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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장기투쟁 노동자들에겐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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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장기투쟁 노동자들에겐 날개가 없다

[전태일통신 31] 부당노동행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반적으로 사용자보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사용자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가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다. 노동조합이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하면 이 노동3권이 사용자로부터 침해받기 쉽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사용자가 노동운동을 방해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 이것이 「부당노동행위금지법」이다.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조합 가입 또는 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 △노동자의 조합가입이나 탈퇴를 고용조건으로 삼는 행위 △노동조합 대표와의 단체협약 체결이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 지배·개입하는 행위 △단체행동 참가나 노동위원회에 제소한 것 등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기타 불이익을 주는 행위 등으로 구분된다.

***부당노동행위에 무방비 상태인 장기투쟁 노동자들**

그런데 최근의 노사관계는 부당노동행위의 법적 존재 이유가 과연 있는 것인지 그 필요성조차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일터로 되돌아가고 싶다"며 1년 이상을 힘겹게 싸워 온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절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점차 투명성과 민주성이 반영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적 추세를 감안하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전반적인 불감 정서는 다분히 사회의 해악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노동자 당사자는 물론 고스란히 사회적 갈등과 손실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장기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잘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대응은 상당히 극단으로 격화되고 있는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고공투쟁으로까지 계속 치달아 온 최근의 현상은 결국 언론에 대한 반감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조탄압과 정리해고의 철회를 요구하며 한 달 넘게 20미터 상공 송전탑에서 농성을 벌였던 코오롱 노조의 사례는 그나마 널리 알려져 있다. 급기야 지난 3월 26일 최일배 노조위원장은 이웅렬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던 중 동맥을 절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미터 높이 철탑 위에서 벌이고 있는 고공농성 역시 비정규직 차별 대우와 해고, 고소고발, 손배가압류가 주된 원인으로 하이타이와 락스를 섞은 물대포 살수는 새로운 논란으로 대두되고 있는 중이다.

(사진1 GM대우 하청노동자들의 아득한 고공농성.)

금속노조 산하 오리온전기는 투기자본인 매틀린패터슨이 노동조합과의 합의사항을 전면 파기하고 6개월만에 공장을 청산하면서 5개월 넘게 고용보장과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며 투쟁 중에 있으며, 공공연맹 산하 전국문화예술노조는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은 완전히 축소하면서 5000억 원에 이르는 오페라하우스 설립을 강행하는 이명박 시장의 정책에 반대해 예술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며 서울시의 부당한 지배개입에 맞서 투쟁 중이다.

민주노총이 노동부에 제시한 이같은 장기투쟁 사업장은 26곳이나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규의 원인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기본권을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코오롱과 여수CC, 익산CC, 레이크사이드CC 등은 부당노동행위 판결을 받았음에도 사측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노사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경우다. 이는 결국 최근 노동자들에 대한 법의 구제가 얼마나 부실한 것인가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이외에도 열악한 임금과 근무조건을 개선하고자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집단정리해고를 당한 사업장으로 반도체 제조회사인 하이닉스매그나칩, 철판 생산회사인 현대하이스코, 네비게이션 제조업체인 기륭전자 등이 있고 노동조합 대표와의 단체협약 체결이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당한 사업장으로 군산지역 자동차 부품사인 KM&I, 대구지역 휴대폰제조업체인 태양기전 등이 있다. 그리고 단체협약 일방해지 통보로 투쟁 중인 부천 세종병원, 쟁의상태에서 회사가 기계를 빼돌려 하청업체에 넘겨 생산해 온 여성 의류업체 루치아노최 등이 있다.

(사진2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요구는 일터.)

***날개를 단 사용자들의 노조파괴 시나리오**

이같은 부당노동행위의 배경에는 자의건 타의건 노사간의 교섭(대화)에 장애가 있음을 뜻한다. 이는 결국 교섭을 기피하거나 교섭을 기피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함께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기투쟁 하는 사업장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문제가 많다. 이는 대기업 못지 않게 중소사업장에서도 힘의 관계가 급격하게 사용자 위주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경제적 논리에 우선한 기업의 우위 정서와 맞물려 있다. 분단이란 특수한 한국적 조건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이념문제와 공권력 등에 의한 타율에서 노사간의 자율로 넘어가는 시기적 단계와 맞물려 있는 데다 정부의 무능력하고 무원칙적인 시장경제의 우위 정책으로부터 자율 자체가 왜곡돼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결국 이러한 배경을 등에 업고 노조파괴 시나리오라는 극단적 부당노동행위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 직접 지배·개입하는 행위로서, 사용자들이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기존의 대응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미 대구지역 도어록 제조회사인 현대금속에서 작년 7월 대표이사실을 통해 노조파괴 시나리오 문건이 발견돼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결국 이 회사는 작년 11월 30일 공장정상화 합의에도 불구하고 판매법인을 별도분리하고 위장계열 회사를 설립하는 등 계속해서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 왔다.

