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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의 뜨악한 '멀루니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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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의 뜨악한 '멀루니論'

[기자의 눈] 그렇지 않아도 닮긴 닮았지만…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뒤 노무현 대통령은 "한두 번의 선거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지난 1984년부터 1993년까지 캐내다 총리를 지낸 브라이언 멀루니를 언급했다.

멀루니가 재정안정화 정책을 추진해 집권당이던 보수당은 괴멸적인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그의 혜안으로 오늘날 캐나다가 안정적 경제성장을 누리게 됐고, 보수당은 지난해 재집권할 수 있었다는 게 요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26 재보선 참패 이후에도 "대통령은 멀리 보고 일하는 것"이라며 "멀루니 총리는 결과적으로는 당을 몰락시켰지만 캐나다를 구했다"고 평가했었다.

그 직후 청와대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멀루니는 부가세 도입 외에도 미국과의 FTA 체결, 퀘벡주 문제 등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단한 지도자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노무현-멀루니 '안타까운' 공통점
▲ 노무현 대통령이 극찬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이언 멀루니 전 캐나다 총리.

청와대가 스스로 강조하지 않아도 보기에 따라선 멀루니 전 캐나다 총리와 노 대통령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주장한 바 있다. 멀루니의 집권 당시 캐나다 여당도 '좌파 신자유주의'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진보적 보수당(Progressive Consevative Party)'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정당이었다.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역점 과제로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멀루니 전 총리가 집권 말기인 1990년대 초반 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것과 닮았다.

또한 멀루니는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고, 노 대통령은 아들 부시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병력을 이라크 전에 파병했다.

그러나 "보수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되찾아 지난해 재집권에 성공했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지난 2005년 캐나다 총선을 통해 보수당이 집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수당은 멀루니가 속해 있던 '진보적 보수당'과는 다른 정당이다. 1993년 총선에서 169석이던 의석수가 2석으로 바뀐 진보적 보수당은 해체됐고, 이후 '캐나다 동맹(Canadian Alliance)'까지 포함한 현재의 보수당(Conservative Party)이 결성됐다.

즉 현재 캐나다의 여당은 멀루니의 여당이었던 '진보적 보수당'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정계개편을 통해 새로 생긴 신생정당인 것이다. 최근 열린우리당 안팎에서 정계개편의 목소리가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멀루니 전 총리와 노 대통령의 공통점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멀루니의 세제개혁은 성공했나?

한편 "멀루니가 과감한 증세 정책을 통해 캐나다 재정을 안정화시켰고 역사에 남았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에도 이론의 여지가 많다. 증세 자체보다 그 방식에 대한 세밀한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멀루니 전 총리는 우리의 법인세 격인 '생산자판매세(MST, Manufacturers' Sales Tax)'를 없애고 대신 부가가치세 격인 '물품용역세(GST, Goods and Services Tax)'를 전업종으로 확대했다. 기업이 부담하고 수입에 따른 누진률이 적용되는 직접세 대신에 징세는 용이하지만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똑같이 부담해 결과적으로 역진적 성격이 강한 간접세를 강화한 것이다.

지난 3월 '한국정치 대전망' 세미나에 참석한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대통령이 멀루니 총리가 세제개혁을 해서 당은 망쳤지만 본인은 역사에 남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복지를 누린 캐나다 국민들도 간접세를 강화한 집권당을 2석으로 찌그러뜨렸는데 하물며 복지를 맛본 적도 없고 양극화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이 간접세를 통한 증세를 용납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멀루니는 캐나다의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삭감했고 국영기업이던 캐나다 항공, 캐나다 석유등을 민영화시켰다.

결국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국민들의 부담을 늘리는 부가세 신설, 기업 민영화, 사회복지 시스템 축소 등이 멀루니와 진보보수당 몰락의 주된 원인이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집권에 성공한 캐나다 보수당은 물품용역세 세율 완화와 아동복지,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보조금 확대 등 멀루니의 정책과는 정반대되는 공약을 내걸었다.

캐나다에서는 외면받는 멀루니

멀루니 전 총리에 대한 캐나다 현지의 평가도 "당을 몰락시킨 대신 나라를 구했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2004년 캐나다 국영방송 CBC는 전국적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The Greatest Canadian)' 100인을 뽑고 그들에 관한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조사에서 멀루니는 64위에 그쳤다.

"멀루니의 후임자는 세제개혁을 공격해 집권하고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유지시켰다. 과연 누가 소신있는 지도자냐"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 속에 등장하는 '멀루니의 후임자', 즉 자유당 출신인 크레티앵 전 총리는 멀루니보다 열아홉 계단 위인 45위를 차지했다.

또한 멀루니가 "나라를 망친 망할 놈의 비겁자"라고 평가한 그의 전임자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는 미소 양국의 핵확산에 반대해 인권헌장을 헌법에 포함시키고 낙태를 합법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 중 3위에 올랐다.

참고로 이 조사에서 캐나다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토미 더글러스로 나타났다. 캐나다 사스캐치완주 주지사였던 토미 더글라스는 공공의료시스템을 캐나다에 최초로 도입한 좌파 정치가다. CBC는 토미 더글러스를 "북미대륙에서 최초의 사회주의적 주정부를 운영한 캐나다 공공의료의 아버지(Father of Medicare)"라고 설명하고 있다.

훗날 누군가라도 노 대통령을 "혜안을 가진 정치지도자"로 평가해줄지 여부는 아직 모를 일이지만, 현 시점에서 멀루니 전 총리가 노 대통령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적절한 지는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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