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또한 정 보좌관은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 멕시코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이전에도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았고 체결 이후에는 80% 후반까지 올라갔지만 이들 국가가 미국에 예속되고 있다는 논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보좌관의 이 발언에 대해 한 경제학자는 "멕시코가 미국에 예속되고 있다는 논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은 아마 정문수 보좌관이 유일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보다 국내에서 안주하면서 우리끼리 다투는 데 익숙해져 왔다"며 "양반사대부들은 3년 상이 옳은지 5년 상이 옳은지 당쟁을 벌이다 외세의 침략에 무너지고 말았다"고 '식민지 사관'을 설파하다시피 한 정 보좌관은 "국회 청문회, 기꺼이 서겠다"고 말했다.
"FTA청문회 서겠다"…"방향 잘못 잡았다. 론스타 청문회가 먼저"
정 보좌관은 "물리적 폭력에 의해 공청회가 거듭 무산되고 경사된 시각의 방송매체와 편향된 반대단체들로 균형 잡힌 논의와 토론이 어려운 마당에 청문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하루 빨리 국회가 한미 FTA특위를 구성하고 청문회를 개최해 국론을 수렴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정 보좌관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며 "먼저 준비해야 할 청문회는 다른 쪽"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외환은행 마지막 이사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론스타에 은행을 헐값으로 매각하고 자기 스톡옵션이나 챙겨놓고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고 변명했던 사람이 바로 정 보좌관"이라며 "한미 FTA 청문회 신경 쓰기 전에 외환은행 매각 청문회 나갈 준비나 하는 게 사리에 맞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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