최근 두 달 동안의 장기파업과 극심한 노사불안을 야기한 부천 세종병원에서의 소위 노조파괴 전문가 김 아무개 노무관리자 개입사건은 유명하다. 구미 오리온전기의 경우 국무총리실 경제통상대사관 실무책임자인 박 아무개가 개입해 부채 1조 원을 탕감하고 외국 투기자본에 600억 원의 헐값으로 매각하면서, 13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한 책임자로 주목되고 있다. 이외에도 GS칼텍스, 익산 상떼힐CC, 서울레이크사이드CC, (주)눈높이 대교 등에서 광범위한 노조파괴가 획책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유와 경쟁이라는 시장개념을 일반적 사회분위기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이처럼 정부의 무능력한 사회조정 역할과 이로 인한 아노미적인 사회갈등에 편승한 사용자들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법의 범위를 넘어서서 비밀리에 실행되고 있는 현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장기 노사분규로 형성된 노동자들의 심리적 황폐를 이용해 최종적으로는 노조 자체를 말살하기 위한 수법으로 보인다. 드러나지 않게 노조의 힘을 무력화시키면 노조가 항복할 것이라는 사용자들의 심리가 지금의 경제적 힘의 논리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는 셈이다.

(사진3 노조파괴전문가 구속수사 촉구 민주노총 기자회견.)

***새로운 법의 사각지대 '불법파견'**

또한 1998년 파견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불법파견이라는 새로운 노동조건에 따른 법의 판단과 적용 등은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가 최근 양극화 등 사회의 체계 전반에 걸쳐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하이닉스매그나칩, 기륭전자, 현대하이스코, 르네상스호텔, GM대우창원 등의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라는 노동부의 판정을 받고도 오히려 사측으로부터 집단해고를 당하는 반면 불법파견에 대한 사용자 처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05년 비정규 노동자 탄압사례를 보면 법 적용의 형평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작년 한 해 동안 91명의 구속자와 1362명이나 되는 해고자가 양산되었는데,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을 인정받고도 96명이 해고된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70명이 집단 해고되고 무려 1152억 원(조합원 1인당 18억 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되어 있는 기륭전자의 사례를 보면 사용자들이 법 위반의 댓가로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노동탄압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시대의 대명제임이 분명하다.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 형태로 약속된 사항들이 쟁의가 끝난 이후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또 다른 불신과 불감증을 만연시키는 것은 더욱 위험한 문제다. 지역사회의 노사정 합의가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보다 상위의 국가적 합의가 이행된다는 것은 더욱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초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동자들 문제와 관련 충북 이원종 도지사와 범대위, 그리고 하이닉스 반도체 우의제 사장이 빠른 시일 내 사태를 해결하기로 약속하여 노숙농성을 풀었지만 결국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또한 지난해 말 사업장내 타워크레인 고공농성 등 첨예한 갈등을 야기했던 현대하이스코의 비정규직 문제가 해고자 복직과 노조활동 보장, 민형사상 책임 최소화 등을 골자로 '확약서' 형태로 일단락 됐지만 5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돌아온 것은 복직이 아니라 50여 명의 추가해고와 7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다.

(사진4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동자들의 서문대교 고공농성.)

***장기투쟁 노동자들은 구제돼야 한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약속한 사회적 합의가 결국 휴지조각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 밑바탕에 아직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비중을 의식하지 못하는 최근의 정서와 관련이 깊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기업 경쟁력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경제 우선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배타적 정서는 더욱 짙어졌다. 요컨대 병원 노조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또는 몇 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됐을 뿐인데 그게 무슨 큰일이냐는 식이다.

또한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가 갖는 불합리한 현상의 한 측면은 투쟁이 장기화되고 대립 양상이 치열해짐에도 언론의 비중이 높지 않은 현 시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멀어진다는 것이다. 노조 탄압에 대한 원인은 뒤로 한 채 오히려 노동자들의 강경 대응만 부각하는 언론의 경향도 문제다. 지난 3월 29일자 동아일보 '회장집 침입 자해소동 노조위원장', 3월 28일자 중앙일보 '정치적으로 노사문제를 풀지 말라'는 사설이 그것이다. 결국 정치 외적인 경제적인 논리나 현실적인 힘의 논리, 그것도 아니면 자유경쟁의 논리라는 이데올로기에 치우치고 있는 셈이다.

(사진5 코오롱 노동자들의 15만 볼트 고공 철탑농성.)

결국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나약하고 느슨한 정부의 의지가 사회에 전반적인 법 경시 풍조와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양극화 정서를 만연시키고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양상을 띤다. 경제논리에만 매달리는 정부의 정책경향, 갈수록 다원화되고 다양화되는 세상에서 다른 모든 부문에 앞서 경제정책에 우선순위를 매기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에 편승된 사회 주체들의 갈등상황으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코오롱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 지난 3월 30일 구미공장을 직접 압수수색한 데 이어 7일 구미공장 간부 조 아무개(48)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자못 의미가 깊다. 검찰 수사관이 노사관계 수사에서 직접 사업장을 압수 수색하고 간부를 구속한 사례가 처음인 것은 그동안 노동자에 대한 법 적용이 얼마나 편파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노사관계를 억압, 왜곡하고 있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 처벌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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