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2시 58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그 시대를 살았던 '보통 사람'에 주목하자!"
[해방일기] 1946년 4월 18일
1945년 8월 15일의 조선 해방에는 두 가지 의미가 겹쳐져 있었다. 경술국치로부터 35년, 을사조약으로부터는 40년 만에 일본인의 지배를 벗어나는 민족 해방. 그리고 군국주의 체제로부터 벗어나는 자유 회복.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민족 해방의 측면을 앞세워 생각했다. 그
김기협 역사학자
2011.04.18 07:39:00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해방일기] 1946년 4월 15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1945년 9월 22일에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라는 글을 발표하셨죠. 원고지 200매 가량, 길지 않은 글이지만 많은 내용을 담으셨더군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중에 그런 글까지 쓰신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해방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이
2011.04.15 08:23:00
우익보다 '중도'가 더 미웠던 공산당!
[해방일기] 1946년 4월 14일
여운형이 암살당한 후 미군정이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여운형의 가방 안에 편지 여러 통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1946년 4월 16일 박헌영이 여운형의 환갑을 축하한 편지가 있었다. 임경석의 <이정 박헌영 일대기> 316쪽에 한 대목이 소개되어 있다.
2011.04.14 11:04:00
<동아일보> 송진우 암살의 배후는 김구인가?
[해방일기] 1946년 4월 12일
전직 경호원 여럿이 참여했고 다른 사람들도 짐작할 만한 상황에서 일이 진행된 것을 보면 그런 사람이 어쩌다 하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송진우 암살의 구체적 진상은 밝히지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서든 이념을 위해서든 경호원 노릇도 할 수 있고
2011.04.12 07:56:00
美 비판으로 구속당하는 임시정부 요인
[해방일기] 1946년 4월 11일
미군정과 경찰의 좌익 탄압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었다. 미군정의 힘이 미치지 않던 지방의 자치 운동이 제일 먼저 집중 포화를 받았다. 4월 9일에 경상남도 공보실에서 피검자 21인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런 검거는 전국 각지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2011.04.11 08:00:00
음산해져 가는 사법부 분위기
[해방일기] 1946년 4월 8일
괴상망측한 모습의 경찰이 남반부 조선에 나타나는 상황을 어제까지 몇 차례 그려보았다. 공권력의 다른 담당자인 검찰과 법원은 경찰보다는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편이었다는 사실을 학병동맹사건 처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장택상이 미군정 간부를 끼고 박흥식
2011.04.08 10:00:00
경찰을 '막가파'로 만든 자들
[해방일기] 1946년 4월 7일
월 19일 새벽 경찰의 학병동맹 습격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군 진주 이래 권력과 폭력의 독점자인 미군정의 정책과 조치가 조선인들의 불만과 분노를 일으킨 일은 끊임없이 있었지만, 학병동맹 습격 사건처럼 충격적으로 터진 일은 없었다.
2011.04.07 10:28:00
美 국가주의 전초병 이승만과 굿펠로
[해방일기] 1946년 4월 5일
미국에서 조선 민족 운동의 초기 지도자 중 박용만(1881~1928년)과 안창호(1878~1938년)가 먼저 세상을 떠나 이승만(1875~1965년) 혼자 해방을 맞았다. 그래서 미국의 다른 민족 운동가들에 비해 이승만의 지명도가 높기는 했지만 그가 미국의 민족 운동을 대표하고 있었던
2011.04.05 08:14:00
이승만보다 팔자가 좋았던 비서실장 윤치영
[해방일기] 1946년 4월 4일
민족의식이 고양된 1920년대 초 비행사 안창남과 사이클리스트 엄복동은 조선 대중의 영웅이었다. 엄복동(1892~1951년)은 자전거포 점원으로 일하다가 1913년 일본인들의 잔치이던 전조선자전거경기대회에서 우승하고 3·1 운동이 탄압받은 직후인 1922년 대회에서 다시 우승
2011.04.04 07:39:00
"이승만과 김구의 생일을 바꿀 수 있다면…"
[해방일기] 1946년 4월 1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⑫
선생님께서는 반년 전 국민당을 만들 때부터 "나는 당수가 아니니, 해외의 혁명영수들이 들어오시면 어느 분이든지 정말 당수로 추대하고, 일대 정치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겸양의 자세를 보이다가 이제 한독당과 합당을 맞이했습니다. '합당'이라 하지만 당명도
2011.04.01 08:35:00