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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 바벨탑'에서의 한 달…"세 명의 활동가를 구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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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 바벨탑'에서의 한 달…"세 명의 활동가를 구출하라"

[현장] '4대강 사업 저지' 농성 한 달 맞은 이포보 풍경

성인 1일 기초대사량에도 못 미치는 양의 물과 선식으로, 근 20일을 버텼다. 낮에는 30도를 웃도는 폭염과 싸우고, 밤에는 농성장을 훤히 비추는 서치라이트와 경찰의 선무 방송과 싸워야 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면서 가족들과의 연락은 수시로 두절됐지만, '여주군민은 4대강 사업에 찬성한다', '외지인은 물러가라'는 지역 주민들의 확성기 소리는 온종일 귓전을 때렸다.

굽이굽이 흐르던 남한강의 물길 한 가운데 박힌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정부는 그곳을 '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그곳을 '이포 바벨탑'이라 불렀다. 자연을 다스리겠다는 인간의 오만과 개발이라는 환상에 눈이 먼 '욕망의 바벨탑'. 그곳에서의 위태위태한 싸움 역시 어느덧 한 달을 맞았다.

▲ 강 한 가운데 교각 위에서 한 달을 맞은 환경운동연합 간부들. ⓒ프레시안(김하영)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환경단체 활동가 3명이 경기도 여주군 이포보 공사 현장에서 농성을 벌인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됐다. '폭염과의 사투'를 벌인 한 달이었지만, 이포보 교각마냥 높고 단단한 '정부의 벽'과 사투를 벌인 한 달이기도 했다.

농성의 시간이 길어졌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정부는 개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했고, 공사는 예정대로 강행됐다. 세 명의 활동가가 법원의 퇴거 명령과 하루 900만 원에 이르는 벌금에도 불구하고 보 아래로 내려오지 못한 이유다.

농성 한 달째를 맞은 21일 오후, 이포보 인근은 농성자 3명을 응원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33도를 웃도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환경단체 회원을 비롯한 시민 300여 명은 이포보가 내다보이는 이포대교에 올라 농성자들을 응원하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이포보 인근 장승공원에 모여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 이포보 위의 활동가들을 응원하고 있다. ⓒ프레시안(김하영)

"며칠 전 전화를 통해 훌쩍이는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중요한 것을 위해 많은 것을 쏟아 부어야 할 때가 있다고. 국토의 동맥이고 민족의 젖줄인 4대강을 지키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자랑스럽습니다. 철통같은 이포댐 현장을 뚫고 올라와 그 실체를 드러내고 비판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함께 힘을 합쳐 4대강 사업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강을 지켜냅시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모두 힘냅시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농성 30일 차, 30m 높이의 교각 위에서 휴대전화를 통해 전달된 목소리였다.

이포보 위의 활동가 3명은 지난 10일부터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던 무전기의 배터리가 제공되지 않아 교신이 끊기자, 가까스로 지난 17일 자가발전 전등기를 개조해 휴대전화를 충전하는데 성공했다. 꼬박 1시간은 전등기를 돌려야 10분 정도 통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지만, 한 달 남짓 이포보 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로빈슨 크루소의 지혜'를 터득한 셈이다.

역시 이포보 위에서 30일을 보낸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포바벨탑에는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 뜨거운 열기가 우리의 투쟁 열정을 더욱 달구고 있다"며 농성의 의지를 내비쳤고,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역시 "한마디로 '짐승같은 짓'인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프레시안(김하영)

이포보 아래에서의 응원의 메시지도 이어졌다. 이날 농성장을 찾은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이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럽겠느냐"며 "야당이 힘이 없어서 세 명의 동지들이 이명박 정권의 폭력을 온몸으로 감당하게 만들었다. 목숨을 걸고 농성하게 만들었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이어 "야당은 이 세 명의 동지들에게 그들의 목숨의 무게만큼 빚을 졌다"며 "이 세 명이 이제 그만 이포보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야당이 거리로 나서자. 다시 거리에서 촛불을 들어 동지들을 구출하자"고 당부했다.

