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아침 7시부터 1시간 동안 본사 정문 앞에서 '출근투쟁'을 했다. 낮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인근 전철역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준다. 벌써 14일째다.
추 씨는 2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해 J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기만 다니고 휴학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맥주집 서빙, PC방 관리 등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했다. 하지만 들어오는 돈을 보잘 것 없었다. 그는 공장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최저임금법 위반 피하기 위해 상여금을 깎다
지난해 1월 그는 KM&I 군산공장에 입사했다. 정확하게는 KM&I의 한 하청업체가 그가 취직한 곳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공장 일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 노무직이었기 때문이다. 잔업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한 달이 지나면 100만 원 안팎의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
추정래 씨에게 시련이 닥쳐온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공장 안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회사가 법정 최저임금 인상분을 맞추기 위해 연말 상여금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회사 관리자는 최저임금 상승분만큼 기본급을 올려주는 대신 상여금을 200% 줄인다고 말했다. 일방적 통보였다. 같이 일하던 형님들은 흥분했다. 회사의 계획이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퇴근길이면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렇게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자 노조 결성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11일 금속노조 KM&I 분회가 출범했다.
추 씨는 그때만 해도 '최저임금'이 뭔지 몰랐다. 노조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노조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할 짓 없어 그런다"고, "돈이 남아돌아서 파업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같은 생각이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추 씨는 말했다. "고작 2시간 파업출정식을 했을 뿐인데, 바로 그 다음 날부터 회사는 조합원의 출입을 막았어요. 조합원에게만 직장폐쇄를 단행한 거였죠."
그 때가 지난해 11월 8일이다. 회사는 정문에 '직장폐쇄' 공고문을 붙여놓았다. 아침부터 정문에는 100여 명의 용역 경비원들이 터 잡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파업도 안 했는데 웬 직장폐쇄냐"며 공장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용역 경비원의 무지막지한 주먹과 발길질이었다. 그날 싸움으로 20여 명의 조합원이 부상을 입었다.
나이 갓 스물하나, "내가 단식하는 이유는… "
추 씨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조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회사가 왜 용역 깡패까지 동원해 우리를 쫒아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노조 조합원은 공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노동부 중재로 지난 12월경 교섭이 열렸지만 진전이 없었다. 급기야 지난 1월 회사는 하청업체 4곳을 폐업시켰다. 하청노동자에게 폐업은 집단해고와 같은 말이다. 사측의 상여금 삭감 계획에 반발해 노조를 만들었다가 결국 길바닥에 나앉는 처지가 된 셈이다.
그러나 KM&I 군산공장은 현재 정상 가동되고 있다. 기존 4개 업체는 폐업됐지만, KM&I는 폐업과 함께 새로운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추정래 씨 등 KM&I 분회 조합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결국 회사는 계약서 몇 장으로 속 시끄러운 일을 손쉽게 처리해 버린 셈이다.
물론 이는 위법의 소지가 있다. 이미 폐업된 4개 하청업체에 대해 노동부는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도급계약을 위장한 파견근로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새로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역시 폐업된 하청업체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 나올 공산이 높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무조건 참을 수는 없잖아요"
추 씨는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봤다"며 "억울해서 이 싸움을 중단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단식농성에 합류할 지를 두고 추 씨는 고민이 많았다. 그에겐 이미 군 입대영장이 도착해있었고, 마냥 돈을 벌지 않고 싸움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 씨는 결국 많은 고민 끝에 단식농성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군입대는 연기했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은 그냥 군대 가지 왜 고생을 하냐고 말해요.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저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돈 없고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무조건 참을 수만은 없잖아요."
추정래 씨의 의지는 굳세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KM&I 정규직 노조도 지난달 28일부터 전면 파업으로 분회를 지원하고 있지만, 사측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추 씨는 또다시 냉혹한 현실을 경험해야 할 지도 모른다. 노사갈등에서 원-하청 문제만큼 풀리지 않는 사안은 없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와 원청회사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 6개월, 1년은 쉽게 지나간다. 게다가 긍정적인 해법이 나오는 경우도 적다.
청년실업 해소, 비정규직 차별 해소, 사회양극화 극복 등이 어디를 막론하고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갓 스물 넘은 젊은 노동자가 '살기 위해서' 밥을 굶어야 하는 게 오늘날의 노동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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