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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를 보는 청와대의 '단순 삼단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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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를 보는 청와대의 '단순 삼단논법'

[한미FTA 뜯어보기 68] "한미 FTA가 가장 확실한 중소기업 정책"?

"한미 FTA는 가장 확실한 중소기업정책이다."

"한미 FTA는 중소수출업계에 단비와 같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21일 <청와대 브리핑>에 "한미 FTA는 가장 확실한 중소기업 정책 : 관세인하는 모래주머니를 떼어주는 것과 같다"라는 글로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이 수석이 지난 6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한미 FTA…멀리 보고 크게 생각합시다'라는 기획시리즈의 네 번째 순서인 이 글에서 그는 "한미 FTA가 체결되어 관세가 없어지면 국산 양말들이 중국산을 '가볍게' 따돌리고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섬유분야 수출 중소기업들이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수석은 복잡한 표를 곁들여 관세인하 효과를 소상히 설명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섬유류 분야의 첨예한 쟁점사항인 '얀 포워드 원칙'(Yarn Forward: 원단이 아닌 원사 생산지를 기준으로 원산지를 규정)이나 '섬유특별 세이프가드' 등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얀 포워드' 빼먹고 '장밋빛 미래'만 제시

'폐쇄적 민족주의' '낡은 종속주의' 등의 직설적 언어를 사용해가며 한미 FTA 반대론자들에게 날선 대립각을 세웠던 전편들과 달리 이 수석의 이번 글은 각종 통계자료를 사용한 기대효과 중심으로 차분한 어조를 유지했다.

각종 섬유제품의 대미 관세현황을 설명한 이 수석은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할 경우 관세가 10% 가량 줄어들면 경쟁업체를 가볍게 누를 수 있다"며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달리다가 이것을 떼어버리고 달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수석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대구경북 지역의 양말산업이 활기를 띄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수석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섬유산업이 한미 FTA 체결 시 최대 수혜업종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지난 2004년 무역협회는 '한미 FTA체결 시 대미섬유수출이 약 1.9억 달러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염규배 섬유산업협회 팀장도 지난 5월 '한미 FTA와 한국경제' 세미나에서 "2005년 대미 섬유 수출액 23억2700만 달러를 기준으로 단순 관세 철폐 시 약 2억 달러 수출증대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2억 달러(한화 2000억 원)는 크다면 큰 금액이지만 세계 10위권인 한국경제규모로 볼 때 한미FTA 최대수혜산업의 수출증가 기대액 치고는 '약소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섬유업계, 휴대폰 회사에 밀린 마늘농가 꼴 되려나

이백만 수석이 '한미FTA를 통한 관세인하는 모래주머니를 떼는 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얀 포워드 조항도 대미수출관세 만큼이나 무거운 모래주머니라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얀 포워드 조항 유지 시 원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섬유업계로서는 제품 자체를 국산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관세 철폐가 되든 말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이 조항을 유지한 채 한미FTA를 체결하는 것은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 협상단은 서울에서 열린 지난 2차 협상에서 얀 포워드 조항, 섬유특별 세이프가드 완화를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미국 측은 기존 보호조항들을 끝까지 고수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 입장에서는 섬유류의 경우 한국의 수출물량이 늘어나는 것은 대중 수입물량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입증가규모도 크지 않은 섬유 분야는 결국 양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독립 분과가 된 섬유협상에서 '개가'를 올린다면 다른 분과의 양보는 필연적이고 다른 분과에서 '개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섬유를 '희생카드'로 쓸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이런 까닭에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지난 달 14일 한미 FTA지지 선언을 하면서도 "한미 FTA 체결을 조급히 마무리하기 위한 협상카드(bargaining chip)로 섬유부문이 활용되거나 다른 협상 분야의 타협을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의 폴리에틸렌과 휴대폰 수입 중단 조치를 풀기 위해 마늘을 내줬던 지난 2000년의 대중무역협상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농민들은 "휴대폰 팔아먹자고 마늘 내주냐"고 격렬히 반발했지만 "휴대폰은 첨단산업이며 수출기대효과도 큰 반면 농업은 어차피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양산업"이라는 주장에 묻혀 버렸다.

눈 가리고 아옹하기 식 단순 삼단논법

사실왜곡이나 수치조작은 없었지만 결국 이번 청와대브리핑 역시 한 쪽 눈을 감은 채 바라본 한미 FTA의 기대효과를 되풀이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

이 수석의 이번 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한미 FTA 체결→관세 인하, 수출증가→ 중소기업 육성'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3단 논법은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자'는 이 기획시리즈의 제목과도 부합하지 않고 복잡한 한미 FTA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는 것은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을 위험이 높다.

긍정적으로 봐주자면 한미 FTA 기대효과 설명에 주력한 이번 글은 반대진영에 대한 신경질적 비판이 눈길을 끌었던 과거의 글보다는 한 발 나아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접었어야 하는 것인지 가늠키 힘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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