ⓒ프레시안(김하영)

환경단체의 농성 이후 줄곧 이포보 현장을 찾은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환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이포보 위에 올라갔겠느냐"며 "이 나라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무언가 떳떳하지 않으니 대화조차 안하려는 것"이라며 날선 비판의 말을 이어나갔다.

이포보 현장을 찾은 환경단체 회원들과 야당 의원들은 "이제 이포보의 활동가들을 구출해야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애초 이포보 위에 오르며 제시한 3개의 요구안 중 그 어느 것도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4대강 공사의 즉각적인 중단 △국회 내 4대강 검증특별위원회 설치 △국민 여론 수렴 기구 구성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하루속히 농성자들을 내려오게 하고 싶은데, 요구안 중 어느 것도 달성되지 못해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들의 농성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일으킨 불씨를 통해 여기저기서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이 일고 있다. 이제 전 국민이 함께 싸우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 이포보 교각 위의 3명이 시민들의 응원에 화답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이날 이포보 아래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는 소리꾼 오우영, 민중가수 김성만 씨의 공연과 송경동 시인의 시 낭송 등의 행사로 2시간 남짓 이어졌다. 3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이포보 위에 오른 3명의 활동가의 이름을 부르며 이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화답하는 활동가 3명의 모습이 보였다. '이포바벨탑'에서의 하루는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은 이포보 고공 농성 30일을 맞은 22일, 농성자 3명이 휴대전화를 통해 환경운동연합에 보내온 편지이다.

▲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30m 높이의 이포보 농성장 위에서 찍은 사진을 휴대전화를 통해 보내왔다.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여러분 고맙습니다. 끊임없는 응원과 사랑에 행복하고 감격스럽습니다. 며칠 전 전화를 통해 훌쩍이는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중요한 것을 위해 많은 것을 쏟아 부어야 할 때가 있다. 국토의 동맥이고 민족의 젖줄인 4대강을 지키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자랑스럽습니다. 철통같은 이포댐 현장을 뚫고 올라와 그 실체를 드러내고 비판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함께 힘을 합쳐 4대강 사업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강을 지켜냅시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모두 힘냅시다.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존경하는 환경운동연합 회원 여러분. 저는 고양환경운동연합 박평수 집행위원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로 이곳 이포보에 오른 지 31일째입니다. 천박스러운 경제 논리와 mb의 독선으로 진행되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국민의 소리를 전하고, 이에 대한 현명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난 7월 22일 이곳에 올라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 창릉천과 공릉천이란 하천이 있습니다. 그곳에도 하천의 물을 이용하기 위한 보가 설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올라와 있는 이곳의 높이가 30m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보입니까? 강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파괴해 강에 사는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생태파괴적인 이 사업이 강을 살리는 사업입니까?

우리가 올라와 있는 이포보라 불리는 이 구조물은 보가 아니라 댐입니다. 댐은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물을 가둬두는 구조물의 뜻도 있지만, 영어로는 짐승이라는 뜻도 함께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진행되는 이 4대강 사업은 한마디로 짐승 같은 짓입니다. 이 짐승 같은 짓을 더 이상 우리들의 소중한 미래 세대를 위해서 그냥 놔둬야 하겠습니까? 반드시 우리가 중단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이 강은 생명력을 깡그리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합시다. 우리가 결심하면 반드시 이뤄낼 수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든든합니다. 사랑합니다. 함께 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왼쪽)과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환경운동연합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전국에서 한걸음에 달려오신 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장동빈입니다. 이곳 이포바벨탑은 3일째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맨 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우리의 투쟁 열정을 더욱 달구고 있습니다. 지난날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와 관련한 전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했을 때, 진실과 소통을 요구하는 국민을 상대로 당황스럽게도 광화문에 컨테이너를 동원하여 명박산성을 쌓았습니다. 요즘엔 4대강을 살린다면서 전 국토를 헤집고, 초대형 콘크리트 장벽을 만들어 국민의 소리는 물론, 뭇 생명의 소리마저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가 우리의 운동의 본질인 것 막히면 넘쳐 흘러갑시다. 이명박 정부와 4대강 추진 세력, 토건 세력의 눈 먼 행동을 반드시 저지합시다. 감사합니다.

ⓒ프레시안(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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